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공부가 수학과 함께 엄마들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영어는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수능 수준의 문제를 풀 수 있게끔 마스터해 놓아야만 중학교에 입학해서 수학과 기타 과목들을 공부할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이에 어린 자녀들을 값 비싼 영어유치원에 보냅니다.
#영어를 놀이처럼
영어유치원에서는 학부모 상담 시 5세. 6세. 7세 이렇게 3년을 연속해서 다녀야 아이가 영어를 자연스럽게 잘 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일찍부터 다니지 않으면 레벨이 높은 반으로 이동하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영어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해야 아이가 가장 높은 레벨의 반에 자랑스럽게 합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불안한 마음에 영어유치원의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 단어를 외우게 하고 원어민 발음 연습을 반복해서 따라하게끔 하는 등의 방법으로 열심히 영어 공부를 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나이 어린 아이들에게 공부처럼 강요해서 영어를 시킬 경우, 아이가 영어를 싫어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영어유치원을 다녀도 생각만큼 영어가 안 느는 이유입니다. 심지어 조기 영어교육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으로 한국말을 더듬는 아이들도 생겨납니다. 이렇게 아이가 일찍부터 영어에 거부감을 갖는 부작용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요?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를 공부가 아닌 놀이이자 생활 그 자체로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영어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도록, 돌이 되기 전부터 영어와 한국어 책을 함께 읽어주고 영어로 된 놀잇감을 사주고 영어 노래를 함께 부르는 등 다양하게 영어를 접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조금만 찾아보면 영어놀이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함께 본 후, 그 영화에 나온 노래가사를 프린트해 함께 부르고 놀았습니다. 아이들은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 정말로 궁금해서 단어의 뜻을 찾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전혀 공부로 생각하지 않고 놀이로서 그 과정을 즐겼습니다. 물론 엄마가 함께 해줄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엄마가 해주면 가장 좋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영어유치원 또는 영어 놀이시설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아이가 영어를 하는데 있어 중압감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잘 살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5세와 6세때 영어 유치원에서 배우는 “영어”의 범위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아이가 영어와 친숙해지는 효과는 분명히 있고 기본적인 파닉스를 익힘으로서 영어 기본 문장 읽기를 배웁니다. 즉, 알파벳을 조합해 간단한 단어를 읽고, 단어를 조합해 간단한 문장을 읽게끔 가르치는 정도입니다.
저희 집 아이들의 경우, 첫째 아이는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가르치는 유치원을 6세와 7세에 걸쳐 2년 다녔습니다. 사실 영어 실력 증진만이 목적이었다면 7세 때는 영어유치원으로 옮기는 것이 좋았겠지만, 아이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려해 그냥 다니던 유치원을 계속 다니게 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첫째 아이의 영어 실력은 유치원보다는 영어 책 읽기를 통해 늘었습니다. 유치원에서 기본적인 영어 파닉스를 배운 후, 책을 워낙 좋아했던 아이인지라, 한국어와 영어 구분없이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을 즐겼습니다. 영어로 된 짧은 스토리북을 읽기 시작한 게 7세에 들어서면서 부터였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2학년 여름부터 한국어 번역본 해리포터 시리즈를 무척 재미있게 읽고 또 읽었습니다. 아마 전시리즈를 다섯 번도 넘게 읽었을 겁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이때 아이는 영어로 ‘매직 트리 하우스’ Magic Tree House 챕터북 시리즈 정도를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영어 원문 해피포터 시리즈의 1권을 서점에 가서 함께 구매했습니다. 아이는 글씨가 이 정도로 작고 두꺼운 영어 소설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이 두렵고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해리포터 시리즈 1권 영어책을 구매한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안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제가 아이가 자기 전 시간에 하루에 1-2페이지씩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너무 재미있어 하면서 이제 그만 자야 하는 시간이라고 얘기하도 조금만 더 읽어달라고 제게 졸랐습니다. 그렇게 자기 전 읽어 준 것이 약 50페이지까지였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아이가 직접 책을 들고 읽고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모르는 단어 투성이고 이해가 안 되는 문장도 많았을 테지만, 계속 읽어나갈 수 있었던 건 이미 한국어로 수도 없이 읽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덕분입니다. 저는 아이가 책 읽는 재미를 경감시키지 않기 위해 모르는 단어를 찾으면서 읽으라는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가끔 아이가 제 옆에서 읽다가 단어의 뜻을 물어보면 대답해 주기도 하고, 저 역시 뜻을 모를 경우에는 함께 사전을 찾아봐주는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해리포터 전권을 영어로 읽고 또 읽고 또 읽으면서 아이의 영어실력은 일취월장하였습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아이들의 영어실력은 계단식으로 늡니다. 전혀 늘지 않는 답보 상태인 것 같다가도 아이가 흥미를 보이거나 재미를 느끼는 계기가 생기면 쑥쑥 실력이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이의 하교 후 오후 시간에는 당시 살던 아파트 단지 바로 뒤에 있던 구립 영어도서관에 가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곤 했습니다. 자그마한 아이가 두꺼운 영어 원서를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다른 아이 엄마들이 아이에게 와서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얘야~ 너는 영어학원 어디 다니니?”
“영어학원 안 다니는데요”
“그럼 너 미국에서 살다왔니?”
“아니요”
“영어학원 어딘가는 다닐거 아니야, 어디 다니는데?”
“진짜 안 다니는데요”
아이는 엄마가 회사 갔을 때, 영어도서관에 혼자 가면 아줌마들이 자꾸 와서 영어 학원 어디 다니는지 꼬치꼬치 물어봐서, 이제 혼자서는 영어도서관에 안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가끔 첫째의 영어실력을 가늠해보기 위해 유명 영어학원에 가서 레벨테스트를 보면, 해당 학원의 최상위 반에 합류할 수 있는 점수가 나왔습니다. 영어학원도 간헐적으로는 다녔지만 첫째 아이의 영어공부는 책 읽기가 9할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한 번은 학원 원장이 아이의 레벨테스트 결과를 보고 놀라며 제게 물었습니다. “이 아이는 어떻게 영어공부 시키셨나요?” 이에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해피포터 시리즈를 너무 좋아해서 여러 번 혼자 읽었습니다”
둘째의 경우, 진득하게 책 읽는 습관이 언니에 비해 덜 잡혀 있었습니다. 해서 아이가 한 2학년 때쯤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다름 아닌, “엄마의 설거지 시간에 책 읽어주기”였습니다. 제가 둘째를 이렇게 꼬셨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설거지 할 때 너무 심심해, 엄마가 설거지를 하면서 동시에 책까지 읽을 수는 없으니까, 네가 엄마를 위해서 엄마 설거지 하는 동안 책을 좀 읽어주면 어떨까? 엄마가 너 어릴 때 너를 위해 책 많이 읽어줬던 것처럼 말이야” 아이는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아~ 엄마가 설거지하는 시간 동안 진짜 심심하겠구나, 내가 엄마에게 책을 읽어주면 정말 도움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는지 흔쾌히 해주겠다고 했고, 늘 저녁 먹은 후 설거지를 시작할 때면 식탁의자를 싱크대 앞으로 바짝 끌고 와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아이가 읽어줄 책을 고를 권한은 아이가 아닌 엄마가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간은 순전히 엄마가 원하는 책을 읽어주는 봉사 시간이었으니까요.
아이가 책을 오래오래 큰 소리로 읽을 수 있도록 설거지 거리가 좀 적은 날은 헹굴 그릇의 개수가 줄어들수록 설거지 속도가 점점 느려졌습니다. 아이는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가끔 얼굴에 수돗물이 튀면 웃으면서 눈살을 찌푸리고 소매 깃으로 물기를 닦아 가며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엄마가 심심하지 않도록 열심히 큰 소리로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물론, 책을 읽어준 덕분에 따분하지 않게 설거지를 잘 할 수 있었다는 감사 인사도 매일 빼놓지 않았습니다.
어떤 날은 중간에 읽기 싫다고 도망간 날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면, “에이, 네가 가버려서 오늘은 심심하게 설거지해야 되네.”라며 자조적인 말투로 아이에게 들리도록 얘기했습니다. 아이는 못들은 척 하다가도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에 다시 와서 읽기도 했고, 정말 읽기 귀찮은 날은 다시 오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 그 다음 날에는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열심히 읽어주곤 했습니다. 아이의 순진한 마음을 활용해서 ‘설거지 책읽기’ 방법을 동원한 결과, 거의 매일 하루에 약 30분 정도 소리 내어 영어책을 읽게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잘 모르고 단지 아이가 책을 좀 더 읽게 하려고 고안해 낸 방법이었지만, 소리 내어 책읽기의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그 이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뇌 과학자들에 의하면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이 광범위한 영역의 뇌를 활성화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읽으면 읽은 내용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의 감각을 쓰는 것보다 여러 개의 감각을 동시에 쓰기 때문에 뇌를 더 많이 자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초 읽기의 방법을 학습 중인 초등 저학년 아이에게 글을 소리 내어 읽는 훈련은 뇌의 영역별 활성화와 함께 집중력 향상, 문자와 소리의 연계를 통한 음가를 익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한국어 책과 함께 영어책을 꾸준히 읽을 수 있도록 항상 신경을 썼고, 한국어 책과 영어 책 읽는 비율을 6:4(한국어책 6: 영어책 4) 또는 최소한 7:3(한국어책 7:영어책 3) 비율로 읽는 습관을 들여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영어책 읽기가 영어공부가 아닌 즐거운 책읽기 시간이 되도록 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둘째 아이의 경우, 7세 때 1년간 영어유치원에 보냈습니다. 아기 때부터 영어책을 열심히 읽어주었고 아이와 늘 영어 노래도 함께 부르곤 했기 때문에 영어에 꽤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영어유치원으로 옮기기 약 2개월 전부터 교보문고에서 영어 파닉스 책을 한 권 구입해서 자음과 모음이 소리와 더불어 기본적인 영단어 읽는 방법에 대해 속성 엄마표 괴외를 해주었습니다. 당시 아이는 엄마가 언니 없이 자기하고만 단 둘이 뭔가 공부를 한다는 사실에 대해 흐뭇해하면서 늘 즐겁게 공부했습니다. 또 어릴 때 책읽기를 통해 꽤 많은 영어 단어들과 익숙해 있었기에, 더 쉽게 파닉스를 익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아이는 영어유치원 7세반 중에서 중간 정도 레벨의 반으로 합류할 수 있게 되었고 몇 달 후 레벨 테스트를 통해 최상위 반으로 옮겼습니다.
둘째 아이가 영어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유치원에서 내준 책읽기 숙제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짧은 스토리북을 읽은 후, 온라인으로 책 내용에 대한 Q&A를 푸는 숙제였는데, 아이가 어느덧 요령이 생겨 이 숙제를 거꾸로 하고 있었습니다. Q&A상의 질문을 먼저 훑어본 후, 책에서는 그 해답이 있는 부분만을 골라 읽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런 숙제는 할 필요 없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그 모습을 목격한 다음부터는 왠만하면 아이와 함께 스토리북을 읽어주었습니다. Q&A는 푸는지 안 푸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지, Q&A 숙제를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10여 년 전 보다도 훨씬 영어공부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굳이 영어권 국가에서 체류하지 않았더라도 아이들은 영어책 읽기를 통해 영어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놀라울 정도로 책읽기 하나만으로 영어 공부의 90% 이상이 해결됩니다. 물론 문법이나 단어는 따로 공부를 해야 하지만, 이 부분은 책 읽기를 통해 영어 문장의 구조가 익숙하고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는 단어들은 이미 많은, 즉, 영어실력의 기반이 잡혀 있는 아이에게는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좀 더 커서는 BBC 다큐멘터리 받아쓰기, TED Talk 받아쓰기 등을 통해 듣기와 쓰기 공부도 병행하였습니다. BBC 다큐멘터리 <스토리 오브 인디아> 영상을 계속 끊어서 듣고 빈 공책에 딕테이션(dictation), 즉, 듣는 대로 받아쓰기를 했습니다. 어떤 문장은 잘 들리지 않는다고 얘기하면 4번이고 5번이고 반복해서 들려주었습니다. TED Talk의 경우, 60분 길이의 다큐멘터리에 비해 러닝 타임이 짧아서 받아쓰기하기 안성맞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