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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하굣길
학생들이 많다 보니 학교 앞에 문방구도 많았다. 대략 20여 개가 있었다. 학교에 가려면 긴 골목을 지나야 했다.
골목 양쪽으로 문방구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중간에 헌책방도 하나 있다. 시장으로 연결된 골목이 시작되는 곳 옆에 있었다. 그때는 교과서를 잃어버리면 헌책방에 가서 샀다. 지금은 모든 물자가 흔해서 물건 귀한 줄 모른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교과서를 물려받아 쓰기도 했고 교복도 물려받아서 입는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단골로 다닌 곳은 두꺼비 문방구다. 이제는 얼굴마저 잊었지만 참 친절한 사장님이셨다. 보통 문방구 사장님들은 그날 학교에서 필요한 준비물이 무엇인지 귀신같이 알고 있다. 자연 시간에 필요한 물체 주머니(기억하는 분? 조그만 헝겊 주머니 속에 여러 가지 물체들이 들어 있다. 도체 부도체를 배울 때 필요한 준비물이다. 나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주머니에 자석, 병뚜껑, 구슬. 술병 뚜껑, 쇠붙이, 단추 등을 넣고 다녔다. ) 음악 시간에 필요한 짝짝이, 트라이앵글, 미술 준비물인 찰흙, 철사, 석판 등 그 많은 준비물을 척척 꺼내 주셨다.
아이들이 수천 명 다니는 학교이다 보니 등굣길엔 늘 북새통이었다. 두꺼비 문방구 아주머니는 내가 깜박 잊고 준비물을 안 챙겨가도 외상으로 물건을 주셨다. 외상값은 어머니가 갖다주시거나 내가 다음날 가져다드렸다. 등굣길이 준비물을 사느라 북새통이었다면 하굣길은 군것질하고 새로 나온 문구 구경을 하느라 좁은 문방구 안팎엔 아이들이 가득하다.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가 인쇄된 책받침, 귀여운 강아지가 그려진 연습장, 캔디와 테리우스가 그려진 엽서 등 문방구는 우리에겐 보물섬이다. 없는 것 없이 수만 가지 물건들이 있다. 못된 친구들이 종종 물건을 훔쳐서 문방구 아저씨들이 학교를 찾아오기도 했다.
아마 때로는 보고도 못 본 척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많은 문방구는 우리를 늘 유혹했다. 줄줄이 사탕처럼 죽 늘어 선 문방구는 늘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문구, 장난감 등이 가득했다. 신기하게도 문방구 입구 벽엔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빨간 돼지 저금통이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나도 몇 마리 키웠다. 주로 설날을 앞두고 샀다. 조금 말랑말랑한 빨간 돼지저금통의 등에는 구멍이 있다. 동전보다 조금 더 컸다. 그래서 운 좋게 천 원을 받는 날엔 꼬깃꼬깃 여러 번 접어야 저금할 수 있다. 가끔은 젓가락을 구멍에 넣고 벌려서 동전 몇 개를 빼내 군것질했다. 구멍을 살짝 벌려 탈탈 털면 동전 몇 개가 떨어졌다. 점점 무거워지는 돼지 무게는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는 남동생이 둘 있는데 TV 위엔 어른 주먹 두 개 만 한 크기의 저금통이 세 개 나란히 있었다. 우리는 서로 저금통을 들었나 놨다 하면서 누구 저금통이 제일 무거운지 무게를 재보곤 했다. 요즘도 저금통에 저금하는 아이들이 있을까?
땡그랑 한 푼, 땡그랑 두 푼. 벙어리 저금통이 아이고 무거워. 하하하하 우리는 착한 어린이 아껴 쓰고 저축하는 알뜰한 어린이
헉! 이 노래가 자동으로 나온다. 짤그락 동전 떨어지는 소리에도 행복했던 시절.
요즘은 학교 앞에 문방구 보기가 힘들다. 대형 문방구나 마트, 다이소등에서 준비물을 준비한다. 왠만한 것은 교실에 다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하교때 일단 다이소에 들러 한바퀴 둘러보고 카페나 무인 아이스크림집에 간다는 소리를 라디오에서 들은 적이 있다. 시대가 변하니 풍속도 변하나 보다.
쫀드기를 먹으며 집으로 가던 길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