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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u Sep 12. 2022

시간과 정성이 자라면

매일, 감동육아

며칠간을 폭우와 격무를 견뎌내며 애타게 기다렸던 3일간의 연휴, 연휴의 아침을 침대에서 실컷 뒹굴거리는 상상을 하며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그것은 주말과 휴일을 반납하며 열심히 일해온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끼니마다 남편이 차려주는 밥상을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게 받아먹고, 피로를 풀어야 한다며 내내 뒹굴거리며 연휴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나만 생각했던 이기적인 행동은 결국 연휴 마지막 날 남편의 짜증을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있는 엄마가 끼니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고 쏘아붙이는 것!!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인정하고 사과를 하거나 고마움을 표현했다면 그냥 지나쳤을 일을 순간 화가 난 나도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습니다. 왜 엄마만 끼니를 신경 써야 하느냐고, 며칠 쉬는데 그 꼴도 못 보는 거냐고, 그것 조금 해주면서 생색을 내는 거냐며 막말을 쏟아내며 언쟁이 오갔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고, 큰 아이가 부모의 눈치도 살피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지만 할 말을 다해야 속이 편할 것 같아 다하고 말았습니다. 길지 않은 부부의 언쟁이었지만 집안의 공기는 무거웠습니다. 30분쯤 시간이 흘렀을까... 큰 아이가 편지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같이 봐야 하는 편지라는 말과 함께,, 남편보다 내가 먼저 편지를 열었습니다. 



이제는 화해하세요.
먼저 사과하세요.
당신도 그러고 싶잖아요.
그 뒤를 따라오는 속삭임
내가 정말 미안해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아이가 보고 있음을 알면서도 언성을 높였다는 창피함과 함께 부모도 실수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며 사과할 용기를 내보라는 내용에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 왔습니다. 아이의 편지를 남편에게 내밀었고 다 읽어갈 무렵 남편에게로 가서 "내가 정말 미안했어" 하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남편도 내 손을 잡고 피식 웃었고, 편지를 다시 읽어 내려갔습니다. 


제대로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어색함을 풀어보세요.
그리고 함께했던 좋은 추억들을
같아 떠올려 보세요.

실은 그랬습니다. 내가 주말도 없이 일할 때 남편도 집안일은 물론 아이들을 혼자서 케어하느라 바빴습니다. 모처럼의 휴일 동안 남편도 얼마나 쉬고 싶었을지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를 배려하지 못했던 나의 잘못이 더 컸음을 아이로 인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편지와 함께 봉투에 들어있던 선물. 부모의 싸움이 뜨거운 날씨 때문이라 생각했던 걸까요, ㅎㅎㅎ 자신의 용돈 거금 만원과 함께 "빙수 사 먹을래요?"를 제안한 아이. 결국 우리의 싸움은 이렇게 종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아이들 앞에서 화해로 마무리 했습니다. 


모든 것이 잘 마무리되었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났습니다. 창피함도 아니었고, 화해에 대한 기쁨의 감정이라고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뜨거운 감정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솟구쳤습니다. 그 감정에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일하는 엄마 때문에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미안함과 엄마의 공백에도 아주 잘 자라고 있는 고마움 말입니다. 



어떤 감정은 시간과 정성에 의해 느릿느릿 키워진다.
두 사람이 마련한 은밀한 텃밭에
두 사람만의 씨앗을 심은 뒤
물을 주고 거름을 뿌릴 때 
튼실한 감정이 찬찬히 성장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형성되는 감정만큼 느릿느릿 키워지는 게 있을까요. 2년이라는 육아휴직 동안 저는 꽤나 두려웠습니다. 그동안 쌓아왔고, 앞으로 쌓아야 할 커리어의 시간이 멈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식에게 쏟아낸 나의 시간과 정성은 그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달콤한 열매를 선물함을 아이를 통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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