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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Oct 28. 2023

리뷰] 김선욱 피아니스트?지휘자?

2023 서울시향 , 김선욱의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 연주회 

재주가 많으면 몸이 고달프다는,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피아니스트로 지휘에 도전하고 있는 김선욱(35)을 보면서 새삼 느낀다. 

피아니스트로서 김선욱은 나무랄 데 없는 경력을 지녔다. 3살에 피아노를 시작해 예원학교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예술영재로 입학해 김대진 교수를 사사하고 2006년 리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해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영국 런던에 이주 후 2010년부터 김선욱은 영국 왕립음악원(RAM)에서 석사과정 3년 동안 지휘를 전공했다. 그는 독주자로서 베를린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등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 협연자로 꾸준히 초청받고 있다. 지휘자로서의 행보도 부지런히 밟았다. 지난 2021년 KBS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지휘자로 공식데뷔했고, 2022년 8월 서울시향과 함께 대한민국광복 77주년 기념음악회에서 지휘봉을 잡았고 4개월 뒤에는 낙상사고를 당한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 전 음악감독의 ‘대타’로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지휘해 주목을 받았다. 내년 1월부터 2년 동안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경기필을 이끌게 된다. 

그럼에도 지휘자로선 여전히 신인에 가깝다. 물론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35세로 지휘자치고는 젊은 편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그래서 김선욱이 연주하고 지휘하는 10월 26일 롯데콘서트홀의 서울시향 연주회를 관심 깊게 지켜보게 됐다. 

김선욱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연주하게 될 이날 1부의 무대에는 포디움 대신 그랜드피아노가 놓였다. 협연 때와 다르게 피아노는 오케스트라를 향해 설치되어 있고 단원들이 시야방해 없이 연주자를 겸하는 지휘자를 볼 수 있도록 뚜껑을 떼어내고 건반 위쪽에는 지휘하면서 피아노 줄을 건드리지 않도록 손 거치대가 설치된 것이 이색적이었다. 

오른손으로 연주하고 왼손으로 지휘하는 김선욱 (사진 =서울시향 제공)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 2악장이 사용되면서 친숙해진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은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장기 작품 중 하나이다. 무대에 들어선 김선욱은 피아노 앞에 앉아 양손을 들고 1악장 지휘를 시작했다. 앉아서 지휘를 해야 하고, 피아노에 몸이 가려있기 때문에 몸을 좌우로 크게 움직이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가 1 주제를 넘겨받으면서 피아노 협주를 시작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와 독주악기가 주제를 주고받아가며 평등하면서도 유기적으로 소통을 거듭하는 앙상블의 미덕을 살리고 있다. 명징한 김선욱의 연주 스타일과 현과 목관 파트가 주를 이루는 오케스트라가 잘 어우러지면서 곡이 흘러갔다. 트릴 부분에서는 오른손으로 연주하면서 왼손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가 피아노가 돋보이는 연주 부분에서는 다시 연주에 집중하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부분에서는 몸을 약간 왼쪽으로 기울인 상태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몸과 손이 바쁠 텐데 악보 없이 30분 가까운 곡을 마무리했다


2부에서는 지휘봉을 들고 포디움에 서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 오페라 ‘장미의 기사’ 모음곡을 선보였다. ‘죽음과 변용’은 교향시 형식에 기반한 곡으로 25분간 이어지는 단악장의 관현악곡이지만 내러티브에 따라 기승전결의 흐름이 있고, 감정의 변화가 극적으로 드러난다. 죽음과 마주한 병자의 모습을 그리는 부분(Largo)에서는 관악기를 중심으로 몽환적이고 우아한 선율로 연주하다가 죽음과의 투쟁 부분(Allegro molto agitato)에서는 저음악기들이 사투를 묘사한다. 회상장면(Meno mosso)에서는 젊은 시절의 행복과 사랑,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순간들이 교차하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마지막 죽음 뒤의 세계(Moderato)에서 평안과 행복으로 이어지며 막을 내린다. 다소 어렵고 철학적인 주제일 수 있지만 김선욱은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 작곡가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면서 스토리에 따른 감정변화를 제대로 이끌어냈다.  

다음곡인 ‘장미의 기사’는 2막 ‘오크스 남작의 왈츠’와 3막 ‘광란의 왈츠’를 포함해 오페라에 사용되는  여러 노래와 음악들이 모음곡을 구성한다. 악기편성도 피콜로와 잉글리시호른, 콘트라바순 등이 등장해 복잡한 편이었지만 서울시향의 연주자들은 흐트러짐 없이 정확하게 연주했고 김선욱은 다양한 주제와 선율을 다채롭고 극적으로 펼쳐 보였다. 김선욱은 2013년 그의 데뷔앨범에 수록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을 서울시향과 협연으로 녹음했던 인연이 있다. 김선욱은 독보적인 연주자이기도 하지만 단원들과의 신뢰와 소통을 잘 해내는 지휘자로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무대였다.

사진 서울시향 제공 

어릴 때 장래희망을 ‘지휘자’라고 적었다는 김선욱의 지휘에 대한 열정이라면 피아니스트로서 출발해 지휘자로 본격 전향한 정명훈이나 다니엘 바렌보임,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등과 같은 행보를 기대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김선욱 본인은 지난 6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피아니스트인지, 지휘자인지 어떤 수식어가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수식어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피아노 앞이든 포디움 위든 음표에 생명을 불어넣어 청중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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