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4화-원곡생닭 ④ 무인 편의점
다음 날,
원곡쌩닭집으로 출근해서 매장을 정리하고 있는데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카운터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가 내 뒤로 와서 등을 툭툭 쳤다.
“네?”
“준이 아직 달이랑 인사 안 했지?”
“달이요? 아, 그때 말씀하신 직원분 말씀하시는 거죠? 네, 아직 인사 못했습니다.”
“그래? 달이는 저기 길 건너 무인편의점 관리하는 우리 원곡 쌩닭집 직원인데, 어머님이랑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되었지. 지금은 우리 원곡 쌩닭집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가족과 같은 직원이다. 지금 가서 인사하고 와. 오늘 점심은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으로 먹자꾸나. 지금 가면 달이가 도시락을 줄 거다. 준이 너보다 나이 많으니까 누나라고 부르고.”
아저씨는 길 건너 보이는 무인 편의점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장갑을 벗고 길 건너 편의점으로 향했다.
***
문을 열고 들어간 편의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카운터를 보면서 말했다.
“저기 혹시 달이 누나 계세요?”
“제가 달이 인데요.”
나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신선식품 위에는 편의점을 내려다보는 CCTV와 스피커가 있었는데 그곳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하긴, 무인 편의점이라 해도 누군가는 여기를 지속적으로 보고 관리해야 하겠지?’
나는 CCTV를 보면서 손을 크게 흔들며 말했다.
“저기요, 저 보이세요?”
CCTV로 손을 흔드는 내 모습을 봤는지 달이라는 분이 대답했다.
“말씀하세요. 그나저나 제 이름을 어떻게 아신 거죠?”
“어.. 저는 이준이라고 하는데요, 어제부터 “원곡동 쌩닭집”에서 아저씨와 같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님 하고 오랫동안 일을 같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준이 왔구나. 사장님이 매일 잘생긴 우리 아들 우리 아들 하더니 가까이서 보니 진짜 잘생겼구나? 잠시만. 도시락 주러 지금 나갈게.”
‘아. 이 근처에서 CCTV로 항상 보고 계시다가 일이 있으면 바로 오는가 보구나.’
다시 달이 누나가 이야기했다.
“미안한데 준아, 이쪽으로 와 줄래?”
“네? 어디로요?”
나는 CCTV가 있는 곳으로 얼굴을 향했다.
“거기 말고 이쪽.”
스피커가 아닌, 편의점 반대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구운 계란과 날계란을 파는 코너였다.
“내가 잘못 들었나?”
내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하자 다시 달이 누나가 이야기했다.
“거기 맞아. 계란이 있는 곳으로 와.”
나는 계란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틀림없이 소리는 그곳 인근에서 나는 소리였다.
“죄송한데, 누나 지금 어디 계세요?”
“나? 지금 니 앞에 있잖아.”
“네?”
나는 맨 위에 있는 계란박스 가운데 위치한 노란 날계란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계란 위에 투박하게 사인펜으로 그린 눈이었다. 마치 아이들이 계란에 장난을 치듯이 그린 달걀의 얼굴이었는데 그 표정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달걀을 쳐다봤다.
“어...”
“나는 여기 무인편의점을 관리하는 원곡 쌩닭집 직원, 달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어제부터 원곡 쌩닭집에서 일하게 된 이준이라고 합니다.”
나는 허리를 굽혀서 달이 누나를 향해서 인사를 했다.
“아저씨가 말한 도시락 줄 테니까, 나를 네 왼손으로 가볍게 한 대만 때려줘. 별도로 빼놓아서 냉장고 뒤에서 꺼내야 하거든.”
“네? 제 왼손으로 때려요?”
“응. 그래야 내가 도시락을 주지. ”
“아.. 네.”
나는 검은 왼손의 손가락을 알밤을 때리는 모양으로 만들어서 조심조심 가볍게 말하는 달걀을 툭 쳤다.
“너무 약한데, 조금만 더 세게. 한 번만 더 부탁해.”
“어...”
“괜찮아, 나 그렇게 쉽게 깨지지 않아. 손가락으로 가볍게. 조금만 더 세게.”
나는 방금 전보다 검은 손가락에 힘을 더 줘서 달걀을 툭 쳤다. 그 순간이었다.
***
계란이 공중으로 부웅 뜨더니 커지기 시작했다 커진 계란에서 손과 몸, 그리고 발이 나오더니 사람만 한 사이즈로 변하면서, 급기야는 면티에 청바지를 입은 날씬한 여성의 몸으로 변했다. 하얀 면티 위에는 편의점 직원들이 흔히 입는 파란색의 편의점 작업용 조끼를 입고 있었다. 조끼의 뒤에는 궁서체의 하얀 글씨로 “원곡쌩닭 무인편의점”이라고 적혀 있었다.
“안녕! 우리 처음으로 인사하네? 나는 여기 무인편의점 관리하는 달이라고 해. 내가 너보다 아마 좀 더 나이가 많을 걸? 그러니 앞으로 편하게 누나라고 불러. 어머, 준이 너, 듣던 대로 검은 왼손이구나? 멋진걸?”
160cm 정도의 크기로 변한 달이 누나가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얼굴을 쳐다봤다. 몸은 사람의 몸이었지만, 여전히 달이 누나의 얼굴은 아까 보았던 노란색의 달걀에 사인펜으로 그린 듯한 눈코입을 가진 얼굴이었다. 머리숱이 어찌나 많은지 보통 여성의 묶은 머리보다 달이누나 한 갈래 머리가 더 두꺼워 보였다.
“어..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도 얼떨결에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어제 보니까 여기서 아이스크림 사 먹던데? 이쪽으로 와.”
달이 누나는 냉장고 안쪽에서 도시락 두 개를 집어 나에게 주면서 말했다. 나는 도시락을 받으면서 달이 누나의 민숭민숭한 노란 계란과 같은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왜? 내 얼굴에 뭐가 묻었니?”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아. 준이가 내 맨 얼굴을 처음 보는구나. 히힛. 처음 보는 사람들이 다들 당황해하더라고. 너도 이제 원곡쌩닭집 식구가 되었으니 차차 익숙해질 거야. 이 도시락 가지고 가서 아저씨랑 맛있게 먹어.”
“감사합니다.”
나는 달이 누나에게 인사를 하고 도시락을 들고 편의점을 나왔다. 몇 걸음 후 고개를 돌려 편의점을 뒤돌아봤다. 그 사이 달이 누나는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
건너편의 원곡쌩닭집으로 도시락을 들고 들어오면서 아저씨를 보고 말했다.
“그나저나 아저씨, 달이 누나.. 아니 아가씨라고 해야 하나?”
“달이 만났구나. 달이가 도시락 미리 빼서 팔지 않고 가지고 있었지?”
“네, 그런데 오늘 처음 본 분인데...”
“오늘 처음 보다니 무슨 소리야. 너희 엄마 장례식 때 3일 내내 같이 있었는데. 그리고 어제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사 먹을 때 내가 달이 보고 손 흔들면서 인사했던 거 기억 안 나?”
순간 나는 엄마의 장례식 내내 특이하게도 노란 달걀 하나가 엄마의 영정사진 옆에 놓여 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아저씨가 어제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살 때, 편의점 구석 달걀코너를 보면서 반갑게 손을 흔들던 것도 기억했다.
“아.. 3일 내내 우리랑 같이 엄마 장례식에 계셨구나. 그럼 어제 CCTV 보시고 손 흔드신 게 아닌 거였어요?”
“난 달이 보고 손 흔든 거지.”
“무인 편의점이 아니면 CCTV는 그럼 왜 달아 놓은 거예요?”
“거기 CCTV는 다 모형이야. 달이가 1년 365일 두 눈 부릅뜨고 편의점을 지켜보고 있다. 그 CCTV 전원연결 안 되어 있는 거 몰랐냐? 이제 보니 우리 준이 눈치 꽤 없는 편이구나?”
“아.. 그러면 그분 달걀귀신이에요?”
“달걀귀신이라고 부르면 달이가 싫어한다,”
아저씨는 도시락 뚜껑을 열면서 이야기했다.
“와 오늘 반찬 구성 좋은데? 달이에게 고맙다고 전해줘. 엇, 근데 국물이 없네.”
아저씨는 뚜껑을 열면서 투덜거리셨다. 우리는 맛있게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띠링
그 순간 누가 원곡 쌩닭집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진한 눈썹에 오뚝한 코, 큰 눈에 오밀조밀한 입술까지 남자들이라면 한눈에 반할 외모의 아가씨였다. 아는 사이인지 아저씨는 아가씨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도시락 고마워.”
“아까 국물을 빼고 드렸더라고요.”
“그렇지? 우리 무인편의점 도시락의 핵심은 뜨끈한 오뎅국물인데 이상하다 했어.”
아가씨가 가지고 온 까만 비닐봉지에서 오뎅 국물이 들어 있는 작은 플라스틱 용기 두 개를 꺼내더니 하나씩 까서 우리 앞에 놓아주기 시작했다. 어찌나 뜨거운지 뚜껑을 여니 김이 모락모락 나고 오뎅과 무의 달큰한 향이 원곡쌩닭집 안에 화악 퍼지기 시작했다.
“이건 우리 동생 거.”
예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 나는 당황했다.
“어? 그런데 저를 아세요?”
“어머, 이 오빠, 왜 이래. 방금 우리 만나서 인사해 놓고.”
“야야 오빠 아냐. 너보다 한참 어려.”
뜨거운 오뎅국물을 후루룩 들이키면서 아저씨가 말했다.
“무슨 소리. 저 아직 스무 살이에요, 영원한 스무 살. 먼저 갑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가씨는 문을 열고 무인편의점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놀란 나는 밥을 먹다 말고 쌩닭집 창문에 붙어서 청바지를 입은 아가씨를 쳐다봤다.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는 순식간에 작아지더니 작은 노란 계란 모양으로 변했다. 노란 계란은 깨지지 않는지 통통 바닥을 튀면서 아까 처음 보았던 그 계란박스 속으로 쏘옥 들어가 어느새 사라졌다.
놀란 나는 도시락을 드시고 있는 아저씨를 향해 어버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저저... 저분이 그럼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몽달귀신인 거예요?”
“아까 이야기했지만 달걀귀신이나 몽달귀신이라고 하면 엄청 싫어해. 달이라고 불러. 아 참, 달이는 얼굴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거는 눈치챘지? 가끔 장난치니까 조심해.”
아저씨는 남아 있는 국물을 후루룩 들이키셨다. 나도 국물을 들이키면서 아저씨에게 물었다.
"저 아저씨. 궁금한 게 있는데 우리 집 간판을 새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특히 붉은 페인트가 아래로 흘러내려서 보기에 좀 무섭기도 하구요."
"간판을 바꾼다고? 안되."
"왜요?"
"저 간판의 글씨체가 바로 '요괴체'다. 우리 가게의 주요 손님은 요괴와 귀신, 도깨비들인데 간판을 저렇게 써야 손님들이 멀리서 간판 냄새를 맡아서 잘 찾아오거든."
"요..요괴체요? 간판냄새요? 저 붉은색 페인트 냄새 말씀하시는 건가요?“
“페인트 아니다.”
“그...그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