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4일. Day 12 in 후쿠오카
*야나가와에서 나룻배 타보기 [원래는 2월 20일 예정이었음]
헤르만 헤세는 자신을 궁금해하는 것이 어렵다고, 자신을 향해 걷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인간은 타인에 대한 모든 것은 궁금해하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는단다.
지금 나의 삶이 행복한지, 삶이 재미가 있는지 혹은 없는지?
하는 일이 업으로 느껴져 고달픈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갈림길인가?
왜 매번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을 해야 하나?
어떤 삶을 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자신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을 조곤조곤 자신에게 설명하는 일이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어떤 것을 대신 수행하는 삶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행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고 자기가 계획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삶을 사는 삶보다 더 행복한 삶이 어디 있을까?
자신을 궁금해하는 이 어려운 일은 그것을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은 큰 차이가 날 것임에 틀림없다.
사람은 자신에 대해 궁금해할 때 힘을 얻는다.
야나가와는 일본의 베니스라고 한다.
니시데츠역에 가서 기차를 타야 했다. 기차삯이 860엔이나 하는 걸 보니 꽤 먼 곳인가 보다.
기차역으로 가지만 정확한 기차출발 시간은 몰랐다. 꼭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한테는 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시간 보내기는 참 좋기 때문이다.
기차시간 때문에 촬영하고 싶은 장면을 놓칠까 봐 될 수 있으면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맘에 드는 장면을 촬영하지 못한 아쉬움은 오래가기 때문이다.
아침 햇빛 때문에 좋은 장면을 만나서 여러 컷을 촬영하면서 갔다.
이제 역까지 가는 길을 알고 있으니 어플의 신세 지지 않아도 되어 여간 편한 게 아니었다.
역에 도착해서 야나가와 가려고 한다니까 역무원이 말을 시킨다. 아마도 기차비와 유명하다는 장어, 배를 타는 가격이 합해진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유용한 안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장어를 먹지 않을 거라서) 필요 없다고 말하고 나서 전광판을 보니, 8시 30분 기차다. 시계를 보니 28분이다. 타는 장소 번호를 확인하고 부리나케 뛰어갔다.
플랫폼에 가니 기차가 좀 멀리 보인다. 정신없이 뛰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기차를 찍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기관사 아저씨에게
숨을 헉헉거리며 야나가와에 가냐고 큰소리로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타고 보니 내 목소리가 너무 컸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은 아무 일 없는 듯 앉아있었지만 기차 안이 너무 조용했다.
아차! 사람들이 다 보고 들었겠구나.
슬금슬금 중간의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은 흐린 날이 많았는 데 오늘은 날씨가 맑았다.
기차밖의 장면을 찍고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급열차라 몇 정거장 서지 않는 기차였다.
사람들은 사진 찍는 나의 동선을 눈으로 따라가며 뭘 찍는지 궁금해했을 거 같았다. 창밖의 햇빛과 풍경이 좋아서 왔다 갔다 하며 엄청 찍었다.
야나가와역에 내려서 지도를 켜고 배 승선장을 찾았다 750미터, 그까짓 것 걷는 거는 이제 일도 아니지.
내 앞의 4 사람이 배를 타고 떠난다. 표 받는 아저씨가 나도 타려는가 궁금해했다.
정보에 의하면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니 누가 타고 가는 모습을 찍어 보고 싶어서 아니라는 손짓을 했다.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 데 점잖게 생긴 할아버지가 곁에 와서 카메라가 멋지다고 말을 시켰다.
고맙다고 하니, 배를 탈 거냐고 물었다.
배를 탈 땐 신발을 벗어야 한다 길래 알고 있다고 했더니, 뜬금없이 그 말을 영어로 하면 뭐냐고 다시 묻는다. 제대로 대답한 듯하다. 할아버지는 굿이라며 웃으면서 여행 잘하라고 고마운 말을 해줬다.
아무래도 내 앞에 배를 타는 사람들이 없으니, 더 기다릴 수 없어 배를 타야겠다고 생각하고 표를 끊었다.
그러자 바로 그 뒤로 한 15~16명이 티켓을 샀다. 역시 이번에도 혼자 여행객은 나뿐이었다.
일부러 맨 앞에 앉았는 데 벗은 신발의 보관함이 앞쪽에 있어서 타는 사람들의 신발을 받아줘야 하고 목적지에 닿으면 내리는 사람들의 신발을 꺼내 줘야 하고 맨 나중에 내려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사진 찍기는 최적의 자리였다.
뱃사공 아저씨는 출발하면서 국적을 조사하였고 한 사람뿐인 나를 코리아라고 부르고, 어떤 단어를 말하고는 한국말로 뭐냐고 묻기도 했고, 어떤 장소, 장면마다 설명하는 데 자세히 잘 모르겠지만 참 열심히 재미있게 운행하시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였다.
내 앞에 앉아있는 일본 여자와 잠깐씩 단어로 말하며 내용을 짐작했다.
그 뱃사공 아저씨는 배에 있는 타이완 사람들을 위해 첨밀밀을, 나를 위해서는 아리랑을 불러줬다. 나도 큰 소리로 함께 불렀다.
중간중간 각각의 사람에게 말 걸고 관심 가져주며 노래도 하고 열심히 일하시는 뱃사공아저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저 앞에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 탄 우리 배와 같은 종류의 배인데 두 척이 있었다.
맞은편 여자에게 결혼식이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하면서 그 배를 향해 축하한다고 외치는 거였다.
나도 따라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신부가 정식으로 전통 혼례 예복을 입은 것은 처음 봤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데 웃어주었다. 찍지 말라고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ㅎㅎ
신랑 각시도 사진 찍을 때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맘 편히 찍었다.
종점에 우리가 먼저 도착했고, 좀 지난 후에 기모노 차림의 가족들이 왔고 신랑 신부가 배에서 내려 육지로 올라왔다.
배에서 내려면 다치바나 영주집에 찾아가야 한다고 했는 데 배의 종점이 바로 그곳이었다.
물어 물어 찾아가야 하나! 했는 데 얼마나 좋은 지, 그리고 그곳은 결혼식장이기도 하다던데, 아까 본 그 신랑신부가 여기서 결혼식을 하나보다라고 짐작했다.
신랑신부의 입장을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직원들이 빨간 카펫을 깔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장어집을 갈 것도 아니고 단체여행 온 것도 아니니 신랑신부를 기다리기로 했다.
드디어 신랑 신부가 도착하고 직원 한 사람이 나에게 종이학 접은 걸 한 움큼 주면서 손으로 받으라고 하였다. 신랑신부에게 던지라고, 축복해 주라고,
분명히 하객이 아님을 알 텐데. 카메라 잠시 두고 나도 축복의 말을 하며 하객들과 함께 새신랑 신부에게 종이학을 높게 던져주었다.
주변이 나를 선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모두가 축하해 주는 기쁘고 행복 넘치는 잔치였다.
우연히 일본 전통 결혼식의 한 장면을 보았던 건 오늘의 선물이었다. 재미있는 사진을 제법 찍은 것 같았다.
뱃사공 아저씨에게 친절하게 해 줘서 고맙다 인사했더니 여행 잘하라고 인사해 줬다. 자기가 소개해준 장어집으로 꼭 가라는 뱃사공 아저씨의 당부를 알았다고 대답하였지만 혼자 마을을 둘러보았다.
나름 유명한 작가의 생가터와 기념관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
사진전이면 들어갔을 텐데, 문학작품에 대해선 읽어봐도 잘 모를 테니까.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옆의 집들, 집들 앞에는 아무렇게나 심은 듯한 꽃들, 고급진 화분이 아닌데도 잘 어울리고, 정겨운 화단, 널어놓은 빨래… 조용하다.
슬슬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된 것 같아서 어떻게 돌아가나? 가지고 온 일정표에는 ‘역순으로’라고 쓰여있던데..
배는 아까 탔던 곳으로 가지 않는다던데 (편도만 운행) 하면서 우연히 배에서 내어준 안내물을 보니 역까지 데려다주는 무료버스가 있다고 쓰여있다. 운행을 자주 안 하기 때문에 꼭 그 시간에 맞춰타야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난 기쁜 마음으로 꼭 그 버스를 타야 했다.
와!! 이런 일이!!! 어려울 것 같던 일이 한순간 해결되는 기분이었다. 마을을 다니다가 시간에 맞춰 버스 정류장인 듯한 곳에 가 보니 벌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번 차 못 타는 거 아냐? 하면서 줄 서있는 한 사람에게 무료 버스 타는 곳이 맞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그런 거 모른다고 그 앞의 식당에 들어가는 줄이라고 대답했다
나눠 준 종이의 그려진 약도에 의하면 분명히 여기 이 근방 같은데.. 그때 갑자기 아주머니 한 분이 내가 곤경에 빠졌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 아주머니가 이 부근에 버스 정거장이 어디냐고 줄 서있는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아들인 듯 젊은이는 내가 셔틀버스라고 하니까 일본식 영어 발음으로 샤틀버스 하는 데 이 와중에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여하튼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면서 한 마디씩 하는 데 사람들이 열댓은 모였나 보다.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서 정거장을 찾느라 주변을 둘러보고 어쩌면 좋으냐는 표정들이었다.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오히려 난 정지상태로 서서 이 난국을 어찌해야 하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다음번 들어오실 분 호명하러 식당 종업원이 나오고 그 대장 아줌마가 셔틀버스정거장이 어디냐고 크게 물었다. 그 여직원이 바로 옆이라고 대답하자 그 모든 사람이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이 상황이 너무나 고맙고 재밌어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웃었다.
역시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아줌마는 최고의 해결사이다.
도착하기 7분도 안 남은 버스를 놓칠까 봐 걱정은 되었지만 휴게소의 화장실도 헐레벌떡 뛰어서 다녀와 버스 탈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고 버스를 기다렸다.
알고 보니 일반인들은 모르는 게 당연한 올 때 배를 타고 온 사람들만 태워주는 정거장 표시가 없는 무료 셔틀이었다.
한국어로 된 팸플릿도 있었다.
엊그제 다녀온 노코노시마하고는 천지차이로 대비되는 곳이다.
누군가 물어 온다면 이 뱃놀이를 적극 추천할 것이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니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었다.
야나가와에서 다시 니시테츠역으로 돌아왔는데 아직 오후, 1월 30일에 못 올라간 아크로스타워 옥상정원에 올라갔다. 멀리 후쿠오카 항구도 보이고 파란 하늘과 주변을 내려다볼 수 있어서 7층 높이를 걸어 올라간 보람이 있었다.
내가 오늘 무엇을 할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정해보고 그대로 하려고 했다.
그런 중에 뜻밖의 상황을 대하고, 친절을 배우고, 잠시나마라도 사람들 사이에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오늘은 처음으로 580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 물론 내 맘에 드는 것이 몇 장일 지 모르지만 이렇게 열정적으로 촬영한 것은 이번여행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몸이 고단하지 않고 오히려 개운하였다.
아까 신랑신부에게 던지기 전에 골라 온 분홍색 학 두 마리, 파란색 학 한 마리를 머리맡에 두었다. 뭘 하고 싶은 지, 왜 하려고 하는지, 행복한 지.. 자신과 이야기하며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
긴 하루를 보냈더니 이야기도 길었다.
p.s. 왜 분홍 학 2마리 파란 학 1 마리일까? 이미 두 명의 손녀가 있으니 임신한 막내딸은 아들이었으면 하고 바라었기 때문이다.
이 학 세 마리는 여행할 동안 호텔 머리맡에 놓았고, 마치 손주들을 대신해 나와 함께 있는 듯했다.
물론 지금도 가지고 있다.
16452보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