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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Oct 11. 2023

‘힙’ 하지 못한 엄마.

"너 같은 과부는 처음 봤어."

"왜? 내가 어때서?"

"큰 아픔을 겪었는데도 낙천적이야. 단단하고, 화려해. 그리고..."

"나 힙한 과부지?"

"맞아. 너는 진짜 힙한 과부야. 기존 과부의 이미지를 깼어. 넌 과부계의 아이콘이야!"


나를 잘 아는 가족이나 친구들은 나더러 힙한 과부, 과부계의 아이콘이라고 했다. 남편의 부재, 커다란 결핍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내면과 외면을 돌보며 작은 일에서도 행복을 찾는 모습을 보고 한 말이다. 남편과 사별 후 살고 싶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고민하다 보니, 나를 사랑하는 게 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과 사별이라는 큰 아픔 덕분에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삶은, 오로지 ‘나’로서의 삶은 꽤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남편의 부재라는 큰 결핍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스스로 ‘힙한’ 과부라고 칭할 만큼이나. 


나는 힙한 과부지만, 힙한 엄마는 아니다. 세상에 휘둘리거나 아이의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 불안해하지 않고 아이를 믿어주는 평온한 마음을 가진 엄마가 ‘힙’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약해서 엄하지 못한데, 그렇다고 자유로운 두 아이의 성향을 믿고 그대로 존중해 줄 만큼 ‘쿨’ 하지도 못하다. 쿨하고 힙한 엄마이고 싶은데, 현실은 걱정 많은 잔소리쟁이 엄마다. 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힙하지 않은 엄마가 됐을까? 


며칠 전, 큰 아이가 나에게 엄마는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느냐고 했다. 현재 만족스럽지 못한 일도 나중에는 달라질 수 있는 건데 왜 부정적으로만 예상하고 불안해하냐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내 일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편인데 엄마로서는 그게 어렵다. 두 아이의 유일한 부모이자 보호자로서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조금은 과한 불안과 걱정을 유발하는 듯하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두 아이가 나에게 너무 소중한 존재이기에, 아이들과 관련된 건 사소한 일조차 그대로 넘기지 못하고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듯하다. 

성실하지 않은 태도를 보면 걱정되고, 연락이 닿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반항적인 행동이나 말투에는 엄하게 혼내야 할지 고민스럽고, 내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친구가 너무 많은 큰 아이는 그래서 걱정이고, 친구 관계에 소극적인 둘째는 그래서 걱정이다. 아이가 힘들다고 하면, 힘들어서 우울하다고 하면 마음이 아픈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부터 작년까지는 꽤 괜찮은 엄마였다. 작년 이맘때쯤 큰 아이는 나에게 꼰대 같지 않은, 친구 같은 엄마라고 했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엄마가 우리한테 잘해준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밝게 잘 지낼 수 있는 거야.”

라는 감동적인 말까지 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났고 그로 인해 큰 충격과 슬픔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이의 마음이 평온해졌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두 아이와 내 마음의 평온을 최우선으로 살아온 지난 3년 동안 평온하겠다는 그 의지가 괴력을 발휘했던 건지, 아이들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게으른 모습을 보면 본인에게 흥미로운 일이 생기면 성실해지겠지,라고 생각했다. 반항적인 행동이나 말투에는 원래 이럴 때지, 이 정도면 누구나 다 하는 정도의 반항이야,라고 생각했다. 친구가 많은 큰 아이를 보면서 참 성격이 좋은 아이야,라고 생각했고, 친구 관계에 소극적인 둘째 아이를 보면서는 원래 성향이 그런 거니 괜찮아,라고 생각했다. 평온한 엄마의 마음이 전해 져서였을까, 두 아이도 편해 보였다.     


큰 아이가 내년 3월이면 고등학생이 된다. 올해 들어 아이는 몸도 생각도 마음도 부쩍 성숙해졌다. 성숙해진 만큼 내가 아이를 더 믿어주면 좋을 텐데, 자꾸 걱정이 앞서 잔소리가 많아졌다. 유독 불안이나 걱정이 크게 올라와 차가운 말이 나가고, 잔소리가 심해지는 날이면 아이의 말투와 표정에서 반항기가 생긴다. 불안과 걱정을 잘 흘려보내고 아이의 어깨도 주물러 주고, 손도 잡아주고, 따뜻한 말을 해주는 날에는 아이의 말투나 표정이 원래대로 부드럽고 상냥해진다.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이 떠오른다. 


두 아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는 데에는 내 걱정과 불안보다는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힙'한 엄마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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