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의 기준
어릴 때, 내 별명은 수도꼭지였다. 낯가림도 심했고, 타인의 접촉이 극도로 공포스러웠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뭘 물어보려고 뒤에서 팔을 살짝 쳤는데 너무 놀라서 운 이후로 한동안 그 친구를 포함해 몇몇 친구들이 수도꼭지라고 불렀다. 건드리면 눈물을 쏟는다고.
울보라고 부르지 말라고 누가 지적을 했다. 놀림에 지친 내가 짜증을 내며 한 말이었는지, 아니면 성격 대찬 어떤 여자애가 나를 대신해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게 울보,라고 부르지 마.'라고 말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울보라고 부르든 수도꼭지라고 부르든 내가 '별 일' 아닌 것에 잘 운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잘 울었다. 나조차 울면서도 '이게 눈물이 날 일인가' 싶은 일도 있었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거의 매일 울었다. 우느라 부은 눈이 가라앉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별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섭고 슬프고 눈물이 나는 걸 어쩌라는 말인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눈물과 울음을 참기가 불가능했다. 그 당시에는.
문제는 학교에서는 친구들이나 선생님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거나 거리를 지켜주었기 때문에 울고 싶을 만큼 울 수 있었다. 다만, 집에서는 그게 안 되었다. 울만큼 울면 기분이 좀 가라앉았는데 엄마는 내 울음소리를 유난히 듣기 싫어했다. 왜 우느냐고 묻는 엄마에게 이유를 말하면, 엄마는 되물었다.
-그게 울 일이야?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당시의 나로선 울 일이었을 것이고 지금의 나로선 아마 울지 않았을 일일 것이다. 어쨌든 눈물이 나고 울어야겠는 걸 어쩌란 말인가. 제발 내버려 두라는 나의 말에 엄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별 일이 아니잖아. 너는 왜 항상 별 일도 아닌데 울어?
그놈의 ‘별일’.
그 이후 오랫동안 ‘별 일의 기준은 무엇인가'가 나에겐 중요한 화두였다. 그래서인지 10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나는 '별 일로 울어야겠다.'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했던 것 같다. 변명인 걸 알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별 일을 저지른 걸 이렇게라도 밝힌다. 나는 누가 봐도 혼날, 별 일인 짓을 몇 번 했다.
고등학생 1학년 첫 시험 때 나는 폭력적인 선생님에게 반항의 표시로 시험지에 백지를 제출한 적이 있다. 내 담임 선생님 과목에.
대학생 때는 부모님 몰래 대학교 1학년 마치고 휴학을 한 적이 있다. 1년 동안 휴학 사실을 숨겼다가 학비 연말정산받을 때 들켰다. 갖고 있던 등록금은 들킨 다음날 돌려드렸다. 그걸로 유럽여행 가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혼날 때 혼나더라도 그때 그냥 유럽여행 갔다 올걸 하는 생각이든다. 30대가 넘어간 지금도 유럽에 못 가봤고, 더욱이 코로나 때문에 이제 유럽 여행도 마음 편하게 못 갈 텐데 그때 혼나고, 나중에 갚을지라도 더 질러볼 걸 싶은 마음이 든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어보신 분이 있다면 아실 것이다. 거기선 스탠리의 잘못된 모든 행동들을, 사람들은 별 게 아닌 것처럼 말한다. 도박도 해도, 가정폭력을 휘둘러도, 불륜을 저질러도, 심지어 강간조차도. 그게 그렇게 별 거냐고. 하지만 정숙하지 못한 여성은 별 것이 된다. 내가 지금 뭘 읽은 거지. 이게 바로 '가스라이팅의 세계'인가.
시험 백지 사건과 휴학 사건에 대한 후기를 쓰려니 좀 맥이 풀린다. 그때의 나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기 힘든 분노를 자주 느꼈다.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문제가 많고, 미래는 왜 이렇게 암울하고,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왜 이렇게 없는 건가 같은. 왜 문학적 표현으로도 가끔 쓰이는 말 중에 피가 뜨겁다는 말이 있는데 글쎄, 그건 문학적 표현이라기보다 과학적 사실이다. 화가 나면, 내 몸에 흐르는 피가 뜨거워지는 게, 뜨거운 상태로, 그것도 빠르게 흐르는 게 느껴졌다.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일의 맥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저런 이유로 분노를 터뜨리기는 민망했다. 혼이 날 일을 하고, 그걸 빌미로 울고 불고 싸우면서 내가 느끼는 기분을 설명해야지, 가 내 목표였다. 위의 두 가지 일 정도면 별일인 건 분명했다.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난 반드시 혼이 나고 말 거야. 그리고 울 거고, 그리고 개처럼 싸울 거야.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백지를 내고 난 후 나는 선생님께 따로 불려 가지 않았다. 내 예상으로는 내가 뺨 한대 정도는 맞을 줄 알았다. 물론 맞고 가만있을 생각이라서가 아니라 이보다 더 작은 일로도 뺨 정도는 때리는 선생이었으니까 각오는 하고 있었다. 맞을 각오, 그리고 교육청에 신고할 각오.
시험이 끝난 이후의 첫 수업 날, 선생님이 말했다. 너희들, 그거 아니? 우리 반에 시험지 백지를 낸 애가 있다? 그것도 내 과목에? 그리고 내 이름을 불렀다. 얘, 너 그런 짓한 이유가 뭐니? 준비된 멋진 대답을 했으면 좋겠지만 이건 내 계획과 달랐다. 왜 안 때리는 거야, 때리면 신고로 이어질 수 있는데. 행동은 준비되었지만 대답은 준비되어 있지 않던 나는 우물쭈물 대답을 했다. 선생님이 제 짝꿍 머리카락 함부로 잘라서요. 조금 부연하자면,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기는 두발 자유화가 아니었고 귀밑 3cm가 룰이었다. 그런데 그걸 넘었다고 가위를 들고 와서 그 아이 머리카락을 잘랐던 일이 있었다. 다른 여러 폭력적인 상황들이 있는데 우선 생각나는 건 그게 가장 컸다. 내 짝과 난 친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아이에게 벌어진 일이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다는 불쾌감이 커서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미리 경고를 한 것 같다. 그게 다니? 그게 다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래, 니 성적 니껀데, 니가 말아먹는 거 내가 어쩌겠니. 가 이 별일의 끝이었다. 이 일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일도, 졸업할 때까지 두번 다시 이 일을 언급하는 일도 없었다. 이게, 이정도로 끝날 정도로 별일이 아닌가?
대학교 때의 경우 휴학을 한 걸 들키고 나서, 그 돈을 어쨌으며 일 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는 부모님의 질문에 그냥 학교 가는 척 그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가거나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했다고 했다. 왜 휴학을 했느냐는 질문에는 대학생활이 내 생각과는 달라서 돈 아까워서 자퇴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동의가 없이는 자퇴는 불가해서 일단 휴학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퇴하게 허락해달라고 했다. 죄송함이나 반성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혼날 때 혼나더라도 내 인생의 시간을 내가 결정할 권리는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했다는 것, 그리고 학비라며 돈을 받아갔다는 사실은 잘못했기 때문에 이 상황 속에서도 뺨 정도는 맞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이건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뺨 두 대까지는 맞을 생각이었다. 세 대 때리려고 하면, 그때 싸울 생각이었다. 엄마, 아빠가 내 고민을 뭘 아시냐고 소리치고 울면서. 대신 맞고 나서 자퇴는 끝까지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빠의 첫마디는 미안하다,였다. 아빠가 미안할 일이 한구석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목표는 자퇴였으므로 아빠가 이렇게 나오면 안 되는데 싶어 나는 당황했다. 물러서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빠가 뭐가 미안한데? 나 자퇴하게 해 줘, 학교 다니기 싫으니까 자퇴하기 해줘, 라고 막무가내로 아빠를 몰아붙였던 것 같다. 아빠는 내 손을 가만히 뿌리치며, 오늘은 제발 자고, 아빠한테 제발 생각할 시간을 조금만 달라고 했다. 다음날, 갑자기 10년은 확 늙어버린 아빠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내가 한발 물러섰다. 그냥 학교 계속 다니겠다고.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 것 같다. 대학교를 굉장히 다니기 싫어했던 탓에 졸업하는 데 7년 반이나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졸업은 했다. 중요한 건, 바깥에서 봤을 때 분명한 '별 일'인 일 앞에서, 혼날 소지가 충분한 일에서 나는 전혀 혼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한테 저 두 가지 일이 별 일이었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한테는 별 일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물론 그로 인한 손해는 분명히 있었다. 고등학교 내신에 스크래치가 났고, 암묵적으로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라는 학생을 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을 것이다. 휴학 때문에 결국은 남들보다 긴 기간 학교를 다니느라 더 많은 학비를 내게 되었고, 아마 나이 때문에 취업 문턱에서도 조금은 걸러졌을 테지만 이제 와서 뭐 어쩔 것인가. 두 일을 겪으면서 '별 일 아니라는 일'의 기준이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도대체 알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알겠다. 별일인지, 별일이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별 일인지 아닌지는 내 마음 바깥의 누군가가 결정해 주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있어 중요한 위치의 인물이라 해도 말이다. 시험에 백지를 내고, 마음대로 휴학을 하고 성적이 엉망이 되었지만 내가 별 일이 아니라고 치부해버리면 '별 일이 아닌 일'인 게 되고, 스치듯이 누가 살짝 친 것도 내가 두려우면 '별 일'인 것이다. 예전에는 별 일 아닌 일에 두려워하는 내가 문제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떤 문제에 대해, 그게 그렇게 별일이야?라고 무례하게 말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지만, 그렇게 말해온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별 일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