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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Jun 16. 2020

[ccut] 나의 엄마는 ‘엄마’ 인형으로 살지 않았다

엄마가, 엄마의 프레임 따위는 부숴버렸으면 좋겠다

https://youtu.be/LcafFVV8kIo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4화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한 남자의 여자를 죽이고 엄마로 살았다.’는 어린 여자의 목소리가 나오는 장면.


나의 엄마는 드라마 속 엄마처럼 자신이라는 여자를 죽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만큼은, 엄마로 살지 않았다.




나는 언제부턴가 항상 남자 친구가 생길 때마다 내가 모성애가 없음을 미리 말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그런 내 모습이 결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이해시켜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감수성의 남자도 내가 왜 이런 감정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지, 그 감정의 뿌리가 된 ‘모녀의 애증 어린 관계’가 어떻게 형성이 되었는지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사실 나의 감정이지만 나조차도 너무 복잡해서 소화가 된 상태가 아니었다. 설명을 하면 설명할수록 초라해지고 구차해졌다. 초라해지고 구차해진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성질의 감정이 아니라는 뜻이었을 거다. 그냥 나의 감정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정도에서 끝냈어야 했는데 그땐 그게 어려웠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 줄 알았으니까.


어차피 완벽한 이해는 불가했다. 경험상 반응은 두 가지였다. 나를 배려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내 구구절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내 ‘잘못된 관념’을 뜯어고치려고 하거나.


난 잘못되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여자에게 모성애는 천부적으로 주어지는 것처럼 이해 못하는 남자 친구는 그냥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어졌다. 어떤 남자는 나에게 수치심을 주입하려고 했지만 이건 내가 수치스러워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수치심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도 몰랐고 사실 그 당시엔 나조차 몰랐지만 안쓰러워해줘야 했던 문제였다.


무엇보다 이건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모성애가 없을 수 있음을, 아주 명확하게, 아주 빼도 박도 못하게 설명할 방법은 없다. 아무리 기가 막히게 설명을 해봤자 ‘어쩜 여자가 그럴 수가 있어?’ 한 마디면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데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중요한 건 어떤 여성들에겐 그게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다. 거기다 대고 ‘어쩜 여자가’는 무의미하다.




나의 엄마는 참으로 사랑스러운 분이다. 가끔 귀여운 구석도 많고 지금도 엄마 나이답지 않게 순수하시기도 하다. 하지만 모성애는 없으셨다. 지금도 없으시다. 속상하지만 이제는 그녀를 이해하기로 했다. 다행인 게 나와 남동생, 둘 다에게 공평하게 없었다. 내가 볼 땐 가끔 더 동생 편을 드는 것 같았지만 동생 말을 들어보면 그건 또 아닌 거 보니 결국 엄마는 공평했다.


내가 어릴 적,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바로 나와 내 남동생이 ‘엄마’를 부르는 거였다. 나와 동생이 가끔 물었다.


-엄마를 엄마라고 안 부르면 뭐라고 불러?

-그냥... 좀 부르지 마, 제발.


그 외에도 싫어하는 게 많으셨는데, 밥 하는 것을 지긋지긋하게 싫어했고, 청소하는 것을 지긋지긋하게 싫어했다.  매 순간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하는 티를 아주 많이 내셨고 엄마가 ‘무언가를 싫어하는 걸’ 봐야 하는 게 우리 남매의 일상이었다. 우릴 안아주는 것도 싫어하셨던 것 중 하나였고, 장 보는 걸 싫어하셨던 기억도 난다.


엄마가 집안일에 학을 떼도록 싫어하는 건 당연하다. 최근에야 독박 살림, 독박 육아라는 개념이 생겼지, 1990년대, 2000년대 초반엔 다들 그러려니 하고 여자가, 주로 엄마가 집안일 혼자 다 했으니까. 내가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엄마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다가도, 그마저도 결국엔 싫어했다.


나는 어릴 때 장 보는 게 즐거웠다. 시장도 즐거웠고, 마트 가는 것도 설렜다. 하지만 엄마는 주로 마지못해 인상을 쓰며 장을 보셨다. 예상 금액보다 훨씬 웃돌아서 가계가 쪼들려서였는지, 이걸 또 집에 가서 손질하고 요리를 할 생각에 괴로우셨는지 여하튼 엄마의 얼굴에서 행복한 장보기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은 주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왜곡되기도 한다고 하니 내가 잘못 기억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내 기억 속의 난 엄마 옆에서 주로 주눅 든 채로 엄마의 카트를 쫓아다녔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장 보는 걸 싫어하게 되었다. 요리하는 것도 물론 싫어한다. 요리가 완성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나에게는 이미 유년시절의 불쾌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자취하고 일하느라 바빠서 요리하는 걸 싫어하는 걸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아닌 것 같다. 자취하고 일하면서도 매일 요리하는 주변 사람들 보면 틈틈이 인터넷으로라도 장을 보고 레시피를 뒤적이던데 나는 레시피를 사진과 텍스트로 보는 것만 좋다. 그걸 실제 요리로 구현해내고 싶지 않다. 요리를 싫어하는 엄마의 모습과 글을 좋아하는 내 습관이 결합한 것일까? 모르겠다.


요즘 들어선 엄마가 ‘모성애가 없는 성격’을 나에게 물려준 것 같아 감사할 때가 있다. 모성애가 없어서 연애할 때든, 사회생활할 때든 좋은 점이 더 많았다. 아닌 건 아니라고 딱 자를 수 있고, 연인이든 친구든 정해진 선 넘으면 고민을 길게 하지 않고 바로 끊고, 그 자리에서 정확하게 화낸 이유를 말할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했다. 이런 성격은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형성될 수 없는 성격인데도.




내 인생에선 엄마의 존재가 없던 시기가 없지만

엄마 인생엔 나의 존재가 없던 시기가 30년 가까이 있었다.


드라마 속 엄마들과 다르게, 항상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지금의 엄마도 좋긴 하지만, 모성애가 있었던 때의 엄마도 있긴 있었을까 궁금하다.


삼 남매의 막내로 곱게만 살다가 27살에 혼기 찼다고 갑작스레 하게 된 결혼 이후, 시어머니에게 구박받고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상황에 계속 노출되어 사느라 다정함을 잃어서 엄마 노릇이 싫어진 건지, 아니면 순수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걸 원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된 엄마 노릇이 원래부터 싫으셨던 건지 모르겠다. 아마 영원히 알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거나 세상의 압박 때문에 원하지도 않았던 엄마라는 위치에 구겨 넣어지고 말았으니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없었던 건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오래전에 독립했으니 동생도 제발 독립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이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속에서도 아들은 독립을 잘 안 하려고 한다. 드라마나 현실이나 어지간하면 독립들 좀 해라. 엄마 편하게.


그래서 엄마가 아무 눈치도 안 보고 진짜 제대로 장도 안 보고 밥도 안 하고, 청소도 안 하고 밥은 아무 때나 먹거나 사 먹고 집은 치우고 싶을 때 치우고, 그러고 사셨으면 좋겠다.


마음만 엄마로 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동안 억지로 세상 시선과 가족 때문에 갇혀있던 엄마의 프레임도 다 때려 부수고 이제라도 엄마가 그냥 자기 자신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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