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6화-끔찍한 것들 ① 12 지신 이야기
그날 오후,
아저씨와 같이 닭 가공 작업을 마친 나는, 집 냉장고에서 가지고 온 [원곡 무인편의점] 계란 케이스가 생각났다.
“아저씨, 저 잠시 편의점에 가서 달이누나 좀 보고 올게요.”
“어 그래, 올 때 나 아이스크림 하나 사다 주면 안 될까?”
“아유, 그럼요. 금방 갔다 올게요.”
나는 가방에서 빈 계란 케이스를 꺼내 들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딸랑
무인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 나는 계란이 있는 곳으로 가서 하얀 케이스 안에서 웃고 있는 달이 누나를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누나, 저 왔어요.”
달이 누나는 케이스에서 나오지 않고 웃으면서 답했다.
“어, 그래, 준이 왔구나. 근데 손에 든 건 뭐야?”
“아 이거 계란 케이스 돌려주려 왔어요. 12 지신란인가? 텃밭의 비료로 사용하고 무인편의점에 이 케이스를 반납하라고 엄마 메모가 쓰여 있어서요.”
“12 지신란? 아.. 맞다. 그거를 내가 오래전에 사장님에게 줬었지, 이제 기억나네.”
“네. 그런데 유통기한이 좀 지났더라고요,”
“유통기한이 좀 지난 정도가 아닐 텐데?”
“여기 표지에 유통기한이 2023년 4월 15일이라고 쓰여 있던데요? 아무리 냉장고에 넣어서 보관했지만 몇 개월 지난 건데 먹으면 안 될 거 같아서요.”
“뭐래. 그 앞에 마이너스 표시 안 보여?”
“네?”
“그 12 지신란 기원전 2023년 4월 15일에 생산된 거야. 거의 4천 년 된 것 같은데? 사장님이 바로 안 드시고 긴 세월 그대로 가지고 있었구나.”
“사.. 사천 년이요?”
“응. 아마 오래돼서 다 썩었을 거야.”
“아.. 그래서 어머님이 이거를 텃밭의 비료로 사용하라고 메모를 남겨 놓은 거구나. 그래서 계란은 마당의 텃밭에 비료로 묻고 이렇게 케이스만 가지고 왔지요.”
“잘했어. 그나저나 껍데기는?”
“네?”
“12 지신란 껍데기는?”
달이 누나는 작은 계란의 몸으로 통통 튀어서 내가 들고 있는 12 지신란 케이스 안으로 쏙 들어갔다.
“달걀 껍데기요?”
“여기에 안 가지고 왔네? 버렸구나? 잘했어.”
“아, 그거 안 깨고 껍데기 채 그대로 집 마당에 있는 텃밭에 묻었어요. 쓰레기도 안 생기고 좋죠.”
“뭐?”
달이 누나는 12 지신란 케이스 안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직 부화 안 했지?”
“부화요?”
“4천 년이나 된 12 지신란이 땅의 기운을 받으면 깨어날 수 있어. 안 되겠다. 가보자.”
“네? 어디를요?”
“어디긴 너네 집 텃밭이지. 아직 부화 안되었기를 기도하라고.”
“저.. 누나.. 혹시 12 지신란이 그 사이에 부화가 됐으면요?”
누나는 갑자기 푸르뎅뎅해지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상상하기도 싫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존재들을 우리는 마주하게 될 것이야. 그런 존재들을 마주하고 싶지는 않겠지?”
“헉.. 그럼요. 제가 지금 바로 가 볼게요.”
“너 혼자 가면 위험해, 같이 가.”
달이 누나는 12 지신란 케이스에서 나와서 통통 튀면서 내가 입고 있는 작업복 주머니 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누나도 같이 가게요?”
“이렇게 맘대로 돌아다니는 걸 아저씨에게 걸리면 안 되니, 나를 주머니에 넣고 가.”
나는 달이누나를 주머니에 넣은 채 편의점을 나와서 쌩닭집으로 향했다.
“누나. 잠깐만요,”
“왜?”
나는 편의점으로 돌아가서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뒤져서 비비빅 하나를 꺼냈다.
“계산은 나중에 할게요.”
“지금 비비빅이 문제야!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존재들이라니까!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빨라 가야 해.”
“이걸 갖다 줘야 아저씨가 의심 안 해요.”
***
띠링
쌩닭집 안에 들어가니 아저씨 혼자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여기 비비빅이요.”
“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비빅. 땡큐. 근데 우리 이준이는 또 뭐가 그리 바쁘냐?”
“잠시 집에 뭐 놓고 왔어요. 금방 갔다 올게요.”
“어, 그래, 고마워, 잘 먹을게.”
나는 아저씨에게 비비빅을 준 후, 주머니 속 달이누나와 함께 바로 집으로 가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그 순간 아저씨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어? 이준, 너?”
“네?”
“주머니 속에 뭐가 들어 있는 거 같은데?”
“아.. 이거... 아이스크림이요. 저도 하나 먹어야죠. 아저씨만 입인가요.”
“그래. 너도 먹어야지. 얼른 갔다 와.”
“네. 금방 갔다가 올게요.”
***
달이 누나를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걸어가는데, 누나가 밖을 빼꼼 내다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오래전에 12 지신이 결정될 때 문제가 좀 많긴 했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12 지신이 결정되다니요?”
“응? 너 ‘12 지신 달리기 경주’ 이야기 몰라? 유명한 설화인데.”
“어렸을 때 들은 거 같긴 한데 다 잊어버렸죠. ”
“그래? 준이 너, 1월부터 12월까지 달력 알지?”
“당연히 그건 알죠”
“아주 옛날 옛적에 옥황상제님이 1월~12월에 들어갈 동물들을 결정하기 위해서 모든 동물들을 모아서 1월부터 12월 달력에 들어갈 열두 동물을 결정하겠다고 했어.”
“아, 동화책 읽은 거 기억나요. 옥황상제님의 집 앞으로 빨리 오는 순서대로 달력에 들어갈 12 동물을 뽑을 거라고 했던 거 같아요. 호랑이가 1등을 했던가?”
“쥐가 1등을 했어.”
“정말요? 쥐는 개나 고양이보다 느린데요?”
“옥황상제님 앞에 모인 동물 중에서 성실한 소는 자신이 느린 것을 알기 때문에 전날 밤에 미리 출발해서 1등으로 도착했어. 그런데 작은 꾀돌이 쥐가 자기가 꼴찌를 할 것 같아서 소뿔에 매달려 있다가 소가 1등으로 도착하기 직전에 뿔에서 뛰어내려 결승선으로 뛰어들어 1등을 했지.”
“역시 쥐는 치사하군요. 그럼 2등을 소가 한 거겠네요”
“맞아, 3등은 호랑이. 토끼가 4등, 용님이 5등을 했지”
“아니.. 하늘을 나는 용은 왜 1등을 못 했어요? 용이 날아오면 제일 빠른데”
“바다 위를 날아오다가 인당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주고 오느라 좀 늦으셨지.”
“용이 보기보다 착한가 보네요. 가만 보자. 그 뒤로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순이었고, 마지막 12등은 고양이였던가?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돼지가 12등을 했어.”
“돼지요? 뚱뚱해서 못 뛰지 않나요?”
“아니야. 옛날 돼지는 멧돼지라서 잘 뛰었어. 지금 사람들이 키우는 돼지우리에 있는 돼지가 나타나기 전이라서, 저 산속에 있는 재빠른 멧돼지가 돼지들을 대표해서 뛰어서 12등을 했지. 그렇게 해서 1월부터 12월까지 동물들이 결정되었지.”
“그렇구나. 그 뒤 12 지신으로 선정된 동물들은 어떻게 되었어요?”
“12 지신 동물들은 그 후에 지옥에 있는 10명의 시왕님들을 모시게 되었단다.”
“염라대왕과 같은 지옥의 시왕들이요? 말도 안 되지만.. 뭐..”
“뭐라는 거야. 내가 다 옆에서 본 거라니까?”
“네에? 누나 도대체 몇 살이에요?”
내가 나이를 묻자, 달이 누나는 못 들은 척했다. 우리는 집 마당으로 향했다.
***
집으로 온 나는 마당의 텃밭으로 바로 향했다, 텃밭을 보니 마치 부화가 된 계란처럼 이미 속이 텅 빈 계란 껍데기들이 텃밭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계란 껍데기를 본 순간 주머니 속의 달이 누나가 큰 소리로 말했다.
“망했다. 혹시 사장님이 다른 말은 안 했어? 이 끔찍한 존재들이 깨어나면 어떻게 하라고 메모 같은 거 안 남겨줬어?”
“메모요?”
나는 냉장고로 다시 급하게 뛰어갔다. 냉장고 문을 열어서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엄마가 쓴 또 다른 포스트잇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 여기 엄마가 쓴 또 다른 포스트잇이 있었네요.”
“뭐라고 쓰여 있어? 빨리 읽어봐!”
“포스트잇에 이렇게 쓰여 있는데요?”
나는 엄마가 남겨준 또 다른 포스트잇을 냉장고 바닥에서 주워서 읽기 시작했다.
“중요, 반드시 껍질을 깨서 비료로 사용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