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피치 미술관의 9번째 전시실의 중앙에는 유명한 한 쌍의 측면 초상화가 놓여있다. 무뚝뚝해 보이는 매부리코의 귀족 남성과 값비싼 의상을 입었지만 백지장 같은 얼굴의 여성이 마주 보고 있는 것을 측면 초상으로 그렸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Piero della Francesca의 ‘우르비노 공작 부부 초상’이다.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공작과 부인 바티스타 스포르차의 초상화인데 눈높이로 나란히 바라보게 설치돼 있는 것이 특이하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Piero della Francesca, 우르비노 공작부부 초상
측면 초상은 귀족들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로마시대 이후 즐겨 사용됐던 기법인데 이 작품에서 사용된 이유는 따로 있다. 당대 최고의 용병대장에서 우르비노를 공국으로 만든 페데리코는 마창 시합에서 한쪽 눈을 잃었고, 그것을 보이지 않도록 프로필 초상화를 사용한 것이다. 몬테펠트로의 풍경을 배경으로 붉은색 옷을 입은 페데리코의 모습은 굳게 다문 입과 매부리코가 인상적이다. 바티스타 스포르차 부인은 아름다운 옷과 보석으로 치장했지만 사후에 그려져 생기를 잃은 모습이다. 강하고 무뚝뚝한 남편은 겉으로 살갑게 표현은 안 했지만 병약해서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를 깊이 사랑했던 것 같다. 페데리코는 은퇴 후 학자들과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선행’을 했는데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도 그중 한 명이었다. 프란체스카는 플랑드르 지방에서 발명한 유화 기법을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시도한 화가다. 프레스코화는 바탕의 회칠이 마르기 전에 그려야 해서 얇게 그릴 수밖에 없었던 반면 유화는 시간을 두고 덧칠을 하며 지속적으로 손질을 할 수 있다. 그는 유화 기법 덕분에 이탈리아의 극사실주의 선구자가 됐다. 이 초상화 역사 사진을 보는 것처럼 극사실 기법으로 그려졌다.
우피치미술관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은 10~14번 보티첼리의 방이다. 필리포 리피의 제자였던 보티첼리는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현세적인 아름다움으로 신성한 여인을 묘사했다. 신플라톤주의를 신봉했던 보티첼리는 아름다움이란 신이 현존하는 증거이며 세속적 아름다움에 신의 사랑이 담겨있다는 생각으로 ‘비너스의 탄생’을 그렸다. 중세 이후 실물 크기로 등장한 최초의 여성 누드라는 점에서도 유명한 이 그림은 그림 중앙의 비너스가 금발을 흩날리며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왼쪽에는 서풍 제피로스와 그의 연인 클로리스, 오른쪽엔 계절의 여신 호라가 비너스의 알몸을 가려주기 위해 겉옷을 들고 달려온다. 자신의 정숙함을 과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고대 그리스의 베누스 푸디카(정숙한 비너스) 스타일을 보티첼리가 부활시킨 이 그림은 신플라톤주의 미학의 상징이자 피렌체 르네상스의 상징으로 꼽힌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비너스의 탄생’ 다음으로 관람객이 북적이는 곳이 ‘프리마베라’(봄)다. ‘위대한 자 로렌초’의 조카인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 데 메디치의 저택 침실에 침대 등받이 위에 걸려 있었다. 막 결혼한 그를 위해 가문에서 결혼 선물로 주문한 것으로 추정한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비너스가 서 있고 그 옆으로 세 명의 여자가 둥글게 원을 그린 채 서 있다. 순결, 사랑,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삼미신이다. 비너스의 오른쪽에 두 여인이 서 있다. 그중 바람의 신 제피로스에게 잡혀 있는 여인의 입에서는 꽃이 피고 있다. 배경의 나무들은 감귤나무로 학명에 ‘메디카’가 붙기 때문에 메디치 가문을 상징한다고 본다. 학자들은 그림 곳곳에 그려진 꽃이 500여 종에 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따뜻한 봄 같은 신혼부부의 사랑을 축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메디치 가문으로 인해 황금기를 구가하는 피렌체의 영광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보티첼리의 방에서는 ‘메달을 든 젊은이’ ‘동방박사의 경배’‘아펠레스의 모략’ 등 보티첼리의 명작들을 볼 수 있다.
우피치 미술관은 최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방을 새로 단장해 그 유명한 ‘수태고지’를 돋보이게 전시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기 작품으로 먼 산을 대기 원근법으로 흐릿하게 표현하고 건물은 투시 원근법으로 표현했다. 천사의 날개와 섬세한 옷자락, 평온하면서 신성한 얼굴, 우아한 손동작 등 평화로운 작품은 들여다볼수록 신비롭다. 그의 스승인 안드레아 베로키오의 ‘세례 받는 그리스도’를 한 방에 놓은 것은 이 그림 속 두 명의 천사를 10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기 때문이다. 스승은 주요 인물을 그리고 제자는 보조 인물인 천사를 예수 왼쪽에 그렸는데 베로키오는 제자의 천재성에 놀라서 그 후 그림을 그리지 않고 조각에 전념했다는 얘기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수태고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수태고지 속의 천사. 손가락만 보아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수태고지 속의 마리아.
안드레아 베로키오의 세례받는 그리스도 중 왼쪽 두 명의 천사는 제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것이다. 이 작품에서 이미 스승을 뛰어넘을 잠재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남아있는 유일한 회화작품인 ‘성가족’도 놓쳐선 안될 작품이다. 1503~1504년 그려진 이 작품은 둥근 모양의 틀까지 미켈란젤로가 공들여 만들었다. 새로운 이념의 도전에 대해 독특한 미술적 해답으로 응했던 미켈란젤로의 뛰어난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이 톤도(원형으로 된 작품)는 아뇰로 도니가 막달레나 스트로치와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주문한 것이다. 성모와 아기의 까다로운 자세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르네상스의 또 다른 천재 화가 라파엘로 산지오(1483~1520)의 ‘방울새의 성모’도 한참을 감상해야 할 걸작이다. 라파엘로가 로마에서 활동하기 이전에 그려진 ‘방울새의 성모’는 아기예수에게 방울새를 건네는 아기 요한과 이를 바라보는 마리아의 온화한 미소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담긴 성가족(톤도 도니) 라파엘로의 방울새의 성모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도 너무나 유명한 그림이다. 티치아노는 색과 빛에 중점을 두면서도 과감한 붓 터치와 화면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구성법이 뛰어났다. 비스듬히 누워있는 알몸의 여성이 도발적인 시선으로 관람객을 바라보는 파격적인 작품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고야, 모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피치는 1737년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상속녀 안나 마리아가 건물과 미술작품들을 피렌체 시에 기증하면서 미술관이 됐고 이탈리아 통일 후 국립미술관이 됐다. 안나 마리아가 내건 조건은 “절대 이 작품들을 국외로 반출시키지 말고 피렌체에서만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르네상스 시대 위대한 예술가들이 남긴 걸작들을 온전하게 오늘날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우피치를 방문할 때마다 절감한다. 예술가를 후원한 저의에 대해 비판론도 있지만 메디치 가문이 아낌없이 예술가들을 후원한 덕분이다. 메디치가의 350년 영화는 오래전에 막을 내렸지만 예술은 영원히 남아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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