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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 레터 Mar 26. 2020

그래서 화분을 키우기 시작했지.

아니, 사실은 화분이 나를 키우는 중 


코로나로 집에 갇혀 영화에 깊이 탐닉하던 중, '매드맥스'를 다시 보게 됐다.

황폐해진 땅, 멸망한 인류의 화려했던 문명, 아픈 사람들. 

그 와중에도 희망을 놓지 않고 씨앗 가방을 품고 다니는 할머니 전사의 모습을 보며 

흙을 박차고 나오는 새싹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됐다. 


마냥 튤립을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생물은 파종 시기와 개화 시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튤립은 좀 늦은 때였다. 그래서 인지 파는 곳도 마땅치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다 키울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생명이란 건 다 시기가 있는 거였다. 




나는 씨앗을 고를 때 가장 먼저 향을 상상한다. 

두번째로는 그 꽃이 찬란하게 피었을 때의 멋진 모습. 

세번째로는 먹을 수 있는가. 

이 순서에 맞춰 씨앗을 골랐다. 

 

라벤더, 캐모마일, 야로우.


해바라기 씨앗도 구매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픈 시기를 겪고 있는 친구에게 

해바라기 새싹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3일 동안 마음을 졸였다.

볕이 잘 드는 곳에 두고 매일 아침 들여다 보고, 물을 주고 통풍을 시켜주고 사랑을 줬다. 

4일 만에 새싹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작은 몸으로 바들바들 떨면서 머리에 흙가루를 이고 올라오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이렇게 작고 연약한 새싹이 나중에 라벤더가 되고 캐모마일이 된다니,

상상이 잘 안됐다. 


문득 새싹이 4일만에 올라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새싹은 내가 심은 날 부터 매일매일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그래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것이다. 


인간도 그렇다. 매일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날 반드시 싹이 핀다. 

겉보기에 변화가 없다고 해서 '에이' 하고 실망하면 안되는 것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에. 


빨리 눈에 보이는 성장만을 원해서는 안된다. 

새싹처럼 커야 한다. 우리는 생명이니까. 

생명은 인내의 힘이다. 

성장에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자연은 모든 걸 이해해 줄 것이다. 


느리고 약하던 새싹이, 흙가루를 머리 위에 이고 

고개를 빼꼼 내미는 아기 새싹이,

길고 튼튼한 줄기와 뿌리를 갖고 꽃을 피워내고, 좋은 향을 만드는 캐모마일이 되는 날까지

천천히 같이 가면 된다. 


매일 세상이 똑같은 것 같고, 이 아픈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는 것만 같고.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걸,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꼭 명심하자. 

반드시 새싹은 핀다. 

우리의 세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라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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