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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26. 2024

#28 새로운 간판

[소설] 원곡동 쌩닭집-28화-[1부 마지막] 새로운 간판

그날은 분기 마지막 날에 하는 ”원곡동 쌩닭집”의 간판 글씨를 덧쓰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 아저씨는 닭고기를 저장하는 커다란 냉장고에 있던 작은 빨간 통 두 개를 꺼내 가게 밖으로 가지고 나오셨다. 통 안에는 각각 새빨간 피가 마치 물감처럼 찰랑찰랑하게 들어 있었다.  달이 누나도 거들기 위해서 짙은 주황색 머리의 인간 모습을 한 채 옆에 서 있었다. 나는 통 두 개와 붓을 들고 분주히 움직이는 아저씨를 향해 물었다.


“통에 든 게, 그때 이야기를 하셨던 닭피와 당나귀 피인가요?”

“맞아. 이거를 반반 섞어서 사용할 거다.”

“닭 피는 이해 하겠는데, 왜 하필 당나귀 피에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당나귀 가죽이랑 뼈로 아교를 만드는 거랑 관계가 있을까요?”

“당나귀 피는 아교와 같은 역할을 해서 닭 피의 점성을 페인트처럼 만들어주지. 당나귀 피를 섞어야 닭 피가 페인트처럼 간판에 잘 붙는다. 닭 피만 썼다가는 물처럼 모두 흘러내려서 아예 요괴체 글씨가 안 써지거든, 그리고 적당히 흘러내려서 요괴체가 완성되지 않으면 냄새를 맡고 멀리서 오는 요괴와 귀신 손님들이 막상 우리 가게 앞에서 간판 글씨를 못 읽는다. 그래서 닭 피와 당나귀 피의 적절한 배합이 아주 중요하지.”


“요괴체요? 그게 뭔가요? 그리고 적당히 흘러내린다니요?”


“내가 우리 동생에게 아주 쉽게 요괴체를 알려줄게, 잘 봐바.”     


달이 누나는 작은 통에 닭피와 당나귀 피를 반반 섞은 후, 붓을 넣어서 휘저었다. 누가 말하지 않으면 피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통 안의 그것은 마치 빨간 페인트와 색상은 물론 점도도 유사했다. 달이 누나는 얇은 붓에 페인트를 발라 종이 위에 '원곡동'을 쓴 후, 아래에 '쌩닭집'을 나란히 썼다.     


달이 누나는 글씨를 쓴 종이를 들어서 피가 아래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게 했다.


“요렇게 글씨를 페인트로 칠한 후 피가 아래로 흘러내리게 한 뒤에, '원'자와 '쌩' 자를 위에서 아래로 한 줄로 연결되게 하는 게 중요해. 이게 연결되지 않으면 요괴체가 완성되지 않지. 그러면 요괴와 귀신들이 간판을 읽지 못하거든.”


달이 누나는 원자와 쌩자를 연결했다.


“이게 요괴체구나. 쉬운데요? 반드시 한 줄로 연결되어야 하는 거죠? 이렇게.”     


나는 달이 누나에게 붓을 받아서 곡자와 닭자를, 동자와 집자를 연결했다.

   


“눈으로는 쉬워 보이지? 다음번에는 네가 직접 한번 간판에 해 봐, 막상 큰 간판에다가 직접 쓰려면 잘 안될걸? 편의점 재고 정리하고 점심 먹으러 올게."


달이 누나가 편의점 쪽으로 걸어가자 나는 아저씨를 향해 몸을 기울인 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근데 달이누나 요괴 아닌가요? 아닌가? 달걀귀신이니까 귀신인가? 그러면 원래 인간의 글씨가 안 보이는 거 아닌가요? 요괴체가 아니면 글씨를 못 읽는 거 아닌가요?"

"어머님 덕분에 달이는 여기 원곡동에서 인간처럼 초중고를 다녔었다. 거기서 한글을 배웠지."

"아...."

"오늘은 3개월에 한 번 닭가슴살을 사러 오는 손님이 오는 날이다. 손님이 오시기 전에 빨리 작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거기 뒤 창고에서 사다리 좀 가져와 줄래?”     

"3개월에 한 번 닭가슴살을요?"


나는 창고로 가서 사다리를 꺼내와 간판의 구석에 갖다 댔다. 아저씨는 사다리를 올라가시더니 붓을 이용해서 능숙하게 간판의 “원곡동 생닭집" 글씨 위에 덧칠하기 시작했다. 간판 옆을 보니 거미줄이 잔뜩 보였다. 나는 기다란 싸리빗자루를 치켜들면서 말했다.      


“저기 거미줄 보이는데 이 빗자루로 제거할까요?”

“안된다, 동물의 피로 칠한 이 간판엔 곤충들이 많이 꼬이기 때문에 거미요괴 양장점 할매가 특별히 쳐 준 거미줄이다.”

“아 그렇군요,”

“저기 손님 오신다. 얼른 영업 준비하자꾸나.”

“와. 진짜 간판을 덧칠하자마자 손님이 오시네요?”

“나는 손 좀 닦고 사다리를 갖다 두고 오마.”      


간판 덧칠을 마무리한 아저씨는 사다리를 들고 창고로 가셨다.      

***


치켜들었던 싸리빗자루를 내리면서 뒤를 돌아보니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덩치 좋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마치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처럼 우람한 몸과 달리, 얼핏 얼굴만 보면 10살도 안 돼 보이는 꽤나 동안이었다. 꽉 끼는 트레이닝 복 사이로 보이는 그의 팔뚝은 내 허벅지만큼 두꺼웠다.



평생 닭가슴살만 먹으면서 운동을 한 것 같은 그는 귀엽게 코를 벌렁거리며 말했다.      


“어디서 냄새가 나는가 했더니 여기였군요.”  

“아.. 예. 방금 간판을 새로 칠했거든요, (이분도 요괴신가? 뿔은 안 보이니 도깨비는 아닌 것 같고, 그럼 귀신?)”     


나는 스윽 남자가 서 있는 바닥을 바라봤다. 커다란 근육질의 그림자가 있는 것이 귀신도 아닌 듯했다. 안심하고 나서 청년을 바라보니 그는 귀여운 아이처럼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수탉 닭가슴살 있나요?”

“네, 닭가슴살 있습니다. 얼마나 드릴까요? 운동하시고 닭가슴살 많이 드셔서 몸이 좋으신가 봐요?”

“그냥 닭가슴살 말고, '수탉' 닭가슴살 있는지 여쭙는 겁니다.”

“수탉 닭가슴살 이요? 어...”

“설마 수탉 닭가슴살이 없는 겁니까?”

“닭가슴살이 암탉인지 수탉인지 제가 알 수가 없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수탉 가슴살이 없다니요? 이곳 원곡동에서도 우리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겁니까?”     


그는 버럭 화를 내면서 양손으로 자신의 몸을 마구 치기 시작했다.      


***     


그가 양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치니 그의 살이 마치 두부가 으깨지듯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그의 근육 사이로 시뻘건 피가 울컥울컥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에에엑!!!!!!!!!

끼에에에에에에엑!!!!!!!!!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마치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 것과 같은 동물들의 비명소리가 그의 온몸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새어 나온 피들로 인해서 그는 피범벅이 되었고, 거무죽죽한 으깨진 살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었다. 시뻘건 살 안에서는 마치 손톱과 같은 희고 단단한 물질들이 수없이 보였다. 남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몸을 때리면서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의 몸에서는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엑!!!!!!!!!

끼에에에에에에엑!!!!!!!!!     


나는 너무나 놀라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눈을 돌려 슬며시 가게 안을 바라보니 저 멀리 태산검이 보였다. 여차하면 검으로 달려가서 그를 벨 생각이었다.      


“손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수탉 가슴살 바로 드릴게요. 잠시만요.”      


어느새 온 아저씨가 남자를 향해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자 남자는 진정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수탉 닭가슴살 있으면서 왜 없다고 그래요! 수탉도 다 쓸모가 있는 거라니까요.”

“아.. 제가 여기서 일한 지 얼마 안 돼서요.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나는 아저씨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저씨는 왼쪽 냉장고에서 닭가슴살을 꺼내면서 말했다.

 

“얼마나 드릴까요?”

“있는 거 다 주세요, 수탉 닭가슴살.”

“그래요 그럼. 지금 냉장고에 있는 거 모두 다 포장해서 드릴게.”     


나는 아무 말 없이 닭가슴살을 포장하는 아저씨 뒤에 서서 남자를 바라봤다. 여전히 온몸에서 검붉은 피와 살점이 흐물거리고 있던 그는,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보면서 말했다.      


“선생님은 여기서 일해서 좋으시겠어요.”

“네? 아... 예.”

“저는 살고 싶었어요,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고? 그렇다면 지금은 살아 있는 게 아닌가?)     


“혹시 어디에서 오신 건가요? 저기 산너머에 있는 인간이 운영하는 닭농장?”     


아저씨는 산 뒤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닭가슴살을 모두 포장한 아저씨는 그에게 포장된 수탉 닭가슴살을 내밀었다. 그는 포장된 닭고기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 아이들은 행복하게 살다가 갔군요, 우리들과는 다르게.      


청년은 받아 든 닭고기를 가지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아저씨는 나를 바라봤다. 그 순간 무언가 직감한 나는 검은 왼손을 들어서 바라봤다. 그날 내 왼손을 잡고 한 엄마의 말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 아들이 이 손을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구나.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해 주려무나."  

  

“잠시만요.”     


그는 나를 뒤돌아보았다, 나는 그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 꼬옥 껴안았다. 그의 몸에서 흐물거리는 검은 살들과 검붉은 피들, 그리고 마치 손톱과 같은 조각들이 내 옷에 덕지덕지 묻기 시작했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정말로.


"나는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내가 안아주자 그는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 있는 검은 살들이 나의 검은 왼손으로 서서히 흡수되면서 그의 짧았던 전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     


삐약삐약

삐약삐약     


태어난 지 1시간도 안된 수많은 노란 병아리들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란히 앞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 양쪽으로 앉아있는 파란 옷과 파란 비닐 모자를 쓴 병아리 감별사들은 아무 표정 없이 자신의 앞으로 온 병아리를 들어서 자세히 살펴봤다. 그리고는 절반 정도의 병아리들은 왼쪽 바구니에, 나머지 병아리들은 다시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두었다.


반대쪽에서 들어온 다른 직원이 바구니로 옮겨진 병아리들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계속해서 움직이던 컨베이어 벨트의 끝으로 수많은 수탉 병아리들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고 그들은 모두 분쇄기 속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한 줌도 안 되는 고깃덩어리로 바뀌었다. 분쇄기 안에는 오늘 태어난 수많은 생명들의 육체와 영혼과 부리들이 서로 뒤엉키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우람한 몸짓의 그는 병아리 감별사에 의해서 수컷 병아리로 판정된 후, 컨베이어 벨트로 다시 올라간 수탉 병아리였다.  분쇄기 안에서 온몸이 갈라지고 파괴되는 그는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에에엑!!!!!!!!!

끼에에에에에에엑!!!!!!!!!     


떨어지는 다른 수평아리들의 분쇄된 살과 뼈, 날카로운 부리가 그의 몸과 함께 분쇄기 안에서 뒤엉키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떨어진 수평아리들은 모두 으깨진 채, 닭농장 구석의 낡은 냉장고에 보관되고 있었다.  잠시 후 커다란 트럭이 오더니 그 시커먼 살들을 싣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출처> 연합뉴스


***     


이 끔찍한 광경을 본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눈을 떴다. 마치 내 몸이 분쇄기로 갈리는 듯한 고통이 나의 검은 왼손에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 있는 수많은 검은 살과 죽어버린 검은 피를 모두 흡수한 나의 검은 왼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남자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남자의 몸에서 수백 수천 마리의 노란 병아리 떼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저 멀리 삐약삐약 거리면서 푸르른 하늘을 날아가는 수많은 수평아리들이 보였다.    



잠시 후,


병아리들이 모두 하늘로 날아오르자 희미해진 남자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다음 생애에서는 저도 우람한 수탉이 될 수 있겠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희미해진 몸도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달이 누나가 옆으로 와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잘했어. 돌아가신 어머님도 같은 방법으로 억울한 요괴들과 귀신들의 한을 풀어주셨지. 방금 본 아이처럼 예전에는 없던 요괴들이 인간들의 탐욕으로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거 같아."

“그렇구나. 엄마가 좋은 일을 많이 하셨군요, 다음 생애는 꼭 좋은 곳에서 태어나야 할 텐데요. 아!!! 이제야 생각났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저 어렸을 적에는 다 큰 수탉만을 파셨던 거였어요! “

"맞아. 사장님은 매일 아침마다 인간이 운영하는 닭농장을 찾아가서 막 태어난 수탉 병아리들만 골라서 우리 원곡동의 직영 농장으로 데리고 왔지. 모든 수탉 병아리들을 데리고 올 수 없어서 안타까워하시곤 했어."


"그래서 우리 '원곡동 쌩닭집' 앞은 늘 수탉들의 울음소리가 났던 거구나."

"요새는 알 상태에서 성별을 확인할 수 있는 기계가 개발된 모양이더라. 아직 비싸서 많이 사용하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곧 다들 그 기계를 사용하면 오늘과 같은 아이는 다시 나오지 않겠지."


달이 누나는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늘 배달 있다고 하지 않았니?"

"네. 저기 양장점에서 당나귀 고기와 가죽을 주문했어요. 지금 출발해야 겠네요.“

"거미요괴 양장할매는 3년간 잘 숙성돼서 흐물흐물해진 당나귀 고기와 가죽만 빨아먹지. 그래야 엉덩이에서 거미줄이 매끈하게 잘 나온다나 뭐라나..“

"네에?"


꼬끼오 ~~~


달이누나와 나는 소리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 높이 멀어지는 병아리들의 뒤로 커다란 수탉 한 마리가 우렁차게 소리를 내면서 날아가고 있었다.



원곡동 생닭집 (1부) - 1부 끝 (브런치북에 게시할 수 있는 회차 제한으로 2부로 분리하여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wongo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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