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삶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중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 우리는 진리의 책이라는 것을 가져본 역사가 없으며, 누가 어떤 진리를 말했다고 해서 그것을 책에다 적어 놓고 찬양하고 다니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삶이 곧 진리이며, 진리가 삶이다. 진리로부터 멀어 진 삶은 죽음이며, 그런 삶을 사는 자에게는 진리의 책도 아무 소용없다.'

- 어느 북아메리카 인디언, <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중


큰 바다를 건너와 북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백인들은 총을 앞세워 오랜 세월을 이 땅에서 살아온 원주민들로부터 땅을 빼앗고 심지어 자유와 목숨을 앗아갔다. 백인들은 처음에는 착한 얼굴로 다가와 인디언들을 개종시키려 했다. 하지만 인디언들은 종교라는 것을 가진 적이 없었다. 자연의 정령이 모든 것을 관장했으며 그 힘에 따라 살아왔으므로 종교가 무언지 왜 필요한지 알 수 없었다. 백인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얼굴 붉은’ 그들의 표현대로 ‘얼굴 흰’ 사람들은 삶의 목표를 오로지 더 많이 소유하는 것, 더 큰 부자가 되는 것에 두고 온 세상을 독차지하려 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 가치를 따진다. 기준을 돈에 두고 진실과 거짓 조차 돈 앞에서 그 위치가 뒤바뀌는 것은 죽음 앞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인디언들과 사뭇 달랐다. 은행에 돈을 맡기고 가끔씩 이자를 붙여 나가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인디언들은 돈이나 담요가 남으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며, 필요할 때는 그들에게서 얻어다 쓴다. 주는 것 그것이 은행이다. 그리고 진리에 대해 잘 설명하고 진리가 적혀있는 책을 늘 지참하고 다니면서도 진리와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자들이 많았다.

' 자연의 삶, 인디언의 삶 속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다른 어떤 위대한 가르침이나 내가 듣고 느끼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한 가지 인디언적 요소는 죽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서는 살 수도 없다는 깨달음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눈 앞에 둔 상태로는 완전한 삶을 살 수 없다.'

아메리카 인디언 중 최초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찰스 이스트먼의 인디언 이름음 오히예사이다. 오히예사의 아버지는 백인들을 따라가 교육받고 나중에 그의 아들도 백인들의 학교에서 교육받게 했다. 오히예사는 어릴 때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오히예사의 삼촌은 조카에게 승리자라는 뜻의 이름을 지어주었고 강한 인디언 정신을 불어넣었다. 훗날 오히예사가 아메리카 인디언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손꼽히게 된 것도 그 삼촌의 덕분이다. 오히예사는 백인 기숙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10년 동안 삼촌으로부터 다코타족 남자가 되기 위한 모든 훈련을 받았다. 그 결과 오히예사는 죽을 때까지 인디언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인디언 십계명>이 있다. 돌에 새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에 새겨져 내려 온 것이다.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 그 어머니를 잘 보살피라.

나무와 동물과 새들, 당신의 모든 친척들을 존중하라.

위대한 신비를 향해 당신의 가슴과 영혼을 열라.

모든 생명은 신성한 것, 모든 존재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대지로부터 오직 필요한 것만을 취하고, 그 이상은 그냥 놓아두라.

모두에게 선한 일을 행하라.

모든 새로운 날마다 위대한 신비에게 감사하라.

진실을 말하라. 사람들 속에선 오직 선한 것만을 보라.

자연의 리듬을 따르라. 태양과 함께 일어나고 태양과 함께 잠들라.

삶의 여행을 즐기라. 하지만 발자취를 남기기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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