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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26. 2024

#26 마고할미와 바리데기 공주

[소설] 원곡동 쌩닭집-26화-전래동화 나라 ⑦태고의 빛과 어둠

다음 날 아침,      


삼신할매의 거대한 초가집 마루에 앉아 있는 도깨비 이과장 주위로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이들은 재잘거리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깨비 아저씨,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 해 주세요.”

“좋아, 오늘은 마고 할머니와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를 해줄게.”     


멀리 있던 아이들도 이과장 주위로 몰려들었다. 삼신할매는 웃으면서 한 발자국 뒤에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삼신할매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아주 옛날 옛적에 마고할미라는 엄청나게 큰 신이 있었어요.”

"할미가 뭐에요?"

"할머니를 할미라고 한답니다."

“그렇구나, 마고 할미는 얼마나 컸어요?”     


이 과장은 손을 들어서 손톱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마고할미가 손을 이렇게 들어서 손톱으로 땅을 긁어 저기 앞에 보이는 산과 강을 만들었어요.”

“손톱으로요? 우와 진짜 큰 할머니다.”

“어느 날 마고할미가 땅에 누워서 잠을 자다가 코를 골았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컸냐 하면”

“얼마나 컸는데요?”

“하늘이 마고할미의 코 고는 소리에 놀라서 그만 폭삭 내려앉았대요.”     


아이들이 깜짝 놀라자 이 과장이 웃으면서 계속 이야기를 했다.     

 

“마고할미가 잠을 깨서 일어나면서 손으로 이렇게 기지개를 켜자, 폭삭 내려앉은 하늘이 다시 위로 올라가고 태고의 빛과 어둠인 해와 달이 생겨났어요. 그리고 마고할미는 손으로 땅을 긁어서 산과 강을 만들고, 큰 홍수를 막아주셔서 우리들이 이곳에서 살 수 있게 해 주셨어요.”

“와. 마고 할머니 대단하다. 마고 할머니는 지금 어디 계세요?”

“그 후 바리공주에게 자신의 힘을 모두 내려주고 하늘의 별이 되었대요.”


“바리공주는 누구예요?”     


순간 이 과장이 삐질삐질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누구냐 하면.... 누구냐 하면... 이제 삼신할매가 나보다 더 재미있게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를 해 줄 거야.”

    

뒤에 서 있던 삼신할매가 한참을 웃더니 이 과장의 뒤를 이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리데기 공주님이 누구냐 하면, 10명 지옥 시왕님들의 엄마예요.”

“와! 정말요?”


“아주 먼 옛날에 바리데기 공주님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이 많이 아파서 약을 찾으러 먼 길을 떠났어요.”

“어디로요?”

“'서천서역국'이라는 곳에 있는 연못이 바로 그 약이었어요.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바리데기 공주가 약수를 뜨려 하니까 그곳을 지키고 있던 무장승이란 신선이 자기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10년을 살면 그 약수를 준다고 했어요.”

“그래서요?”

“바리데기 공주는 무장승이랑 결혼해서 10명의 아이를 낳고 살다가 약속한 10년이 되는 해에, 약수를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돌아와서 부모님을 살렸답니다.”

“와. 바리데기 공주님 착하다.”     

“이렇게 착한 바리공주를 본 마고 할망이, 자신의 딸로 삼아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우리 어린이들도 바리데기 공주님처럼 착하게 살아야 해요. 알았죠?”      

"네!"


***

    

그날 오전 업무를 끝낸 이 과장은 삼신할매를 보면서 물었다.      


“할매, 그런데 아까 마고할망이랑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는 진짜예요?”

“그럼. 진짜지.”

“그렇다면 10명의 지옥 시왕님들을 낳으신 엄마가 정말로 바리데기 공주님이에요?”

“그렇지.”

“공주님의 남편분은...”

“그게 좀 애매하단 말이야. 무장승이라는 신선이었다는 말도 있고, 옥황상제를 모시던 동수자라는 천인이었다는 말도 있는데...”

“그런데요?”     

“전임 삼신할매가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 주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어떤 말씀이요?”


“자기는 바리데기 공주에게 정확하게 열두 명의 자식을 점 지어줬다고. 그런데 실제로 지옥에는 열 명의 시왕님들만 계시지?”


“가만보자. 진광(秦廣), 초강(初江), 송제(宋帝), 오관(五官), 염라(閻羅), 변성(變成), 태산(泰山), 평등(平等), 도시(都市), 오도전륜(五道轉輪) 대왕님 순이니, 엇. 그러네요? 음.. 전임 삼신 선생님께서 그때 약간 헷갈리셨던 게 아닐까요?”     

“그럴 리 없어. 삼신할매는 다른 건 몰라도 아이를 점 지어 줄 때 그 숫자는 실수를 하지 않거든. 그리고..”

     

이 과장은 삼신에게 몸을 기울여서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얼마 전 12 지신 이야기 기억하지? 옥황상제님이 10 지신이 아니라 12 지신을 지정하신 것도 좀 이상하고 말이야.”

“뭐가요?”

“달리기 경주 내기를 하셔서 달력을 만드신 그 시기가 바리데기 공주가 첫째 아들인 진광대왕님을 낳았을 당시거든. 삼라만상을 다 아시는 옥황상제님이 지옥 시왕님들의 수호신을 '왜 열 마리가 아닌, 열두 마리의 동물로 선정했는가’라는 의문이 있지.”     


삼신할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마라 파피야스 신이 12지신 중에서 마지막 개와 돼지를 모두 자신의 수호신으로 가져가는 바람에, 바리데기 공주님의 마지막 두 딸이 태어나지 못했다는 소문이 있었지.”      



“마라 파피야스 신이요?”

“응, 마신(魔神), 마왕(魔王)으로 불리는 신 말이야.”

“아, 이야기 들은 적 있어요. 천마(天魔)의 왕으로서, 정법(正法)을 해치고 중생이 불도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귀신이라고.”     


놀란 도깨비는 잠시 생각하더니, 삼신할매에게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할매, 원곡동에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원곡동에? 어떤 소문?”

“얼마 전 태고의 요괴들이 깨어난 곳 있잖아요.”

“전래동화 어린이월드?”

“네, 거기 동굴이 그분이 영혼이 안식되어 있는 곳이라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그분? 누구?”

“말씀하신 시왕님들의 엄마인 바리데기 공주님이요."


삼신은 놀란 눈으로 이과장을 보면서 물었다.


"망자의 영혼을 최초로 저승으로 인도하신 바리데기 공주님의 무덤이 전래동화 나라의 동굴에?"

"네, 도서관에 있는 전임 삼신할배의 ‘태고의 빛과 어둠’에도 그 내용이 일부 있습니다.”      


***     


잠시 생각에 잠긴 삼신할매는 이 과장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방금 이야기 한 바리데기 공주에 대한 기록을 내가 볼 수 있을까?”

“그럼요, 도서관의 모든 기록은 할매의 것이니까요. 지금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이 과장은 전임 삼신할배가 꼼꼼하게 기록한 모든 메모가 보관된 도서관으로 종종걸음 쳤다. 그리고는 잠시 후, 먼지가 덮인 두꺼운 낡은 책 여러권을 가져와서 삼신에게 주면서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할매. 점심 맛있게 드세요! 이따가 뵙겠습니다.”      


첫 번째로 잡은 책의 제목은 ‘태고의 빛과 어둠’이었다. 책장을 넘기니 전임 삼신할배가 꼼꼼하게 적어 내려간 내용들이 보였다. 책 내용은 창조신들이 이 세계를 창조할 당시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삼신은 바리데기 공주 기록이 있는 곳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삼신할배의 기록 215 (바리데기 공주)


[1] 바리데기 공주(이하 바리공주)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 영혼들이 사리에 맞게 순환하게 만든 여신이며, 저승을 관장하는 지옥의 시왕들은 모두 바리공주의 자식들이다. 바리공주는 극락과 지옥이 수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최초로 인지하였다.


[2] 바리공주는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고, 강령술(降靈術)을 사용한다. 강령술(降靈術)은 망자의 영혼을 불러오는 주문이며. 사람의 시체나 동물의 사체를 소생시켜서 움직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3] 서역(西域)에서는 네크로멘시라고도 하며, 그들의 언어인 νεκρ(죽은)와 μαντε(예언, 점)를 합친 말로 보인다. 그러나 서역의 네크로멘시는 죽은 자를 한정하여 불러오는 것에 비해, 바리공주의 강령술(降靈術)은 죽은 사람만이 아니라 죽은 적이 없는 존재, 즉 자연의 정령이나 신령도 포함하여 소환할 수 있다.


[4] 바리공주는 오구대왕과 길대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번째 딸로, 아들을 기대했던 부모에 의해 버림을 받지만, 비럭공덕 할아비와 할미가 버려진 바리공주를 발견하고 자신의 수양딸로 삼아 키우게 된다.


[5] 바리공주가 15세 되던 해, 아버지인 오구대왕이 자식을 버린 죄를 받아 불치병이 들게 되었다. 저승에 있는 약수만이 그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안 바리공주는 약수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향한다. 바리공주가 향한 곳은 ‘서천서역국’이며, 그곳은 현재 원곡사 주지스님으로 있는 석가모니, 고다마 싯다르타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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