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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16. 2024

#1 검은 왼손

[소설] 원곡동 쌩닭집-1화-원곡쌩닭 ① 검은 왼손

    


서울 광화문에 있는 직장에서 일을 하는 도중에 문자를 받았다. 그 순간 핸드폰을 들고 있는 나의 왼손이 보였다. 왼손에는 하얀 장갑을 끼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장갑을 벗었다. 하얀 장갑을 벗은 나의 왼손은 완벽하게 검은손이었고 주변의 모든 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내 왼손의 존재를 과학자들이 알았다면 가시광선을 99.995% 흡수한다는 세상에서 가장 검은색이라는 ‘반타 블랙’ 따위는 개발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왼손은 가시광선을 100% 흡수하니까.     



나는 평생 긴 팔의 옷만 입었고 목욕탕도 가 본 적이 없다. 내 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또래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스스로 알게 되었다. 다방구를 하면서 놀다가 친구가 내 왼손에 낀 장갑을 잡고 벗기는 바람에, 동네 모든 사람들이 내 왼손이 완벽하게 검은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사춘기인 중학생이 되었을 때, 왼쪽 어깨부터 왼손가락의 끝까지 완벽하게 검은 나를 부정하였고, 화장실에서 아버지의 면도칼로 검은 손목을 그었다. 검은 손목에서 나오는 피는 여느 인간과 같은 붉은색이었다.   

   

눈을 떠보니 응급실이었고 흰 붕대를 칭칭 동여맨 내 검은 왼손을 엄마가 꼬옥 잡은 채 침대 옆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희귀 혈액형이었던 나를 살리기 위해서 같은 혈액형인 엄마의 피를 굉장히 많이 수혈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칫 엄마의 목숨이 위험했을 정도로.     


그날 엄마는 자신의 피로 나에게 두 번째 목숨을 주셨고, 그날 이후로 나는 검은 왼손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사는 중이다.      

  

***     


문자를 받은 즉시 몇 년 전부터 엄마가 누워 지내던 경기도 안산에 있는 원곡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안산의 원곡동까지 달리는 한 시간여 동안, 나는 택시 안에서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부모님은 결혼 직후 경기도 안산 원곡시장 입구에 ‘원곡동 쌩닭집’을 차려서 운영하셨다.


시장의 주변 상인들은 강렬한 붉은 텍스트의 '쌩닭'이 아닌 '생닭'이 표준어라고 여러 번 지적했지만, 부모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강렬하고 강렬한 ‘원곡동 쌩닭집’ 간판을 사용하셨다. 


긴 세월을 거치면서 간판 위의 글씨가 흐려지면 아빠는 붉은색의 페인트로 글씨위에 덧쓰곤 했다. 40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여름에 페인트가 녹아 흘러내려서 그런지,  십리 밖에서도 우리집의 간판은 마치 막 자른 닭의 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붉은 피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초등학교 이전 어렸을 적 기억에는 가게 입구에 나무로 만든 닭장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살아 있는 수많은 닭들이 그 안에서 꼬꼬댁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 기억이 잘못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 닭장 속의 닭들은 모두 새벽마다 우렁차게 울어대는 커다란 수탉들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손님이 그중 한 마리를 선택하면, 아빠가 닭장에서 꺼내 직접 목을 꺾어 죽이고, 뜨거운 물을 부어 털을 뽑으면 엄마가 받아서 내장을 가르고 씻은 후 토막 냈다. 세월이 흘러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느 순간부터는 저 멀리 있다는 정육공장에서 가공된 닭을 받아서 팔기 시작했다.      


닭을 기본으로 파시면서 돼지와 소고기도 도매시장에서 떼다가 파셨기 때문에, 가게 안은 닭과 돼지, 그리고 소고기들로 항상 가득했다.      


우리 집은 원곡시장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1층 단독 주택이었다. 대문 앞에 서면 원곡시장 입구와 저 멀리 ‘원곡동 쌩닭집’ 간판이 있는 부모님의 가게가 보였고, 그 뒤로는 거대한 ‘원곡 교도소’의 높은 담장이 보였다. 일제강점기 훨씬 이전부터 죄인들을 가두는 곳이었다는 그곳은, 밤이면 교도소의 담장에 있는 첨탑에서 나오는 강렬한 조명등이 원곡동의 밤을 환하게 비추었다.      


***     


아버님과 어머님 모두 선남선녀 이셨고 나에게도 잘생긴 얼굴과 185cm라는 큰 키, 그리고 작은 머리를 물려주셨다. 특히 엄마는 키 150cm 정도로 작고 귀여웠고 항상 단정하게 화장을 하던 사람이었다. 길고 풍성하게 양쪽으로 내려온 머리는 엄마의 얼굴을 가려줘서 가뜩이나 작은 얼굴이 더 작고 귀엽게 보였다. 어찌나 철저하게 화장을 하시는지 나는 여태껏 엄마가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아마 엄마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도 맨 얼굴을 보이지 않으셨던 것 같다.   

   

검은 왼손은 그나마 장갑으로라도 가릴 수 있어서 괜찮았다. 그러나 문제는 머리숱이었다. 나에게 검은 왼손을 물려주신 두 분은, 자신들의 풍성한 머리카락은 물려주지 않았다. 핏줄 어딘가에 숨어있던 대머리 유전자는 내가 21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힘을 빠르게 각성했다.   

 


모자를 쓰고 윗머리를 가리면 내가 봐도 잘 생겨 보였고, 모든 여자들이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빛바랜 정장을 입은 채 모자를 벗고 회사의 의자에 앉는 순간, 나의 외모는 팀장을 건너뛰고 이사님을 능가하는 노안으로 변모했다.     


탈모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오늘 아침에도 백 가닥이 넘는 머리카락들이 하얀 샴푸 거품이 묻은 검은 왼손을 거쳐, 저 밑의 하수도로 빨려 들어갔다.     


***     


어린 시절, 하늘하늘한 파란색 땡땡이 원피스를 입던 엄마가 ‘원곡생닭집’에서 우악스럽게 식칼을 들고 아빠가 건네준, 털이 뽑힌 생닭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던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고등학생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생전 처음 보는 아저씨를 생닭집으로 데리고 와서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내가 엄마에게 받은 두 번째 충격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몇 개월 안 되었는데 이렇게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리고 재혼을 하신다고?’   

  

밝고 쾌활한 성격의 아저씨는 수시로 나에게 농담을 걸면서 친하게 지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지만, 나는 내 마음을 열지 못했다. 아니, 열 수가 없었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나는 옷 몇 개를 가방에 집어넣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10년이 흐르는 시간 동안 나는 안산 원곡동, 아니, 안산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약 6개월 전에 말기암의 엄마가 원곡동에 있는 호스피스 요양병원으로 들어갔다는 문자를 받았지만 그래도 나는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가끔 전화를 드리면 엄마는 늘 똑같은 질문을 하셨다.      


“아들, 밥은 먹었니?”     


지랄같은 그놈의 밥타령, 택시를 타고 가는 1시간 동안 지난 10년 동안 있었던 과거가 휘리릭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택시는 원곡동 외곽에 위치한 낡은 놀이동산인 "전래동화 월드" 를 지나갔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왔을 때 그토록 거대해 보였던 놀이동산은 지금 보니 아담한 사이즈의 낡은 놀이동산이었다. 낡고 조잡해 보였던 괴물가면을 쓰고 있던 직원들도 생각나고 추억에 젖어 있는데 택시는 어느덧 안산 원곡동의 요양병원에 도착했다.  



“도착했습니다.”     

 

***


“준이 왔구나.”     


10여 년의 세월 동안 어느덧 50대 후반이 된 아저씨가 나를 보고 말했다. 180cm 큰 키의 아저씨는 여전히 탄탄하고 날씬한 몸매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인사하는 척을 했다. 아저씨는 하얀 장갑을 낀 내 왼손을 바라보셨다.      


“엄마는 몇 호실에 계세요?”

“엄마를 보러 가기 전에 나랑 잠시 이야기할 게 있다.”    

  

아저씨는 나를 데리고 1층의 흡연구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저씨는 담배를 꺼내더니 불을 붙이셨다. 한참을 말없이 담배를 태우시던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암 말기인 건 알고 있지?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으신 것 같다.”

“네.”

“항암 하신 지 오래되셔서 몸이 많이 부으셨다. 난 네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충격받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럴 수 있겠지?”

“네.”

“엄마 아프신 후,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했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구나.”      


아저씨는 불이 꺼진 담배꽁초를 휴지통으로 넣으시면서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을 믿어달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다시 쳐다보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나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 후, 말없이 앞장서서 요양병원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엄마가 있는 병실은 커다란 원곡 요양병원 본관 건물 뒤, 정원을 지나서 보이는 작은 건물에 있었다. 누가 보면 드넓은 정원을 관리하는 경비실로 착각할 수 있는 적색 벽돌로 지어진 작은 건물이었다.



작은 건물의 문 앞에서 나는 아저씨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런 곳에 엄마가 있었던 건가요?”

“여기는 이 병원에서 가장 좋은 특실이다. 최근 몇 개월간 병세가 심해지신 엄마는 다른 사람이랑 부딪히는 것을 꺼려하셨다. 그래서 이 병실로 옮긴 것이지. 그리고 엄마와 같이 말기 암환자의 경우 통증이 심해서 모르핀을 계속해서 맞아야 하는 거는 알고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내 왼손을 아저씨가 덥석 잡았다. 놀란 나는 아저씨를 바라봤다. 아저씨는 손목의 시계를 보시면서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항암 부작용으로 엄마의 얼굴과 손발, 그리고 복부가 많이 부으셨다. 마음의 준비는 되었지? 그리고 엄마가 모르핀을 맞으신 지 얼마 안 지나서 지금 병실로 들어가면 안 된다. 10분 정도 지나서 들어가야 한다. 잠시만 나와 같이 이 앞에서 기다리자.”     

“네”     


***     


지이이이잉     


“지금 당장이요? 네 선생님, 지금 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아저씨는 걸려온 전화를 끊으면서 말했다.    

  

“나는 지금 잠시 의사 선생님을 좀 만나러 가야 할 것 같다. 10분 내로 돌아올 테니, 절대로 혼자 들어가지 말고 내가 오면 그때 같이 들어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내 어깨를 붙잡으면서 말했다.      


“아까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지금 대용량의 모르핀을 맞으셔서 제정신이 아니실 거다. 지금 너 혼자 들어가면 절대 안 되고, 10분 뒤 진정되시면 나와 같이 병실로 들어가야 한다. 엄마가 고통으로 소리를 지르셔도 절대 병실로 혼자 들어가서는 안 된다. 내가 금방 다녀오마,”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바로 앞에 보이는 병원 본관 건물로 서둘러 뛰어가셨다.      


***     


약 5분 후,   

  

아아악 크아아아악   


엄마가 누워있는 병실 앞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엄마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아저씨가 이야기한 모르핀이 온몸에 퍼져 엄마가 진정되려면 아직 5분 이상 남은 상태였다.     


쿵쾅쿵쾅

쿵쾅쿵쾅    

 

계속되는 엄마의 비명 속에서 내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악 

   

계속해서 엄마의 비명이 들리자 나는 아저씨의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병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작은 적색 건물 안은 마치 대형병원의 VIP 특실병동과 같은 병실이었다. 저 멀리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커다란 침대가 보였다. 침을 꿀꺽 삼킨 후, 천천히 엄마의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기계들에서 나온 하얀 선들은 침대 위에 누워있는 엄마의 몸에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침을 크게 꿀꺽 삼킨 후, 엄마 곁으로 걸어갔다.   

   

“엄...마?”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은 내 기억 속의 작고 귀여웠던 엄마가 아니었다. 작고 동그랬던 엄마의 얼굴은 항암의 부작용인지 내 머리보다 두 배 이상 커진 상태였다. 머리숱은 물론 눈썹이 하나도 없었다. 놀란 나는 이불 밖으로 나온 엄마의 손과 발을 바라봤다. 작고 앙증맞았던 엄마의 손발은 마치 평생 농사일을 한 농부의 거친 손발과 같이 커다랗고 우악스러웠다.      


놀란 나는 이불을 들추었다. 이불 밑에는 엄마의 배가 마치 만삭의 임산부와 같이 부풀어 있었다. 하얗고 투명했던 엄마의 피부는 거무죽죽하고 윤기가 없었다. 멧돼지같이 굵고 검은 털들이 엄마의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 밖으로 삐져나온 거대한 송곳니가 보였다. 나는 너무나 놀라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다시 엄마를 보니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커다란 침대에 엄마의 몸이 꽉 채워져 있었다. 침대 위의 엄마라고 하는 사람은 고통으로 몸부림을 치면서 신음하고 있었다.      


‘항암 부작용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살이 빠지는 게 아니었나? 몸이 이렇게 괴물같이 커지고 온몸에 수북하게 털이 나는 게 항암 부작용이라고? 저 송곳니는? 엄마가 암이 맞긴 한 거야? 아니, 이 괴물이 엄마가 맞기는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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