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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Oct 22. 2023

<나는 솔로>16기 상철을 바라보는 여자 셋의 입장

그는 좋은 남자인가, 나쁜 남자인가, 이상한 남자인가

얼마 전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우리 셋은 직업도, 일하는 시간도, 살아온 지역도 다 달라서 우리가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얼추 비슷해서 가치관이 엄청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나는 솔로>16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상철의 이기적임(계속 ’여자가 남자 따라와야지‘를 시전하는 모습)을 지적하자 친구가 말했다.



-이기적인 게 뭐? 가부장적인 게 뭐? 솔직히 저 정도로 능력 있는 남자면, 난 ‘아이러브 가부장제’야. 나는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싹 다 돈으로 해결하는 삶, 진짜 한 번은 화끈하게 살아보고 싶다. 내 월급 진짜 알량한데 상철 월급이 7000만 원 정도 된다며? 그럼 그냥 나는 남편 돈 쓰는 인플루언서로 살면 되는 거 아냐? 돈 펑펑 쓰는 걸 보여주는 게 돈이 되는 시대잖아. 저 정도면 ‘상철 부인’이 직업이라고 해도 되는 거 아님? 미국? 100번도 따라간다.




뭐라고? 아이러브 가부장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이렇게 다르다고?


나는 여자가 남자 그늘에 있는 그림보다, 남자가 여자 그늘에 있는 그림에 더 안정감이 드는 가모장제적 그림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이 그림의 예를 들자면 장윤정+도경완, 김은희+장항준 같은 그림이랄까. 원래 나는 극단적인 예를 드는 걸 좋아해서 너무 클래스가 높은 예들을 든 것 같은데, 일단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 내가 원하는 삶은 그렇다. 여자 그늘에 남자가 편안히 사는 삶. 내가 밤늦게 퇴근하고 돌아와서 코트 던지면서 ‘밥은?’하고 묻는 삶.


그런 내 사고 회로로는 이해가 안 가서 ‘진짜 그런 삶을 살고 싶어? 남편 돈으로 먹고살고 쇼핑하는 삶?’이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내가 더 이해가 안 간다는 식으로 뭐가 문제냐고 되물었다. 나는 진짜 이해가 안 되어서 되물었다.


-사람 마음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데? 아는 사람도, 거기선 말이 안 통해서 일할 곳도 없는데 남자가 돈 좀 많이 번다고 따라갈 수 있다고?

-그렇게 쳐도 돈 없는 남자 마음이 뒤집히는 것보다는 돈 잘 버는 남자 마음이 뒤집히는 게 낫지.



‘아이러브가부장제’인 그녀와 ‘가모장제옹호론자’인 내가 설전을 벌이고 있자 페미니스트인 친구가 어차피 너네가 같은 남자 만날 일은 없을 거 같은데 왜 이런 걸로 싸우는지, 이게 과연 이렇게 길게 대화할 거리가 되는지, 그게 더 이해가 안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게 이렇게까지 싸울 일이야? 생산적인 이야기 하면 안 돼?


가부장제옹호자와 가모장제 옹호론자가 동시에 소리쳤다.


-싸우는 거 아닌데?

-이게 왜 안 중요한데?




이게 다 내가 장녀라서 그런 건가.


아무리 남자가 돈이 많아도(많이 벌어도), 그 남자와 함께 해야 하기 위해 직업이 없어지고, 사회적 지위가 없어지고, 친구들과 다 떨어지고 그래서 사회적 관계망이 줄어들고, 선택의 주도권이 좁아지는 선택지를 선택하는 게 너무너무 싫을 것 같은데.


금전적인 문제를 겪을 일 없게 하는 남자라면, 그게 다 상쇄될 거라는 친구의 말이 납득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중재자 친구의 말대로 생산적인 주제로 대화의 주제를  옮겼다. 그런데 생산적인 대화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상철이 이상한 놈이라는 생각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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