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퇴근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과장님이 업무 지시를 내렸습니다.다음날 아침 사장님께 보고할 자료를 긴급하게 만들어 달라고 하십니다. 갑자기 걱정이 앞섰습니다. 다음날 아침 보고를 하려면 과장님 출근 전에 자료가 완성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새벽 출근을 한다해도 보고자료를 대략이라도 정리해 놓고 가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은약속이 있어 늦는다고 했으니 급한대로 엄마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외갓집에 다녀와서 피곤하다는 엄마한테 차마 우리집에 가서 아이들 밥 좀 챙겨주라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쩔 도리 없이, 큰 아이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늦을 거 같아. 많이 늦지는 않는데, 엄마 갈 때까지 기다리기엔 배가 고플테니 저녁은 컵라면으로 먹는 게 어떨까? 뜨거운 물 넣을 때는 항상 조심하고~"
라면을 좋아하는 아이들. 평소 컵라면은 잘 허락하지 않기에, 엄마의 제안에 신난 아이가 "엄마~ 걱정하지 말고 열일하고 오세요~" 이야기 합니다. 덕분에, 자료를 대략 정리해놓고 퇴근을 했다지요.
퇴근 후, 엄마(M)와 딸(D)의 대화
D : 엄마, 밥 먹었어요?
M : 아니~ 사무실에 엄마 혼자 남아 있었어. ㅠㅠ
D : 엄마, 배 고프시겠어요~ 우리가 라면 먹고 밥 말아먹느라 밥이 없어요. 죄송해요.
M : 괜찮아~ 엄마는 다이어트 중이라 밥 안 먹으려고 했어.
D : 쨘~~ 실은 밥이 없어서 편의점에 가서 햇반을 사다 두었어요. 얼른 드세요~^^
M : 엄마 먹으라고 햇반을 사다놓은 거야?
D : 네.
M : 힝~ 엄마 밥 안 먹으려고 했는데... 성의를 봐서 맛있게 먹어야 겠다. yam yam!!
일하느라 퇴근이 늦은 엄마의 밥이 없다고 햇반을 사다놓은 아이의 마음.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비단 일하고 온 딸을 기다리며 저녁을 준비해 두는 엄마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늦은 저녁이라 패쓰하려고 했지만 아이의 마음이 너무나 고마워 밥을 맛있게 먹었고, 맛있게 먹는 엄마를 보면서 아이도 참 뿌듯해 하더라는, ^^
아이의 크고 작은 사랑 앞에서 나는 오늘도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밥을 먹다가 울컥 울음이 터져 목이 잠겼는데 그런데도 밥맛은 달기만 합니다. 퇴근을 앞두고 갑자기 떨어진 일에 조금은 짜증이 올라 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일찍 가겠노라고 약속했는데, 어쩔 수 없이 컵라면을 먹이는 마음 또한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일이 다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듯, 나쁜 일도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나는 스승같은 아이를 통해 깨닫습니다.
실은, 과장님이 부탁한 일은 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거절하지 못하고 과장님을 도왔던 이유는 가까이에서 과장님을 지켜보며 돕고자 하는 마음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사장님이 바뀌고 첫 보고를 하는 과장님이 업무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봐야 했습니다. 내 업무와 연관성이 아주 없다고 할 수도 없었고, 그간 내가 검토하던 사안과 연결성이 있었기에 “그건 제 일이 아닙니다” 라고 차마 털어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예정에도 없던 야근을 하고, 새벽 출근을 하느라 아이들의 얼굴도 보고 나오지 못해 미안했지만 제 마음은 그랬습니다. 내가 조금 희생하고 헌신하면 분명 나에게 좋은 일들이 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내 마음과는 다르게 직장에서 좋은 일은 커녕, 담당팀장과 담당자로부터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듣지 못했고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오기도 했지만, 괜찮습니다. 아이가 내게 주는 좋은 일은 그 어떤 일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애를 끼고 있어 주는 거라는 착각, 애초에 버려라. 아이가 엄마를 끼고, 부벼주고, 놀아주고, 궁디 팡팡 해주고, 용서해주고, 배려해주고, 사랑해주고 있는 거라고. 아직도 못 느끼겠니? 아이들의 희생이 안 느껴져?
지랄발랄 하은맘, <십팔년책육아>
느껴집니다!! 매일같이 느끼는 아이의 희생과 배려, 그리고 비교할 수 없는 사랑.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가 엄마를 키웁니다. 퇴근 후 육아출근, 가장 예쁜 시간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