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어쩌다 출산, 어쨌거나 해피엔딩

양수파열-유도분만-제왕절개의 최악의 출산 시나리오

by 어머나

예정일을 2주 앞두고 드디어 휴가!!

출산이 2주 앞이긴 했지만, 몇 년 만의 자유시간에 나는 좀 들떴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근처 공원도 걷고 하면서 일상의 여유를 만끽했다.

미뤄둔 태교 책도 꺼내어 읽어보고, 당시 (우리집에서) 유행하던 남성 4중창 결성 오디션 프로그램인 '팬텀싱어'도 태교의 연장선이라며 열심히 봤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지만, 태교 중이라는 생각에 되도록 긍정적으로 기분좋은 일상을 보내는 중이었다.


언니와 나, 남산만한 배만큼 멀어진 포옹

그 즈음 언니가 놀러왔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를 하셨으니 한 살 차이지만 언니는 준 엄마이기도 했다.

우리는 가장 절친한 웬수였는데 결혼하고는 좀 처럼 둘이 있을 시간이 없었다. 오랫만에 언니가 온대서 신이 났다. 언니가 도착해서 차라도 내줄까하고 주방엘 갔는데, 불뚝해진 배를 보고 언니가 멈칫했다.

언니와 눈을 마주쳤는데 낯선 사람이라도 본 것마냥 서로 말이 없다가, 갑자기 울었다.

"배가 너무 커서 놀랐어"

아직 미혼인 언니에게 동생에게 일어난 결혼과 임신, 출산은 언니에게도 처음인 일이다. 결혼 전 언니와 나는 늘 붙어 지냈다. 좁은 방에 복작복작 삼십여년을 그렇게 지내서 내가 모르는 언니의 일이나 언니가 모르는 나의 일은 낯설고 당황스러울거다. 나야 십여개월 거쳐 차차 익숙해진 모습이지만 언니에겐 갑작스러운 충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큰 병 난거 아닌데 배를 조심하며 언니가 안아 주었다.

양쪽 집의 첫 아기였다. 아기를 기다리는 또 다른 마음들을 만나니, 출산의 공포가 덜해졌다.


양수파열, 신이 나버린 임산부의 최후

출근 안하면 심심할 줄 알았는데, 나는 노는 게 체질인지 너무 재밌었다.

아이가 내려오는 데 도움이 된다며 선생님이 살살 걸어보라고 하셨다.

아침에는 공원을 걷고, 당근 마켓으로 육아템 받으러도 가고, 저녁에는 시장도 한 바퀴 돌고,

뽈뽈뽈뽈 잘도 돌아다녔다. 근데 적당히 했어야 했나보다.

하루 종일 걸었던 다음 날이었다. 일찍 잠에서 깼는데 의욕적으로 임산부 요가를 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차분하게 요가를 하고 견상 자세로 몸을 쭉쭉 늘리며 마무리를 하고 있었는데 다리에 맑은 액체가 뭔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양수였다.


예정일을 1주일 앞둔 날이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더니, 출산이 무섭게 눈 앞에 와 있었다. 남편을 깨웠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다니던 대학병원으로 갔다. 차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둥 별 이야기가 다 떠올라서 머리 속이 부산하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들어섰더니 제모를 해주신다.

양수가 터진 상황이었지만 조금 민망하다. 미리 손을 쓰고 왔어야 했다.

분만장 옆 대기 공간에 자리를 내어준다.

간호사 선생님이 오시더니 여기저기 진단기 다시더니 누워 계시란다.

누워 있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 다시 출산할 수 있다면 가능한 자연스럽게 있었을 거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간호사 선생님이 양수가 터진 상태라서 유도 분만제를 투입할 거라고 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몰랐다.


유도분만, 달려나가는 자궁에 매달린 바람인형

진통이 밀물 썰물처럼 오다가고 자궁이 조여지다 풀어진다. 배가 욱씬욱씬하는데 간호사 선생님은 무미건조한 얼굴로 아직이란다.

유도 분만제 양을 늘려가며, 하루 온 종일 배를 틀었다.

자궁만 하드캐리해서 달려가고 뒤쳐진 몸 뚱아리가 쭉쭉 찢어지는 것 같다.

저녁쯤 교수님이 오셔서, 내진을 하시더니 오늘은 충분히 열리지가 않아서 내일 다시 시도해보자고 하신다. 예상치 못하게 1박을 하게됐다.

이 고생을 내일 다시 처음부터라니. 암담했지만 유도제를 떼어내서 한편 기쁘기도 했다.

내가 그 밤에 뭐했더라? 잠이나 잤었던가. 엄마가 된다는 거 아무리 시간이 주어져도 예측불허이긴 하다.

다음 날이 되어 또 다시 유도 분만제가 투입됐다. 내진도 몇 차례 진행됐지만 선생님의 표정이 밝지 않다. 온종일 아팠다. 새우처럼 몸을 말고 무통 주사도 맞았는데, 출산 경험자가 말했던 무통천국은 내게 열리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선생님께서 "아이가 잘 버티어 주고 있어서 자연분만을 계속 시도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내일 추석 연휴이기도 하니 의료진들이 많을 때 제왕절개하시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운을 뗐다.

잠깐 고민을 했다. 아이가 잘 해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내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지지부진한 상황에 나도 많이 지쳤었다. 선생님이 제..라는 말을 꺼낼 때 부터 고개를 끄덕였던 거 같다. 남편이 자연분만의 미련을 두고 한 두어마디 했던 것 같은데, 딱 잘라 거절하고 제왕절개를 하기로 했다. 예상치 못한 양수 터짐, 유도분만, 제왕절개까지 최악의 출산 시나리오를 써가고 있었다.


제왕절개, 고통의 분할납부

제왕절개를 결정하고서는 출산의 주도권은 병원으로 이관됐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수술방으로 옮겨지는 동안, 나는 가만히 누워 숨을 골랐다. 수술방은 몸이 달달 떨리도록 추웠다. 반신 마취를 했는데도 정신이 아득했다. 선생님들의 말이 바빠졌다.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데,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숨이 불편하다 싶을 때, 선생님이 아이를 꺼냈다고 하셨다. 아이가 나왔다와 아이 울음 사이에 정적.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우아앙! 우는 아이 소리가 나를 덮었다. 추위도 잊고 눈물이 주륵 흘렀다. 생각하니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고 코끝이 찡하다. 내 인생 가장 극적인 장면이었다.


분명 꽤나 우여곡절이 많았던 나의 출산기. 하지만 마지막 그 찬란한 아이울음 소리로 나의 출산 드라마는 극적으로 해피엔딩을 맞이했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는 육아라는 공포물의 서막이기도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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