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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오류동 시장의 할매순대

시장에서 먹는 최애 분식  할매순대

by 다올 Jan 14. 2025

  국민학생일 때 학교가 파하면 종종 엄마와 시장엘 갔다. 시장은 학교에서 가깝다. 오류시장은 바깥에서 보면 좁은 골목밖에 안 보이지만 그 좁은 골목을 지나가면 넓은 시장이 나온다.

시장 골목은 겨우 두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로 좁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는 작은 가게들과 난전이 있다. 소금 한 포대를 가져다 놓고 작은 바가지로 한 바가지씩 파시는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 옆엔 나무 상자에 갈치와 고등어, 조기를 파는 생선 가게가 있다. 생선 위에는 일 년 내내 얼음이 덮여있다. 얼음이 녹아서 골목길에 생선 비린내 나는 물이 흐르곤 했다.  

출처: doopedia.co.kr출처: doopedia.co.kr

    

   빨강, 파랑 소쿠리에 상추, 호박, 오이 등을 담아 파는 몇 개의 가게를 지나면 갖가지 속옷과 양말을 파는 가게가 나온다. 백양과 쌍방울이 제일 좋은 속옷이다. 작은 속옷 상자엔 팬티가 3개 정도 들어있고 겉엔 상자 속의 속옷을 입은 남자아이나 여자아이가 인쇄되어 있다. 어른 속옷도 마찬가지이다. 이쁘고 잘생긴 어른들이 속옷만 입고 포즈를 취한 사진이 상자 뚜껑에 그려있다. 신앙촌 스타킹은 올이 잘 나가지 않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 유명세와는 달리 스타킹은 늘 올이 잘 나갔다. 내가 국민학생 때 남자, 여자아이 할 것 없이 반바지와 속에 하얀 타이츠를 신었다. 요즘 아이들이 쫄바지를 입는 것과 같다. 엄마는 종종 속옷이나 내복, 양말을 살 때 그 가게를 가셨다. 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다니던 가게이다. 내가 5살쯤 되었을 때 속옷 가게 사장님에 내 코를 보시고

“얘가 커서 잘살게 되면 다 코 덕인 줄 알아요.”

라고 하셨단다. 지금도 사진을 찍으면 얼굴에 코만 보일 정도로 내 코는 크다. 그냥 큰 것이 아니고 복코이다. 종종 엄마는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리 딸이 언제 코 덕 좀 보고 부자로 살까?” 

하신다.     


  시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세 곳 있다. 떡집과 순댓집 그리고 분식집이다.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는 이유 중 하나가 순대를 먹기 위해서이다. 할매순댓집은 시장 맨 가에 있다. 큰 길가 쪽으로는 과일가게가 있다, 과일가게를 지나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장소가 나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제일 싫어하는 장소를 지나야 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엄마의 팔뚝을 꽉 잡고 두 눈을 꼭 감았다. 눈을 감고 지나가는 구간에는 개와 돼지. 소의 부속물을 파는 가게들이 여럿 있다. 개들이 네다리를 하늘로 뻗은 채 불에 그을려 껍질이 검다. 개의 벌어진 입안엔 누런 이빨이 울퉁불퉁 박혀 있다. 네 조각을 잘린 개고기의 속 살이 붉다. 그 붉은빛은 세상에서 가장 빨갛다 할 정도로 핏빛 이상의 색이다. 어디 그 모습뿐이랴. 불에 그을린 개털의 냄새가 고약했다. 부속물을 파는 가게에서는 돼지국밥 끓이는 냄새가 진동한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딱 돼지 삶는 냄새. 그렇게 길지 않은 길이었을 텐데 나는 그 길이 길게만 느껴졌다. 엄마가 다 지나왔다고 눈을 뜨라고 한다. 오늘도 속았다. 나는 돼지의 웃는 눈과 벌렁 하늘을 향해 벌어진 돼지코와 눈길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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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길만 지나면 할머니 순댓집에서 맛있는 순대를 먹을 수 있다. 지금은 간, 허파 등 부속품도 먹을 수 있다. 어릴 적엔 오직 순대만 먹었다. 퍽퍽한 간도 물컹거리는 허파도 싫었다. 물렁뼈가 보이는 돼지 귀는 더욱 먹을 수 없었다. 엄마랑 나는 긴 의자에 앉는다. 따로 상점이 있는 가게가 아니고 그냥 난전이다. 엄마는 순대 오백 원어치를 주문하신다. 할머니가 커다란 양은 냄비를 덮은 비닐을 벗겨내자, 순대 냄새를 가득 품은 하얀 김이 올라온다. 적당한 크기의 순대를 껴내 신는다. 대장간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검고 두꺼운 식칼로 뚝뚝 순대를 썰어 내신다. 찜솥에서 막 꺼낸 순대가 뜨거울 만도 한데 할머니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정한 크기로 순대를 썰어낸다. 그 솜씨가 한석봉 어머니 같다. 순대는 잘못 썰면 다 터진다. 창자가 벌어진 순대는 그 속에 담긴 당면이 다 나와 먹을 때 지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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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소금에 고춧가루, 후춧가루를 조금 넣어 미리 만들어 놓은 양념 소금을 내주신다. 소금은 콕 찍어야 하는데 잘못하다 순대를 떨어트리는 날엔 짜디짠 순대를 먹어야 한다. 나는 늘 소금에 순대를 찍어 먹어서 다 그렇게 먹는 줄 알았다. 어른이 돼서 타지방에서 순대를 먹는데 내주시는 장이 다 달랐다. 부산에서는 묽은 된장에 순대를 찍어 먹는다. 전라도에 가니 초장에 찍어 먹는다. 늘 소금만 찍어 먹던 나에게는 일종의 문화 쇼크였다.  시장을 다 보고 나면 우리는 마지막 코스로 할매 순대를 먹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어쩌면 엄마는 내 핑계를 대고 순대를 드셨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함께 장을 보고 순대를 드셨던 그때 엄마 나이는 이십 대 끝자락을 지나고 있었다.   

  

  얼마 전 친정에 갔을 때 제천 중앙시장에서 순대국밥을 먹었다. 나의 최애 간식인 순대도 빼먹지 않고 한 접시 시켰다. 쫄깃쫄깃한 당면의 식감을 느끼며 오물오물 씹는다. 앞으로 엄마와 몇 번이나 더 순대를 먹을 수 있을까? 다음에 친정 갈 땐 매콤한 양념에 채소, 들깻가루를 듬뿍 넣고 순대볶음을 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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