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 애착녀의 적정거리 연애법
참 잘 놀았다. 나의 20대-30대를 되돌아 보면 참 즐거웠다. 다시 태어난다면 이라는 가정에 내가 꼽은 가장 멋진 대답은 "딱 나갑게"였다. 두번을 살아도 나는 다름없이 살 것 같다. 아마 같은 지점에서 실수하고 또 극복해내겠지. 그게 나니까, 나름 주어진 데서 최선을 다했으니 아쉬움은 없다.
비록 몇 개월씩 세계여행을 떠날 배포는 없었지만, 일하는 간간히 연차를 써서 여러 나라 여행도 다녀봤고, 여전히 마음 속엔 지구별 여행자를 꿈꾸고 있으니 좋다. 다양한 업무에 도전했고 연극동호회, 합창 동호회, 봉사활동 여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아주 잘 해내진 못했지만 조금씩 성장하며 그 시절을 지나왔다. 세상을 알아가고 나를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혼자도 충분히 괜찮다는 생각이 들자, 둘이 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제야 사람을 만나보자고 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고, 내게 다가온다한들 나는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사랑은 타이밍이라 했던가. 나름 동네에서 세기의 연애를 했던 언니가 결혼한다기에 물었다.
"언니는 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기에, 그 숱한 연애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냐"
언니가 답했다.
"나랑 결혼하는 사람은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아냐.
다만 내가 나를 충분히 사랑해서 결혼까지 생각했을 때
만난 타이밍이 좋은 사람이지"
사랑은 타이밍. 연애 젬병인 나에게도 그 말은 그렇겠다 싶었었다.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보고 마흔이 되겠다 할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과 나는 지역 봉사활동에서 만났다. 이름이 중성적이어서 나는 한참을 언니라 불렀더랬다. 남편은 성실하게 봉사를 했다. 특출나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혼자라도 봉사를 해내는 우직한 사람이었다.
봉사일이 아닌 날에도 남편은 내 바쁜 하루를 기다려 주었다. 새벽에 영어회화, 저녁엔 운동을 마치고 나면 10시나 되는 시간이었다. 왜 그렇게 바쁘게 지냈을까 그런 일상은 어쩌면 나에 대한 불안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를 바래다 주겠다고 남편은 내 기사노릇을 자청했다. 그런 남편이 고백했던 날, 나는 언니 이러지 마요~라며 재미도 의미없는 대답을 했다. 그러다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자 이번엔 내가 안달이 났다. 내가 미친년 같이 화를 냈다가 청승맞게 울었다가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날에도 남편은 맞서거나 도망가지 않고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 적정 거리를 지키며 늘 있었다.
그 적정 거리가 좋았다. 가까이 다가오면 덜컥 겁이 나더라도 어디 멀리 가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좀 올 때도 되지 않나 기다리게 되었다. 그렇게 같이 살기로 했다.
부모님과 나, 서로에게서 독립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연애에 젬병이었던 건. 나의 부모님과의 불완전 애착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멀어지면 외롭고 다가오면 불안한,늘 언제나 불안해있던 나에 비해 심심하리만큼 무던한 남편은 내 집 같았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엔 부모님의 반응이 꽤나 냉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은 사위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딸 자식이 떠나가기만 하는 슬프고 냉소적인 분위기였다. 그렇게 결혼 좀 하라고 하시더니, 막상 결혼을 한다니 뭔가 배신자 프레임을 둘러쓴 것 같았다. 집안의 첫 결혼. 엄마 아빠도 처음 겪는 일이시니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나이 서른 후반. 이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해야했고, 엄마 아빠 또한 자녀에게서 독립을 해야 했다.
나는 그 슬픔을 딛고 문을 나섰다.
내게 있어서는 인류의 도약으로 불리는 닐 암스트롱의 달 표면에 첫 발자욱 급의 한 걸음이었을 거다. 친정 아니면 내 남편, 왜 나는 양자택일의 기분이 들었을까. 드라마에 나오는 가족들처럼 따뜻한 환대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 나는 벌써 남편의 편에서 서운하다며 투덜거렸더랬다.
독립에 설레어 집을 나서는 나, 그 뒷 모습을 바라보셨을 엄마 아빠의 허전함을 그 때는 몰랐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걸음을 응원해주셨다면 하는 서운함이 있다. 딸 자식은 언제나 그저 제 마음 살피기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