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진행해 온 <하루20분, 잠자리 책읽기> 활동이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일년 전,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이라는 책을 접하면서 아이들과 잠자리 책육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은 제목에 이끌려 남편의 변화를 바라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었는데 당시 남편은 제가 빌려온 이 책을 철저하게 외면했고, 그 덕분에 엄마인 나라도 읽어야 겠다는 심정으로 읽게된 책입니다. 이처럼 시작은 미약했지만 우리들의 행복하고 따스한 잠자리 독서를 있게 해 준 씨앗과도 같은 소중한 책이지요.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의 저자 옥명호님은 잠자리에 들기전, 15분씩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특히,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가능할까" 라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꽂혀 저자보다 5분 더해 <하루 20분, 잠자리 책육아>를 2020년 10월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내주지 않고, 시간을 내지도 않으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가능할까.
우리는 그걸 돈으로 대체하고 있다.
실은, 저는 그 해 5월에 복직을 해서 오랜동안 비운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 참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잠자리 책육아>를 결정한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복직 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회사에서 써 버리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온 엄마가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나마 가장 만만하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택했던 것이었습니다. 퇴근 후 돌아와 부랴부랴 저녁 준비를 하고 쌓인 집안일을 처리하느라 아이들에게 온전히 시간을 내준 적이 없었다는 반성과 함께요. 그래서 하루20분 정도는 내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밤 10시가 되면 잠자리 책읽기를 알리는 의식처럼 침대 옆 스탠드에 불이 들어옵니다. 첨엔 자기가 골라온 책을 먼저 읽어달라고 두 아이가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가 팩하고 토라져 기분 상하는 일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대부분 큰 아이가 골라온 책에 과한 호기심을 불러 작은 아이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고, 지금은 큰 아이가 고른 책을 작은아이도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7권의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첨엔 소리내어 책을 읽는 것이 꽤나 힘들었지요. 목도 아팠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일이 가끔은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날은 읽다가 졸다가 하는 엄마를 아이들이 흔들어 깨워 읽게 하는데 괜히 그런 아이들이 미워지기도 했다는요. 그런데 날이 지날수록 어떤 날은 힘든 엄마를 위해 책을 읽어주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하루20분, 잠자리 책읽기>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정착해 나갔지요. 하루 20분이 30분이 되고 40분이 되어가는 기적과 같은 시간들을 만나기도 했답니다.
⭐ 우리의 처음을 열어준 책 : 안네의 일기,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20/21 겨울을 함께한 책 : 빨간머리 앤, 에이번리의 앤
⭐ 21년 봄 : 제인에어
⭐ 21년 여름밤을 수놓은 책 : 오페라의 유령
⭐ 21-/22 가을, 겨울 : 해리포터시리즈
일년의 과정동안 엄마로서 참 기적과도 같은 순간들을 경험했습니다. 나의 시간을 내어주지 않았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기적의 순간들. 첨엔 불편하고 힘들었던 과정들이 옥명호님의 말처럼 '고단한 하루를 평화로이 마무리하는 성스런 의식 같은 시간' 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저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아니라 나를 위한 시간임이 분명한 <하루20분, 잠자리 책육아>의 효과를 기록해 봅니다. :)
# 카이로스의 시간, 책육아
헬라어로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는 어느 특정한 시기, 기회나 위기, 오늘을 어제의 연속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특정한 의미나 우선순위를 부여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반면 크로노스는 1월, 2월, 3월...,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의미합니다.
하루20분, 잠자리 책육아를 하기 이전의 워킹맘의 삶은 크로노스를 보내는 시간이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씻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시간이 되면 잠자리에 드는 특별한 것 없는 같은 시간의 반복 속에서 의미없이 기억하지 못할 시간들을 흘려 보냈습니다.
<잠자리 책육아> 는 크로노스와 같은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비단, 저의 시간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시간까지도 카이로스가 되고 있음을 느꼈던 것은 앤시리즈, 오페라의 유령,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을 때 우리의 시간은 그때에 오롯이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또, 멋진 풍경을 볼 때마다 빨간머리 앤의 명대사를 상기하는 아이들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예쁘다는 말만으론 모자라요. 아름답다는 말로도 맞지 않아요. 엄마, 정말 황홀해요. (빨간머리앤 기쁨의 하얀길 명대사 응용)
# 새로운 놀이의 창작, 창의성 발현 책육아
함께 읽은 책들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의 놀이도 풍성해지곤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나가기도 불안했던 1년의 시간동안 아이들은 집순이가 되어 잘 놀았습니다.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거실을 전세내어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가더군요. 가만 지켜보니 그것은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자기들만의 멋진 놀이로 창작한 결과였습니다.
빨간머리앤 선생님 놀이
오페라의 유령 연극놀이 :)
작은아씨들 우체통 편지 놀이 :)
# 경험의 확대로 삶이 풍요로워지는 책육아
잠자리 독서를 하면서 아이 옆에 나란히 서서 발을 맞추어 가는 기분이었어요. 앞 서지도, 뒷 서지도 않고 나란히 서서 친구처럼 같은 것을 바라 보았어요. <키다리 아저씨>와 <빨간머리 앤>을 읽고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영화 속 캐릭터에 열광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을 읽고 접했던 뮤지컬 속의 주제곡에 빠져들어 밤마다 "Think of Me~~"를 불러대곤 했습니다. 얼마나 많이 불러 댔는지 나중엔 가사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열창했습니다. <해리포터>를 읽고서는 두 번, 세 번 영화를 돌려보며 "Dobby is free" 장면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며 덕후가 되어 갔지요. 마침, 새해에 20주년을 기념하는 <다시 호그와트로> 가 방영되는 날, 첫 눈을 기다리는 것처럼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들은 평생 두고두고 우리만의 추억거리가 되겠지요. 이렇게 예기치 않게 일상의 모든 곳에서 책에서 본 장면들이 불쑥 불쑥 떠올라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웃곤 합니다.
다시, 호그와트로 기념 방송/ 헤르미온느 역 엠마왓슨 인터뷰 장면
# 어디서나 주저앉아 읽게 만드는 책육아
'오늘은 여기까지~"로 마무리 하는 하루의 끝 책육아. 엄마는 끝내도 아이들은 끝내지 못하고 조금만 더, 한장만 더 읽어 달라고 졸라대는 날들도 많았습니다. 잠자리의 독서가 일상으로 이어져 언제부터인가 조용하다 싶어 돌아보면 툭 하니 주저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최고로 집중 잘된다는 독서공간 :)
치카치카 도중에 :)
퀵보드 타러 공원 나갔다가 :)
간식 먹는 틈에도 :)
# 공감과 소통의 가족문화 조성, 책육아
Namu 신문이 제작되었습니다. 큰 아이가 기자가 되어 (심지어 본인을 이트리 기자라고 자청함)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기록하여 신문을 발행했습니다. 이건 아마도 <작은아씨들>에서 영감을 받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아이의 생각을 재미나게 읽었고, 작은 사건들도 이야기를 나누는 공감과 소통의 가족문화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을 합니다. 그리고 저녁 7시 30분 집에 돌아옵니다. 퇴근 후, 정신없이 아이들 밥상을 차리고 아침, 점심으로 먹고 쌓아 두었던 그릇들을 설거지 하며 늦은 저녁을 준비하는 일상을 보내는 워킹맘입니다. 10시 무렵이 다 되어서야 끝나는 하루 일과에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아이들의 생각을 읽고 아이들과 한마음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지요.
많은 시간을 붙어 있진 않지만 우린 충분히 많은 추억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퇴근 후 육아출근'이 아닌 휴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은 아이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를 생각하며 직장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생각해내는 저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하루20분, 잠자리 책육아> 가 가져온 변화. 수고와 애씀이 없는 모성애로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음을 생각하며 나만의 방법으로 나답게 하루하루를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꽉 채우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