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인간을 꿈꾸는 이유
21세기를 살아가면서 감성인간을 꿈꾸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이 감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싫다고 해도 세상은 감성을 요구하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을 선도하는 역할을 SNS가 하고 있다. 교통수단이 기껏해야 말이나 배 정도였던 조선 시대에 한양의 유행이 부산까지 도달하려면 한참 걸렸겠지만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발명되면서 기기를 켜기만 해도 전국에서 동시에 유행하는 것도 가능했다. SNS가 나오고부터는 회사나 어떤 단체가 유행을 선도하지 않더라도 개인이 유행을 선도할 수도 있게 되었다. 개개인이 유행의 주체가 되기도 하면서 개인의 생각과 감정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일상생활 깊숙이 영향을 미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별로 찾지 않던 유튜브가 얼마 되지도 않아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어 그 안에서 수없이 많은 문화가 생성되고 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 되어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초등학생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유튜브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일반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방송에 출연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채널을 통해 끼를 누구에게나 쉽게 보여줄 수 있고 스타가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이제는 연예인들 뿐 아니라 크리에이터까지 방송국의 섭외 대상이며, 연쇄적으로 관련된 문화가 생겨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되고 있다. 21세기는 그런 역사의 흐름 속에 있다. 과거의 어떤 시기보다도 빠르게 변화하며 개인이 중심이 되고 있는 사회다. 그런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이 세상에 미치는 여파가 커지고 그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그만한 영향력을 끼치려면 내 것을 대중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기 위해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크리에이터의 영상을 보는 이유는 그들이 만드는 콘텐츠가 재미있고 공감 가기 때문인데,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포 영화 리뷰어를 주로 찾아보는 것처럼 흥미가 있는 것만 찾아본다. 그리고 리뷰어는 영상을 시청하는 사람의 시선을 끌 수 있게 그들이 원하는 바를 콘텐츠 속에 넣음으로써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공감을 하게 되면 지속적으로 한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를 보게 되고 팬이 되기도 한다.
크리에이터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공감은 무척 중요한 요소다. PT를 통해 계약을 체결할 때도 친구와 대화를 할 때도 연인과 데이트를 할 때도 공감은 필수다. 다른 관계보다 가족이라는 관계가 더 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평생을 함께 살아오는 것도 있지만 기저에 가족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감성이 있다면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정리해야 한다. 자신도 이해 못하는데 타인과 어떻게 공감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한다. 내가 느끼고 이해한 감정만큼 상대방의 감정도 보이는 것이다.
21세기 감성인간
오늘 세월을 막지 못하듯 쌓여가는 나이는 시간이 가고 있음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인생의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3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인생의 경험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에게 감성인간이 될 수 있는 뒷받침이 되었다. 뒤돌아보면 실수도 많고 곡절도 많은 삶이었지만 그런 경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고, 앞으로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나에게 ‘감성인간으로 살아가는 게 좋아요?’하고 물어본다면 난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지 않았던 때는 알 수 없었던 내 감정들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이 느끼는 것을 나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면서 아프고 힘든 감정까지 받아들이니 마음도 편해졌다. 무엇보다 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좋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끊임없이 사람들과 부딪히고 소통하며 살아가지만 우리의 만남이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우리의 만남이 쇼윈도에 진열한 마네킹처럼 유리 벽 하나를 두고 거짓과 만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까지 이해할 수 있는 너와 내가 만나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