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학소년 Aug 16. 2024

#3 지옥의 OJT

[소설] 원곡동 쌩닭집-3화-원곡쌩닭 ③ OJT 시작

약 2주일 후,      


엄마의 장례를 치른 후 나는 서울 직장에 사표를 내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안산 원곡동으로 내려왔다. 엄마의 집은 예전 집 그대로 쌩닭집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며칠 후,


아저씨는 나를 엄마와 같이 운영했던 원곡 쌩닭집으로 초대했다. 내가 살게 된 엄마의 집에서도 보이는 원곡 쌩닭집은 그동안 확장을 했는지, 안으로 들어오니 꽤나 널찍한 곳이었다. 커다란 냉장고에는 손질된 닭고기들과 닭발, 닭내장과 같은 각종 부속물들이 가득했다. 문 입구 양쪽에는 신선한 계란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신기하게도 가게 안쪽에는 도매시장에서 떼어 온 듯한 돼지와 소 같이 보이는 다양한 고기 덩어리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계란과 닭고기 말고도 아직까지 돼지와 소고기도 도매시장에서 떼어 여기서 가공해서 파시는구나’     

가게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안쪽에서 아저씨가 나오더니 반갑게 인사했다. 나는 아저씨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준이 왔구나. 회사는 정리 잘했고? 원곡쌩닭집에서 일하게 된 것을 환영한다.”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아, 내가 공식적으로는 원곡쌩닭 박 부장인데, 그냥 편한 대로 아저씨나 부장님, 혹은 박 부장님이라고 부르면 돼. 그리고 우리 가게는 배달 전문점이거든. 배달 나가야 할 일이 은근히 많다.”      


아저씨는 문 앞에 주차된 낡은 스쿠터를 가리키셨다. 스쿠터 뒤 빨간 박스에는 하얀 궁서체로 씌여진 ‘원곡 쌩닭’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아참, 원동기 면허는 취득했니?”

“네, 취득했습니다. 이제 저도 오토바이 몰 수 있습니다.”

“잘 되었구나.”     


아저씨는 내 머리를 한참 보더니 말했다.      


“가만 보자... 내가 보니 우리 준이가 엄마 닮아서 탈모증상이 있구나.”     

“엄마가 탈모 증상이 있었다고요?”

“요괴는 원래 머리숱이 없지, 너도 아마 외탁을 해서 엄마와 같이 머리숱이 없는 것 같은데. 그대로 두면 계속해서 머리가 모두 빠질 것 같으니 안 되겠다. 우리 지금 이발소 갔다 오자. 여기 우리 원곡쌩닭집은 청결함이 생명이니까. 머리카락이 든 고기를 배달하고 팔 수는 없잖아?”     


“지금 바로 이발소요?”     


내가 놀란 눈으로 아저씨를 보자, 아저씨는 하얀색의 작업복과 장갑을 벗으면서 말했다.      


“이발소는 바로 옆이니 지금 갔다 오자.”     


아저씨는 하얀 장갑을 끼고 있는 내 왼손을 바라봤다.      


“이곳 원곡동에서는 장갑 같은 거는 끼고 다니지 않아도 된단다.”

“제 검은손을 보면 다들 놀라지 않을까요?”

“어릴 적부터 네 왼손이 검다는 것을 이곳 주민들은 다 알고 있다. 문제없다.”     


잠시 고민한 나는 왼손에 낀 장갑을 벗었다. 장갑을 벗자 마치 주변의 모든 빛을 집어삼킬 듯이 새카만 왼손이 보였다. 우리는 원곡쌩닭집 바로 옆에 있는 이발소를 들어갔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헬스를 하는 것처럼 몸이 좋은 주인아저씨 혼자 탁자 위에 있는 가위들을 마른 수건으로 정성스럽게 닦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엄마 장례식 때 조문을 오셨던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고려인 아저씨였다.      


***     


“형님, 저 왔습니다,”

“이 아침에 웬일이야? 어? 준이 너도 이제 내려와서 엄마 쌩닭집 물려받아하는구나? 잘 생각했어.”     

“안녕하세요, 옆에 있는 원곡쌩닭집에서 앞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님 장례식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허리를 90도로 굽혀서 이발소 아저씨에게 인사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너희 어머님에게 빚진 게 얼마나 많은데, 반가워, 여기 앉아,”     


나는 아저씨가 가리키는 의자에 앉았다. 앞의 거울을 보니 휑한 머리의 내가 반사되어 보였다. 거울에 비치는 나는 반곱슬에 심각한 탈모 증상이 있는, 윗머리는 거의 없고 아래는 구불구불 풍성한 영락없는 중년 아저씨의 머리였다. 검은 왼손을 들어 머리를 만지작거리자 이발소 아저씨가 말했다.      



“머리 어떻게 해줄까? 머리숱도 얼마 없고 탈모 증상이 있는데 확 밀어버려? 쌩닭집에서 앞으로 청결하게 일하는 데 도움도 되고, 오히려 빡빡이가 더 젊어 보일 거 같은데?”     

“네? 빡빡이요?”     


깜짝 놀란 나는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는 이발소 아저씨를 보더니 말했다.     

 

“우리 준이가 좀 더 완벽한 원곡쌩닭집 직원이 되기 위해서 형님이 우리 준이 머리에 좀 힘 좀 써봐요, 대머리가 되기에는 우리 준이가 좀 이른 나이지. 그때 사장님처럼 머리에 약 좀 넉넉하게 뿌려줘요.”     

“그런가? 오케이. 원하는 스타일은?”

“그냥 예쁘게 해 주세요.”

“우리 집은 그냥 이쁘게 그런 거는 없어.”

“그러면 알아서 잘해주세요.”     

“에이씨. 알아서 해달라는 게 제일 힘든데.”     


아저씨는 투덜대면서 구석에서 먼지가 쌓인 노란 분무기를 가지고 오시더니 내 머리 위에 칙칙 뿌리기 시작했다. 분무기의 물에서 풍기는 상쾌한 멘솔과 장미꽃 향기를 맡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잠이 스르르 왔다.      


***     


“어이, 다 됐어. 마음에 들랑가 모르겠네?”     


이발소 아저씨의 말을 듣고 잠이 깨서 눈을 떴는데 앞이 보이지 않아서 당황했다.     


‘아직 잠에서 안 깬 건가?’     

“다 끝났어, 이제 그만 자고 저쪽에 가서 머리 감고 와, 머리 감는 건 셀프야.”     


그 순간 이발소 아저씨는 내 앞머리를 손으로 올려주었다. 거울에는 찰랑찰랑하고 풍성한 머릿결을 가진 훈남이 보였다. 깜짝 놀란 나는 이발소 아저씨를 바라봤다.      



“앞으로 이곳 원곡동에서 일하게 된 걸 축하하는 의미에서 내가 자네 머리에 힘 좀 써봤어. 그거 가발 아니니 머리 마음껏 감아도 돼. 탈모 방지약 잔뜩 뿌렸으니 앞으로 머리 빠질 일 없을 거야.”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직 꿈같은 느낌이 들어서 검은 왼손을 들어 머리를 만져봤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카락이 더욱더 검은 나의 왼손을 따라 찰랑거렸다. 머리를 감고 다듬은 후, 아저씨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면서 소리쳤다.   

   

“형님, 땡큐! 우리 가요.”     


나는 이발소 아저씨를 보면서 말했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감사는 계산으로 해야지? 카드? 현금?”     

“아 맞다, 얼마예요?”

“1조”     

“네?”

“놀래긴, 농담이야, 현금 만 원. 카드로 하면 만 천 원”     


나는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이발소 사장님에게 인사를 드린 후 아저씨와 함께 쌩닭집으로 돌아왔다.  

   

***     


“이렇게 순식간에 머리카락이 나오는 게 가능한지 몰랐어요.”

“이곳 원곡동에서는 안 되는 일도, 되는 일도 없어, 요괴였던 너희 엄마도 원래 머리카락이 거의 없었거든. 저기 이발소 형님이 같은 방법으로 탈모를 고쳐준 거야.”

“그럼 원곡동에는 요괴들만 사는 곳인가요?”

“무슨 소리야. 이곳은 요괴들도 같이 사는 좋은 동네지.”     


아저씨는 나를 보면서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 이제 정식으로 우리 준이가 우리 원곡쌩닭집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약속한 바에 따라 OJT를 실시해야겠지?”

“여기 생닭집에서요?”

“그럼 여기서 하지, 어디서 하겠어? 우리 역사와 전통이 있는 원곡쌩닭집을 무시하는 거 아니지?”

“아.. 아닙니다. 그런데 OJT 교육 내용이 뭐예요?”     


아저씨는 닭집 구석으로 가시더니 5m 정도 앞에 있는 벽에 걸려 있는 닭의 부위가 그려져 있는 커다란 그림을 가리키셨다.          


“자, 이것이 바로 닭이야. 우리가 매일 자르고 써는 고기 중 하나지. 닭은 빠르게 해치우고 가능하면 돼지로 바로 넘어간다.”     

“우리 가게는 원곡 쌩닭집인데 돼지보다 닭에 중점을 둬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돼지와 소를 배우면 닭은 거저 먹기다. 닭은 오늘 하루만 배우면 너 혼자 충분히 가공할 수 있어.”      

아저씨는 작은 칼로 닭 가운데의 안심을 먼저 가리키신 후 차례대로 이야기했다.     

“요기가 닭의 안심, 요기 위 전체를 닭봉이라고 해. 나머지 부위들은 함 봐바. 외울 수 있겠지?”

“그럼요. 이 정도는 가능하죠.”

“그래?”     


아저씨는 내 옆으로 오셨다. 그리고는 들고 있는 칼을 나에게 전해주셨다.      


“자, 이 칼을 닭의 안심으로 던져봐.”

“네? 이 칼을 닭의 안심으로 던지라구요?”

“내가 농담하는 걸로 보여? 지금 바로 닭의 안심으로 던져봐.”

“어....”     


나는 칼을 받아서 마치 다트를 던지는 것처럼 살살 칼을 닭 그림의 안심 쪽으로 던졌다. 내가 던진 칼은 공중으로 붕 뜨더니 닭 옆에 있는 돼지 그림을 맞고 튕겨져 나와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저씨는 내 머리통을 뒤에서 퍽 쳤다.     


“앗..아파요.”      

“이게 지금 장난해? 다른 건 몰라도 칼과 도끼. 톱을 들고 있을 때는 장난치지 않는 게 우리 원곡 쌩닭집의 원칙이다. 똑바로 해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 칼을 던져서 뭐 어쩌라는 거예요?”    

 

내 옆에 서 있던 아저씨는 또 다른 작은 단검 같은 칼을 들더니 순식간에 그림으로 던지셨다. 단검은 번개 같은 속도로 닭의 안심 부위에 퍽 하고 정확하게 꽂혔다. 아저씨는 계속해서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다양한 칼을 집고 던지면서 크게 말했다.      


“안심, 가슴살, 닭날개, 닭봉, 목살,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아가신 네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닭다리!”     


놀란 나는 닭 그림을 쳐다봤다. 닭그림 각 파트의 정 중앙에는 아저씨가 순식간에 던진 6개의 다양한 칼들이 정확하게 꽂혀 있었다. 나는 눈이 똥그래진 채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는 나를 보며 말했다.    

 

“매일 연습하라고. 이 정도는 눈 감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이건 우리 원곡쌩닭집의 기본 중의 기본이야. 그리고 돌아가신 너희 엄마는 나보다 훨씬 더 잘 던졌어. 유명한 요괴 차사였던 네 아버님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너도 잘할 수 있을 거야. 파이팅”     


아저씨는 파이팅 포즈를 취하면서 방을 나갔다.  저 멀리 벽에는 쌩뚱맞게 영어로 된 당나귀와 말 해부도가 걸려 있는 게 보였다.


이전 02화 #2 전설의 고향과 엄마의 유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