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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Oct 09. 2023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주달개비 꽃이 준 단상

일 년에 한두 번쯤 그런 날이 있다. 미처 흘러나가지 못한 채 한동안 마음에 쌓여 있던 감정의 노폐물이 눈물이 되어 쏟아져 나오는 날. 그렇게 눈물을 쏟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눈물과 함께 흡수되지도 배출되지도 못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흘러나가는 것이다.


바람에 여린 날갯짓하는 자주색 들꽃을 봤다던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집 근처 산을 산책하던 중이었는데, 오랜만에 재생시킨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ost가 마음을 자극했다.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희미해진 시야 속으로 자주색 꽃이 들어왔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에, 한꺼번에 흘러나온 감정에 사로잡혀 외부와는 철저히 차단된 채 온전히 혼자가 되는 시간이었다. 잠시나마 그 찰나의 감성에 젖어 눈물을 쏟아낸 후에는 순식간에 소용돌이쳤던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제야 나비를 연상시킨 꽃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검색해 보니 이름은 ‘자주달개비’, ‘꽃말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였다. 해가 뜨면 꽃이 피고, 해가 지면 꽃이 져서 반나절만 꽃을 볼 수 있기에 붙여진 꽃말이라고 했다. 꽃 피운 순간을 볼 수 있었던 게 마치 행운처럼 느껴졌고, 그게 소소한 행복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자주달개비를 보느라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코스모스, 들국화, 자주달개비,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꽃까지, 여기저기 들꽃 천지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지금 이렇게 예쁜데 곧 질 거라는 걸 알기에 아쉬웠다. 눈으로만 담다가 핸드폰 카메라를 열어 열심히 사진첩에 담았다. 그러다가 문득 지기 위해 이렇게 예쁘게 꽃 피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날갯짓하던 자주색 꽃, 자주달개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증상이 나타날 때가 있다. 주로 밤에 누워있을 때 나타난다.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는데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었고,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내 생각에 공황장애는 남편과 사별, 그 후유증으로 생긴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불안이 높았고,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큰 편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엄마가 자주 아팠다. 크게 아픈 건 아니었고, 두통이나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다.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걱정이 됐고, 그러다 보면 엄마가 아파서 죽게 될까 봐 불안해졌다. 사랑하는 엄마가 세상을 떠나면 영영 만나게 되지 못할 거고, 그건 너무나 슬픈 일이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날만큼이나. 그 이후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죽음은 언제 떠올려도 무섭고 슬픈 것이었다.


그러다가 남편의 죽음을 현실로 마주했다. 이별과 상실로 인한 아픔은 어느 정도 치유됐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잦아들지 않고, 도리어 더 커진 듯하다. 두 아이와 연락이 닿지 않거나, 일과를 마치고 누웠을 때 불현듯 죽음에 대한 공포가 찾아오고, 어김없이 숨 쉬는 게 불편해진다.      


죽음이 무서운 나지만, 결국 나는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아무리 건강하게 잘 살아도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다. 예쁘게 핀 들꽃도, 화려하게 물든 은행잎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마침내 죽기에 살아 있는 지금이 아름답고 소중하다. 반대로 지금이 영원하지 않기에 다행이기도 하다. 행복한 순간은 영원하지 않기에 그만큼 더 귀하고, 아픈 순간 역시 영원하지 않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여전히 죽음이 두렵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종착지이기에, 결국 이 세상에서 지겠지만, 그래서 ‘사랑할 수 없습니다.’가 아니라 나 자신을, 두 아이를, 가족을, 친구들을 ‘사랑하겠습니다.’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더 평온하고, 더 행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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