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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Oct 14. 2023

<조커>를 보다가

잘  알겠지만 늘 웃으려고 하는데 너무 힘들어요

오랜만에 영화 <조커>를 다시 보았다. 왜 그런 영화 있지 않은가. 보고 나서 나중에 한 번 더 봐야지 하는 그런 영화.


나에게는 <조커>가 그런 영화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다시 또 보고 싶지는 않았다. 대중 영화지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 묵직해서 시간이 경과한 후에 보고 싶었다.


너무 유명한 영화라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혹시나 개봉 당시 너무 바빴어서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 간략히 영화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자면 '정신 질환이 있고,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남자 아서 플렉이 누적된 여러 스트레스 요소들로 인해 흑화해서 배트맨의 숙적이자 고담의 전설적인 악당 조커로 변화하는 과정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배트맨 시리즈 중 빌런인 조커의 성장과정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꼭 배트맨 스토리와 연결짓지 않고 보아도 무방하다. 사실 아예 배트맨 시리즈의 서사를 모르고 봐도 전혀 문제없이 몰입 가능할 수 있게 만든 이야기다.


여하튼, 오랜만에 다시 보는데도 좋았다. 창작자로서 잘 만든 이야기를 보니 좋긴 좋았는데 마냥 마음이 편하지 않은 부분도 존재했다. 영화가 사회적 약자 혹은 패배자였던 사람이, 사회의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너무도 설득력 있게 그려서, 사회의 가해자가 휘두르는 폭력을 직간접적으로 겪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마냥 거리를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아서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굴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는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주려고 한다. 광대 일을 하는 이유도,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가끔은 불편할 정도로, 그는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어 한다.


그 이유는 바로 그의 어머니에게 있었다. 그의 어머니 페니는 아서를 '해피'라고 부르지만 사실 아서는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면 자신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 한다. 그에게는 남들을 웃기게 하는 재능이 없는데도.


아서의 어머니 페니 플렉의 유일한 희망은 '토마스의 구원'이다. 그래서 자신이 30년 전에 가정부로 일했던 재력가 토머스 웨인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보낸다. 그가 자신과 아서를 돌봐줄 거라고 하면서. 어느 날 데이트를 하고 온 아서가 문득 어머니가 쓴 편지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내용을 읽게 된다.


편지 안에는 토머스를 향한 페니의 일방적인 사랑 고백과 함께, 아서가 당신의 아들이고 착한 아이이며, 우리의 희망은 당신이니 당신이 제발 우리 모자를 구해달라는 내용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사랑하는 토머스.


당신을 많이 사랑해요.

우리 사랑 때문에 너무 힘들었죠

앙신 아들과 날 도와줘요

당신이 유일한 희망이에요

아서는 착한 아이예요

슬퍼 보일 때가 많아도 얼마나 잘 커주었는지...

만나보면 뿌듯할 거예요

영원히 사랑해요


페니 플렉이"


'슬퍼 보일 때가 많아도 얼마나 잘 커주었는지...'


나는 이 문장이 몹시도 불편하고 불쾌했다. 페니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슬플 때가 많았다는 것을. 그걸 알면서도 페니는 항상 아서를 '행복(해피)'이라고 부르면서, 아서의 슬픔을 한 번도 보듬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의 슬픔을 보듬어준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다해 상대방을 조심히 들여다보아야 하는 쉽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에, 그녀는 하지 않았다.


그의 슬픔이 가난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아버지가 없는 삶에서 오는 공허감 때문일 수도 있고, 병약하고 정신 질환이 있는 어머니를 혼자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일 수도 있고, 불안한 미래 때문일 수도 있다. 당연히 나열한 이유들이 모두 다 복합적으로 섞인 슬픔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페니는 자신이 양육하는 이 아이가 혼자 슬픔을 감당하고 있었다는 걸 알지만 방치(혹은 방관)했던 것이다. 그것도 '해피'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그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행복한 감정 이외는 절대 자신에게 보이지 말라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세뇌이기도 했다. 또 그 감정 이외에는 보기 싫다는 거부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사랑을 느끼는 감정들이 다양하게 가지고 있는데 아서가 어린 시절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게 아예 차단해 버린 것이다. 그 어렸던 아들이 40대가 된 지금까지.


아서가 자신이 읽은 편지 내용에 대해 묻자 페니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욕실로 가 문을 잠그고 소통을 거부한다.


-내가 쓰러지는 꼴 보고 싶어?


무슨 상황인지 설명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아서에게 페니는 다짜고짜 싫다고 소리친다. 자녀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구를 한 것임에도 페니는 '계속 화내면 말 안 해'라며 욕실이라는 동굴로 들어가 버린다. 아서는 단지 놀라서 설명을 요청한 것뿐임에도.


아서는 솟아오르는 강렬한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거실을 서성인다. 그리고 억제된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알았어요(뭘 아는지 모르겠지만).

-화 안 났어요(화난 것 같지만).

-다 풀렸어요(안 풀린 것 같지만).

-말해줘요(제발 말해줘요).


그제야 페니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한다.


-해피야, 그는 특별한 사람이야. 힘도 있고. 우린 사랑했지만 그 사람이 헤어지는 게 최선 이랬어. 아무한테도 말할 수가 없었다. 서류에 서명했거든.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뭐라고 수군거리겠어? 너에 대해선?


아서가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뭐라고 했을까요?



아서는 자신의 아버지(일지도 모를) 토머스 웨인을 찾아가지만 토머스는 페니가 망상장애이며 아서 넌 입양아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서는 항변한다. 바라는 거 없다고. 그냥 아버지로서 한번 안아주길 원했다고. 왜 이렇게 무례하냐고. 하지만 토머스 웨인은 아서의 코를 후려친다. 꺼지라며.



겹겹의 비밀에 싸여있던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아서가 아캄 주립 병원에 가서 어머니(페니 플렉)의 기록을 요청하는 장면이 있다. 서류 관리 직원과 가벼운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던 아서가 말한다.


아서 : 여기 들어오는 사람들, 다 범죄자예요?

직원 : 일부는요.

일부는 그냥 미쳐서 자신과 사회에 위협이고

또 일부는 길을 잃고 갈 곳이 없죠.

아서 : 네, 이해해요. 때로 나도 그래요. 저번에 몇 명한테 화풀이했는데(사람 셋을 죽였다) 죄책감이 하나도 안 들더라고요.

직원 : 네?

아서 : 사고 쳤거든요. 아주 나쁜 짓을 했죠.


쎄한 기분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직원에게 아서는 계속해서 말을 건다.


아서 : 잘 알겠지만, 늘 웃으려고 하는데 너무 힘들어요.

직원 : 이봐요, 난 그냥 직원이고 주 업무가 서류 정리예요.

딱히 해줄 말은 없지만 상담을 받아봐요. 정부 지원이라 무료니까.

아서 : (익살스럽게) 그거 다 끊겼어요.

직원 : (민망해하며) 여기, 플렉의 기록.





아서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늘 웃을 수만은 없다. 하지만 매번 그것을 표현할 수는 없다. 그래도 가까운 이들에게는 나중에라도 그런 감정들을 토로하며 어느 정도 해소를 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가벼운 분노나 짜증을 터뜨리기도 하고 슬픔을 드러내기도 하며 조금은 가벼워진다.


하지만 아서는 그럴 사람이 없다. 어릴 때도 정서적으로 지지받지 못하며 성장했는데, 거기다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를 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1차 유기), 그 아버지라는 사람을 찾아갔더니 넌 내 아이가 아니며(2차 유기) 사실은 네 엄마의 아이도 아니(3차 유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사실 나는 부모의 양육방식, 탄생 배경 등이 현재 그 사람의 겪게 되는 문제의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하는데 반대한다. 물론 부모의 양육방식, 탄생 배경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나,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부모님과만' 관계 맺기를 하지는 않는다. 유치원을 다니고, 초중고교를 12년 다니고 졸업하며 그 안에서 친구와 사귀고 싸우며, 가까워지기도 멀어지기도 한다(다른 교육과정을 거치는 이들도 존재하지만). 이후에는 사회에 나가서 자신의 패턴과 능력에 맞는 일을 하며 다양한 관계 맺기를 하며 사회인이 되어 가는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서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과정은 매 순간 정서적으로 매우 적절하지 않은 방식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넣어 말하자면, 아서는 정서적으로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탄생의 진실을 알게 된다(진실이라고 썼지만 사실 영화는 이게 진실인지 뭔지 확실히 말해주지도 않는다. 그럴 가능성, 그리고 어떤 주요한 맥락들을 보여줬을 뿐이다).  


웃는 게 힘든 사람이, 늘 웃으려고 했으니 그 내면이 뒤틀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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