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완벽한 오후

by miu

먹어도 먹어도 계속 배가 고픈 날이 있다. 오늘이 딱 그런날인데, 오늘 아침엔 시간상 요거트 스무디 한 잔으로 배를 채웠고 오전 일을 다 마치고 집에 돌아온 오후 1시 반쯤 점심을 먹었는데 허기진달까. 배가 고파 네시가 채 되기도 전인 조금 전, 두 끼를 차려 먹었다.


어제는 언니를 집으로 초대해 점심을 함께 했는데 전날 밤 요거트와 올리브유로 재놓은 치킨요리와 오이, 계란, 옥수수콘, 두부부침으로 샐러드를 만들었다. 남은 음식으로 오늘 점심을 차려 맛있게 먹고선 샌드위치까지 1/2로 잘라 디저트로 먹고 요거트에 믹스 커피까지 먹은 참이었다. 두어 시간 지났을까. 몸이 사르르 녹는 듯하더니, 기운이 달렸던지, 오늘 유독 좀 피곤한지. 몸이 노곤해지면서 뜨근한 바닥과는 한몸이 됐다.


내 몸의 피곤함과 노곤함과는 상관없이 불도 켜지 않아 살짝 어두컴컴한 방과 고요한 소리에 "아, 좋다. 이만한 오후가 어딨어. 이만하면 완벽한 하루지. 토요일 오후... 딱 이시간이 난 정말 좋아."로 내 마음상태는 지극히 괜찮았다. 나는 자주 이런 시간엔 지브리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는데, 오늘은 모모와 다락방 요괴들.을 재생했다.


희한하리만치 내겐 그 정서가 꼭 알맞으며 취향저격인데다, 영상을 틀어놓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엄청난 효과가 있다. 게다가 이렇게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상태가 되는 날이면, 가장 먼저 내 마음의 허기는 없는지. 내 마음은 안녕한지.들여다본다.


모모와 다락방 요괴들.을 누워 보고 있자니, 피곤한 나머지 눈은 절로 감겼고 이럴 땐, 내 몸의 피로를 위해 내 몸이 원하는대로 낮잠을 자준다. 그래봐야 내 낮잠은 꿀잠.잤다고 생각했는데 깨보면 늘 30분 내외다. 잠자고 일어나니 한결 정신이 차려지고 몸이 아까보단 개어진 느낌이다. 꿀잠자길 역시 잘했다.며 불을 켰다. 잠시 멍의 상태를 유지한 채, 조금 지났을까. 배가 고파 그리하여 부엌으로 다시 향하게 된 것이다.


그런 나도, 예상치 않게, 갑자기 찾아오는 우울감이 밀려 올 때가 있는데 어떨땐 나도 어찌할 바 없이 그 우울감이 절로 알아서 지쳐 사라질때까지 그저 내버려두기를 반복한다. 분명 조금 전까지도 내 마음상태가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순간순간 이는 이런 감정들에 나도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오늘은 그런 날이 분명하다. 점심을 먹으면서 한 7시쯤 저녁을 먹으면 되겠다.했지만 허기가 밀려온 차제에, 먹는 것밖에는, 허기를 없애는 것이 내 기분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한 차례 테이블을 차리곤 언제 점심을 먹었냐는 듯. 맛있게 먹었음은 물론이다. 십여분 전, 어제 언니가 가져온 천혜향과 고구마로 디저트까지 야물게 챙겨 먹은 참이다. 다행히 배가 부른 상태, 포만감이 찼다.


다시 모모와 다락방 요괴들.을 재생했고 고요함 속에 내 마음도 다시 평온을 되찾고 있다. 주말에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고 재밌고 즐거운 나는, 집에 있으면서도 심심할 새가 없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그 자체로 내겐 여유며, 나를 위한 밥상도, 커피 한 잔도, 영화 한 편도, 책도... 사방이 내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기에 효과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이십대 시절엔, 삼십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퇴근 후 혹은 주말 낮엔 자주 밖에 나가고, 사람들을 만나 밥먹고 수다하고 카페에 가는 일이 일상이었던 때도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런 것도 다 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는, 나 그리고 내 마음의 안정과 평화와 고요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들과의 약속과 만남은 있지만 가급적 나와의 시간을 진실되게 충실하게 충만하게 낭만있게 보내는 것이, 그 시간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확보하는 일이 내겐 더 중요하고 다른 어떤 일보다도 가치있게 느껴진다. 사람이 너무 붐비는 곳도 잘 찾지 않게 된다. 그런 곳보다는 자연이,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 내게 큰 안정감을 준다.


웬일인지, 몸이 유독 나른해져서인지, 우울감이 살짝 들었다 말았다를 반복하는 오후인데, 다행인건, 이 감정들을 나는 아주 능숙하게 알아차린다. 좀 전에도 이런 감정이 오려다 내가 알아차렸더니, 언제 그랬냐는듯 달아난 모양새다. 이런 감정을 알아차리고 대처한다는 의미는, 이런 감정들이 밀려올 때면, 내가 지금 이 감정에 물들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바로 시작하는 일이다.


몸의 소리에 적극 반응해줬다는 건, 졸린대로 꿀잠을 바로 자준일. 먹은지 2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배가 고프다는 몸의 신호에 먹을 것을 보충해준 일. 내가 하면 기분좋아지는 일 중 하나인,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를 곧바로 재생한 일.등이다.


사실 가장 큰 건, 경험이 쌓인 탓도 있고, 이런 감정들에 내공이 쌓인 탓인지.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도 결국 사라진다는 걸. 이내 곧 물러간다는 걸.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우울감, 무기력함이 무섭기는 커녕, "안녕! 또 왔구나. 오케이. 잠시만 머물다 가렴."하고 외려 의연한 태도로, 무심한 태도로 대한다. 이 녀석들도 내가 이전보다 단단해진 걸, 강해진 걸 알아차렸는지. 쉽게 대적하려 들지 않는듯 싶다.


다행이다. 지금의 내 기분이 여느 토요일 오후처럼, 다시 잔잔해진 것 같아서, 무심한 태도로 나의 오후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서. 분명 저녁 7-8시쯤 돼서 또 다시 배가 고파질텐데. 저녁은 오늘 하루 수고한 나에게 현미밥도 새로 짓고, 섬초도 다시 무쳐야겠다.


내 마음이 고요하면, 내 마음이 편안하면, 내 마음이 평온하면,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들 역시 아무것도 아쉽거나 문제될 일이 없어진다. 내 마음이 좋으면 밖에서 만나는 그 모든 게 만사 오케이.가 되는 효과를 잘 알게 된 나는, 아무쪼록 내 마음의 안정과 평온을 유지하는 일에는 필사적일만큼 적극적이다.


오늘 같이 이런날, 그러한 나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도 한다. 내 스스로 이만하면 완벽한 오후라고 느낄 수 있는 건, 내 마음이 그 자체로서 안정되어 있고 평온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라는 말과도 같다. 소중한 오늘의 내 하루는, 내 오후는 나의 이런 노력에 힘입어 다행히도 사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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