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학소년 Aug 16. 2024

#2 전설의 고향과 엄마의 유언

[소설] 원곡동 쌩닭집-2화-원곡쌩닭 ② 엄마의 유언

내 손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괴물의 커다란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다랗고 멧돼지 같은 긴 털이 빽빽하게 덮인 손이, 장갑을 낀 나의 왼손을 잡았다. 엄마의 손끝에는 기다랗고 굵은 손톱이 날카롭게 자라 있었다. 내 손을 잡은 침대 위의 낯선 괴물은 나를 천천히 바라봤다. 괴물의 눈은 틀림없는 엄마의 눈이었다. 나는 그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엄.. 마?”

“준이 왔구나. 고맙다. 와줘서.”      


틀림없는 엄마의 목소리였다. 나는 한참 동안 말을 못 하고 침대에 있는 그 괴물을 바라보았다. 나를 해치거나 위협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눈동자를 바라보니 틀림없는 엄마의 눈이었다. 나는 눈을 다시 한번 바라보면서 말했다.      


“엄... 마.. 그동안 연락 자주 못 드려 죄송해요.”     


콜록콜록     


엄마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기침을 하셨다. 한참 동안 기침을 하던 엄마가 나를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아들?”

“네, 말씀하세요.”

“우리 아들, 밥은 먹고 다니지?”     


그놈의 밥타령.


당신이 죽어가는 와중에 밥 먹었냐는 질문을 할 줄 몰랐지만 나는 엄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밥을 먹고 다닌다는 것을 확인하셔서 기뻐지셨는지 다시 빙그레 웃으셨다.


“아들,”

“네,”

“우리 아들 밥은 먹고 다니지?”

“네. 걱정 마세요. 밥 잘 먹고 다녀요.”

“다행이네. 그나저나 엄마는 아저씨에 대한 너의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구나.”     

 

나는 말없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침대 옆에 있는 보호자용 의자에 앉았다.    

  

“아들, 장갑을 벗은 왼손을 엄마가 한번 만질 수 있을까?”    

 

왼손에 낀 장갑을 벗자, 칠흑같이 검은 왼손이 나타났다. 엄마는 긴 손톱이 있는 털이 수북한 손을 내밀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엄마 믿지? 엄마와 아빠의 모든 유산을 우리 아들이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면 좋겠구나. 이제 이곳 원곡동의 진실을 우리 아들이 알 때가 된 것 같구나.”     


엄마는 창 밖으로 보이는 원곡 교도소의 거대한 담장을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나의 검은 왼손으로 엄마의 거친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무언가 강한 기운이 엄마의 손에서 내 손으로 옮겨지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어릴 적 환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     


내가 태어난 곳은 원곡동에 있는 작은 산부인과였다. 간호사의 손에 들린 막 태어난 작은 신생아의 왼쪽 어깨부터 아래까지 모든 왼손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나를 엄마는 소중하게 안아주었다. 며칠 후,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젖을 먹이던 엄마는 옆에 앉아있던 아빠와 무언가를 이야기하더니, 두 분은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왼손이 있어야 할 작은 신생아의 왼쪽 어깨를 잡으면서 눈을 감았다. 엄마의 손에서 나온 검은빛은 내 검은 왼손을 만들어내더니 엄마는 기절하였다.


아빠가 받아서 안은 어린 나에게는 검은 왼손이 생겨났고, 나는 엄마가 만들어준 검은손으로 아빠의 머리를 잡고는 방실방실 웃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엄마도 깨어났다. 아빠와 엄마는 나의 검은 왼손에 입을 맞추었다.

     

***    

 

잠시 후 눈을 떠보니, 여전히 엄마는 괴물과 같은 모습이었고 침대 옆에 정신을 잃고 기댄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놀란 나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엄마는 내 검은 왼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우리 아들이 이 손을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겠구나.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해 주려무나. 엄마 죽으면, 나를 대신해서 아저씨와 같이 이곳 원곡동에서 일해줄 수 있겠니? "


엄마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직까지 나와 대화를 하는 이 낯선 괴물과 같은 생명체가 정말로 우리 엄마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쾅     


고개를 돌리니, 병실의 문이 열리면서 아저씨가 안으로 급하게 들어오셨다. 나의 검은 왼손을 보고 놀라셨는지, 괴물을 보고 놀라셨는지 아저씨는 침대 옆으로 말없이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엄마 쪽을 바라보면서 소리 질렀다.     


“이게 항암 부작용이라고요?”   

  

뒤돌아보니 침대에는 방금 전 보았던 괴물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억 속의 작고 앙증맞은 엄마가 누워서 나의 검은 왼손을 잡고 있었다. 엄마는 정신을 다시 잃으신 상태였다. 놀란 나는 아저씨를 바라봤다.     


“엄마는 돌아가신 아빠를 진심으로 사랑했단다. 아저씨랑 준이 아버지는....”     


삐이이이이이익     


엄마의 몸과 연결된 수많은 기계들에서 일제히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나를 향해 방을 나가라고 손짓했다.    

  

***     


엄마의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러졌다. 아저씨가 상주를 해 주었다. 원곡시장에서 일하시는 분들로 추정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와 주었고, 그중에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몽골 사람들 같은 분들이 대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외동아들인 나는 부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회사에도 가족장이라고 이야기하고 친구를 포함해서 그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날 새벽,     

 

아무도 찾지 않는 작고 초라한 장례식장에는 왼손에 장갑을 낀 나와 아저씨만 있었다. 구석에서 앉아 엄마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작고 귀여운, 항상 단정하게 화장을 한 엄마가 나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노란 날계란 하나가 엄마의 영정사진 바로 옆에 놓여있었다. 그 계란을 보면서 생각했다.      

‘엄마가 계란을 좋아하셨던가.. 그건 몰랐네.’     

“준아. 밥은 좀 먹었니?”     


아저씨가 내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어휴, 그놈의 밥타령,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앞에 앉으신 아저씨는 안주머니에서 통장 하나와 도장을 꺼내면서 말했다.      


“엄마가 너에게 남겨주신 통장이다.”      


나는 낡은 종이통장을 받아 들고 아저씨를 보면서 말했다.   

   

“제가 보았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세요. 아저씨가 병실로 들어오기 전, 엄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제가 헛것을 본 건가요?”     

“아니다.”     

“그럼..”

“혹시 태곳적 귀신과 요괴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니?”     

“태곳적 귀신과 요괴요?”     


그 순간 나는 어릴 적 아버지와 같이 TV로 전설의 고향을 보던 기억을 떠올렸다.


***      



당시 심약했던 나는 전설의 고향 그 특유의 도입 음악을 무척이나 무서워했었다. 그날 전설의 고향을 보기 위해서 기다리던 어린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귀신은 정말 있어요?”     


한참을 생각하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씀하셨다.   

   

“그럼, 사람의 몸에서 넋이 나온 게 귀신이지.”

“넋이요?”

“넋이 빠졌다, 넋이 나갔다는 말 들은 적 있지?”

“네.”

“그 넋이 살아 있을 때는 육신과 함께하지만, 죽으면 넋이 육신을 완전히 떠나간단다. 사람이 죽어서 육신이 없어졌는데도 그 넋이 생전의 원한이나 미련을 놓지 못하면 귀신이 된단다. ”     

“그럼 만화에 나오는 괴물 같은 요괴는요?”     


요괴라는 말을 들은 아빠는 한참을 말을 못 하시더니 나를 바라봤다.      


“일반적인 요괴는 그 넋이 없는 사람의 육신인 거지. 사람의 넋이 빠져나간 육신이 자각하고 스스로 움직이게 되면 요괴가 된단다. 즉, 살아 있을 때의 원한이나 미련이 있으면 그 혼이 귀신이 되고, 혼이 나간 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요괴가 되는 것이지.”     

“그러면 요괴는 생각을 못 하는 괴물이에요?”     

“일반적으로 그렇지만, 그 요괴의 몸에 착한 혼이 들어가서 자각을 하면, 사람보다 더 착한 요괴가 될 수 있단다. 그러면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바꿔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 수도 있지.”     

“착한 요괴도 있구나, 그러면 도깨비도 요괴인 거예요?”

“도깨비는 요괴하고는 좀 다르지,”

“뭐가 다른데요?”

“도깨비는 사람이 아닌 오래된 물건이 자각하고 생명처럼 살아난 것이지.”     

“우와, 신기하다. 그러면 요괴나 도깨비는 귀신처럼 살아생전의 원한이나 미련이 없겠네요?”

“그렇지.”     

“아빠, 그러면 귀신과 요괴는 어떻게 쫓아내요? 햇빛이나 팥죽 싫어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가장 좋은 방법은.”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셨다.    

  

“가장 좋은 건.. 귀신은 그 원한이나 미련을 풀어줘서 그 넋을 하늘로 보내고.”

“요괴는요?”     


아버지는 TV를 쳐다보시면서 말씀하셨다.  

   

“원래는 톱이나 칼로 요괴의 목을 자르거나, 그 혀를 뿌리째 잘라야 한다. 착한 요괴들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버지가 말씀을 하자마자 전설의 고향 시그니처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쿠우웅... 쿵쿵.... 전설의 고향..     


나는 이불속에 숨어서 얼굴을 빼꼼 내놓고 다시 물었다.     


“아빠. 그런데 도깨비도 요괴처럼 목을 치거나 혀를 뽑아야 해요?”

“도깨비는 이제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왜요?”

“왜냐하면. 도깨비는 이제 더 이상 사람을 해치지 않는단다. 모든 도깨비들은 삼신할매가 잘 다스리고 있거든.”

“와. 신기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을 꼴깍 삼키면서 전설의 고향을 보기 시작했다. 검은 왼손과 하얀 오른손으로 이불을 잡고 아빠를 보면서 다시 물었다.

     

“아빠.”

“응?”

“그럼 제 검은 왼손은 뭐예요? 귀신인가요 요괴인가요 도깨비인가요?”

“아무것도 아니지. 엄마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아들 준이 손이지.”

“칫.”     

“아들, 이제 그만 자야지?”     


엄마가 부엌에서 크게 이야기하셨다.  

    

“이것만 보고요.”     


***     


“너희 엄마는 요괴였다. 요괴를 잡는 요괴 차사였던 너희 아버지는 착한 성품의 엄마에게 반해서 차사를 그만두고 엄마와 결혼을 하고 너를 낳으신 거란다.”      


나는 아무 말을 못 하고 한참 동안 나의 검은 왼손을 바라봤다.   

   

“그 말은 제가 요괴의 자식이라는 거네요? 그래서 제가 왼손이 없이 태어났고, 엄마가 요괴의 능력으로 제 검은 왼손을 만들어 준 건가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너 같이 요괴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반인반요(半人半妖)라고 부른다.”     

”그럼 엄마의 진짜 모습은..”     

“네가 병실에서 본 그 모습이 엄마의 본모습이다. 정신이 온전할 때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이 가능하지만, 정신이 온전하지 않을 때는 본래의 태곳적 요괴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마 넌 그동안 인간으로 변한 엄마의 모습만 봐 왔을 것이다.”     


아저씨는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내가 그때 10분 뒤 엄마 정신이 돌아오면 그때 병실로 들어가자고 한 거였다. 엄마는 자신의 본모습을 자식인 너에게는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 ”     


나는 한참 소주잔을 바라본 후 아저씨를 보면서 말했다.     

 

“저 대신에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상치 않았던 대답이었는지 아저씨는 깜짝 놀라면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아저씨를 바라보면서 다시 물었다.      


“그러면 아저씨와 엄마는 어떤 사이였어요? 아저씨는 엄마를 사랑하세요?”     


예상치 않은 질문이었는지 아저씨는 나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리고 자기 앞에 놓인 소주를 들어 빈 잔에 따르면서 말했다.      


“엄마와 나는 네가 생각했던 그런 부부가 아니었다. 나는 뛰어난 요괴 차사였던 너의 아버님을 세상에서 가장 존경했다. 나는 아버님을 믿고 따르던 부하였다.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게 다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 주마.”    

  

의외의 대답에 놀란 나는 아저씨를 바라봤다. 아저씨는 소주잔을 들어 천천히 드셨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기로 하고, 엄마가 따로 말씀하신 건 없니?”

“엄마가 아저씨와 같이 이곳 원곡동에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 네 생각은?”

“지금 제 경제 사정이 좀 안 좋아서 당장 직장을 그만두기는 어려울 거 같아요.”

“얼마나 안 좋길래?”

“그냥 좀 안 좋아요. 다 해결되면 그때 생각해 볼게요.”

“어머님이 남겨주진 유산으로 해결이 안 될 정도니?”

“이 정도로는..”     


나는 아저씨가 전해준 엄마의 통장을 열었다. 통장에는 10억이 넘는 돈이 들어 있었다. 나는 통장을 보고 눈이 똥그래진 채 아저씨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엄마가 이 큰돈을 어떻게?”

“그 통장에 있는 돈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이곳 원곡동에 있는 어머님 명의의 땅을 좀 팔면 될 거 같은데. 여기 원곡동 인근이 다 어머님 명의다.”      


놀란 나는 다시 아저씨를 바라봤다. 아저씨는 내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도 어머님의 유언대로 우리 준이랑 같이 이곳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떠니? 어머님이 관리하시던 원곡쌩닭집은 나 말고도 한 명의 직원이 더 있어. 달이라고. 쌩닭집 앞에 있는 무인 편의점을 달이가 오래전부터 관리하고 있단다. 나중에 소개해 주마.”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나는 아저씨를 보면서 말했다.   

   

“엄마 장례식 끝나면 다 정리하고 이곳으로 내려올게요.”

“잘 생각했다. 우리 그러면 달이랑 같이 이곳 원곡 쌩닭집을 잘 운영해 보자꾸나. 아 참, 우리 원곡 쌩닭집에서 일을 하려면 1년 정도 좀 고기를 다루는 연습을 해야 할 거 같은데, 그건 할 수 있겠지? 우리 원곡 쌩닭집은 닭과 돼지, 소고기는 물론 당나귀와 같은 특수고기들을 모두 파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요괴로 변한 엄마가 네 손을 잡아주면서 다른 말을 하지 않으셨더냐?”

“네, 마지막에 엄마가 제 손을 잡아주시면서 엄마와 아빠의 모든 유산을 제가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 순간 정신을 잃어서 그 이후에는 무슨 말을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구나. 알았다. 네 부모님의 유산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그리고 우리 원곡쌩닭집은 배달을 자주 나가야 하니까 오토바이 원동기 면허도 하나 따두면 좋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응?”

“이제 저에게 말 편하게 하세요. 아저씨 원래 농담도 잘하시는 성격이시잖아요. 엄마가 자주 말씀하셨거든요. 아저씨 정말 재미있는 분이라고.”     


아저씨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방긋 웃으시면서 말했다.      


“편하게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 곧 보자.”



이전 01화 #1 검은 왼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