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9일. Day 6 in 후쿠오카
이제 겨우 난방과의 싸움은 안 해도 될 듯하지만 (더운 바람 나오는 방향이 내가 침대에 누우면 딱 얼굴 방향이었는 데 방향을 바꿨다. 그랬더니 약간 춥기는 하지만 아주 훨씬 좋다. 진즉 이 생각을 왜 못 했는지.)
많이 잔 것 같은데 12시 40분이다.
또, 잤는데, 1시 좀 넘었다.
또, 3시 10분
4시 15분부터는 아예 일어나 앉았다.
속이 쓰리다.
커피 때문이다. 커피의 향과 맛을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은 늘 있지만 안타깝게도 커피의 좋은 점을 함께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체질이라 한 번씩 무진장 아프다. 그럼에도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가끔 마시다가 호되게 당하는 때가 있는데 이번에 걸린 듯하다.
일단, 쓰린 속을 달래려고 지난번 빵집에서 사 온 바케트 빵에 치즈를 넣고, 물과 함께 먹는다.
노트북으로 한국 소식,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가
7시 좀 넘어서 다시 잠들었다.
눈을 떴더니 8시 50분이다.
그 사이에 라면을 끓일 때 외에는 가스불 앞에 서 본 적이 없는 남편은 국에 넣어 먹는 소금이 뭐냐고 물어보았는 데 자느라 대답이 늦었다. 어떻게 했겠지 하고 다시 물어보거나 답장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랬다. 나이를 먹으면 남편들도 부엌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슬픈 의미로 한 이야기겠지만 맞는 말이다. 남편은 그동안 요리라고는 해본 적이 없으니 부엌에서 우왕좌왕했겠지.
새벽 불면에 시달리다가
이렇게 뒤척이다가 오늘 어떻게 보내지? 하는 염려 없이 아침늦잠도 잘 수 있다는 걸 알고
달라진 지금 환경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알람소리에 일어나고, 탁상 다이어리의 할 일을 체크하던 그동안의 생활이 아니라
아직 좀 어색하지만 원래 이렇게 지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역시 환경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오늘은 일요일! 일정표에 일정이 없는 날이다.
매일 다니면 힘들다고 가끔씩 쉬는 날을 만들었는 데 오늘이 그날이다.
문득, 왜 꼭 일정표 따라 움직이려고만 했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늦잠도 잤으니, 오늘은 내 생각대로 하루를 지내보리라!
후쿠오카 성당과 예쁜 카페를 검색해 봤다.
타고난 건강체질이라 여겼는데 걱정 안 했던 몸 건강에 대해 신경이 많이 쓰이는 걸 보니 나이를 먹었나 보다.
무릎이 그만하니
이젠 손목이 말썽이다.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보호대까지 하고 길을 나선다.
버스를 타려고 집 앞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마침 버스가 올 시간이 되었다.
(막내딸과 아비뇽에 갔을 때 휴일인데 평일 시간으로 버스를 기다리다 황당했던 경험이 떠 올라 이번엔 잘 찾아봤다)
텐진역을 간다고 하니 기사분께서 친절하게 지하철이 빠르다고 알려줘서 버스 타기 경험은 하지 못했다.
걸어갈까 하다가 무릎을 아끼느라 지하철을 타고 텐진역에 내려서 성당을 찾았다.
내가 여기에 와 있음에 감사기도를 하고 식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기도했다.
1월 초 97세로 돌아가신 울 엄마를 위한 기도를 하는 데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운 엄마! 사랑하는 엄마! 죄송한 엄마!
내가 엄마가 되고, 나의 딸도 엄마가 된 나이이지만 내 엄마 앞에선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걱정을 들으면 죄송했던 자식이었고, 엄마는 모르는 거, 궁금한 거 물어볼 내 스승이었다.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 참나무
나뭇잎이 다 떨어졌어도 몸통과 가지가 다 드러났어도,
끝까지 사랑이 남아있던 힘 있는 참나무 같은 분이셨다.
고향이 이북이신, 부모 형제 다 두고 아버지와 둘이서 남한에 와서 평생을 가족을 그리워하고, 열심히 사신 내 엄마! 엄마복도 충분히 차고 넘치지만 혹시 모자라면 내가 받을 복을 보태 드릴 테니 이 세상에서 지치고, 힘들고 가슴 아팠던 일 다 잊으시고, 천국으로 가서 엄마의 부모님이랑 형제, 아버지랑 만나 못다 한 이야기 하며 행복하시길 기도했다.
마침 정말 우연히 엄마의 대답인 것처럼 , 하느님의 대답인 것처럼 12시 삼종기도 종소리가 울렸다.
높다랗게 있는 종이 쳐지며 내는 소리를 비디오로 찍는 데 얼굴에 눈물범벅이 되었다.
그 어떤 감정도, 힘도 없는 그냥 껍데기만 있는 것 같은 몸과 마음을 한참 동안 추스르며
성당을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고 나왔다.
우울한 기분에는 먹는 것이 도움이 되는 듯하니,
점심은 호사를 누려보려고, 유명하다는 후쿠오카 이치란 라면 집을 찾아 가 보기로 한다.
가는 길에 맛집인지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식당들이 보였다. 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쉽게 찾았는데
어마나! 50분이나 기다리란다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는 걸 볼 때 이해가 잘 안 되었던 일이지만 나도 기다려보기로 했다.
먹는 것, 자는 곳, 쇼핑등은 순서에서 뒤에 있던 그동안의 나의 여행스타일 관점에서 보면 단 한 번도 없던 이례적인 일이었다.
좁은 계단을 조금씩 올라가면서 순서를 기다려 젤 비싼 거를 주문(1620엔). 맛있었다.
하지만 또, 50분 기다리고, 젤 비싼 거를 먹으라면. 3번째 외식으로 먹은 유명 라면은... 글쎄다.
하지만 해보는 것과 안 해보는 차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마음을 달래 보았다.
점심을 먹고 호텔 근처로 검색했던 카페를 찾아 걸었다.
호텔까지 8분 걸리는 곳이라고 해서 이 카페에 왔다.
cafe de crie
조용하다고 알고 있었던 일본사람들은 예전 같지 않았다.
지하철, 카페.. 엄청 시끄럽게 떠든다.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된 예상밖의 일' 변해버린 일본' 중의 하나이다.
난 해보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를 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느라 카메라 가방에 노트북까지 무겁게 들고 다녔던 거 아닌가!
마음은 저녁 늦게 까지 있고 싶었는 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늦은 오후가 되니 사람들이 하나, 둘 나간다.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나도 덩달아 발걸음을 재촉하여 기다리는 사람 없는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식사는 건너뛰었다.
그다지 믿음이 안 가는 세탁기이지만 빨래를 했다.
오늘의 말은 그리움이다 가끔씩 엄마 말투에 걸음걸이에 표정을 따라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나도 깜짝 놀라
는 나는, 나의 엄마의 넷째 딸이다.
큰 딸과 보고 싶은 손녀딸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계획한 일이 없었던 날이었는데 오늘하루 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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