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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26. 2024

#27 수열(獸裂)과 귀괴(鬼怪)

[소설] 원곡동 쌩닭집-27화-전래동화 나라 ⑧ 그림자

삼신할매는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서 중얼거렸다.      


‘아. 이렇게 해서 바리공주가 지옥에 계시는 열 명의 시왕님들을 낳게 된 거구나. 그런데 여기에 있는 마지막 내용들은 뭐지?’        

               

[6] 남자 행색을 하고 무쇠 두루마기와 신발, 지팡이를 들고 약을 구하러 저승에 도착한 바리공주는 약수를 지키는 무장승을 만나 10년간 일을 한 후, 무장승과 결혼하여 일곱 아들과 세 명의 딸을 낳은 후 비로소 약수를 얻어 아버지를 살린다.


[7] 바리공주가 저승의 약수를 얻어 부모를 살린 것을 알게 된 마고할망은 바리공주를 수양딸로 삼았다. 그 후 마고할망은 망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고 그 죄를 12가지 지옥에서 심판하는 것을 포함한 능력을 바리공주에게 모두 물려주고 자신은 하늘의 별로 돌아갔다.


[8] 마고할망으로부터 지옥의 12가지 능력을 물려받은 바리공주의 힘이 점점 커지자, 옥황상제가 이를 염려하였고, 이를 눈치챈 바리공주는 마고할미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지옥의 힘을 12개로 나눈 후, 자신의 아들과 딸들에게 하나씩 물려주고 마고할망과 같이 하늘의 별로 돌아갔다.


[9] 나는 바리공주와 무장승 사이에 총 열두 명의 자식 (남 7, 여 5)을 점 지어 줬으나, 실제 바리공주는 열 명의 자식을 낳았다. (남 7, 여 3). 사라진 2명의 바리공주의 여식 둘의 영혼을 찾기 위해서 백방으로 수천 년간 노력하였지만, 나는 결국 찾지 못하였다.


[10] 내가 점 지었으나 태어나지 못한 바리공주의 두 딸 이름은 수열(獸裂) 귀괴(鬼怪)다. 이들이 태어났다면 지옥의 마지막 열한 번째 시왕인 수열대왕(獸裂大王)과 열두 번째 시왕인 귀괴대왕(鬼怪大王)이 되어서 지옥과 극락의 윤회 시스템이 완성되었을 것이다.


[11] 마라 파피야스가 이 일에 관여되었고, 전래동화 어린이월드에 바리데기 공주와 태어나지 못한 두 명 시왕의 영혼이 떠돌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안타깝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날까지 진실을 알 수 없다.




‘음.. 수열(獸裂)이라 하면, ‘짐승 수(獸)’, ‘찢어질 렬(裂)’ 자를 썼으니 동물에게 갈기갈기 찢기는 지옥일 테고, 귀괴(鬼怪)는 ‘귀신 귀(鬼)’, ‘괴이할 괴(怪)’를 썼으니 귀신과 요괴들에게 둘러 쌓여서 고통스럽게 죽는 지옥을 의미하는 건가?      


이런 지옥은 존재하지도 않고, 그동안 듣도 보도 못했는데.. 전임 삼신 선생님이 점 지어주신 바리공주의 두 딸이 마라 파피야스 신의 계략으로 태어나지 못해서 수열(獸裂)과 귀괴(鬼怪) 지옥이 만들어지지 않은 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삼신할매는 다시 중얼거렸다.     


”이따가 도서관을 더 뒤져 봐야겠군.”     


삼신은 전임 삼힌할배 부부가 남긴 기록을 처음부터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그 시각     


아무도 없는 [귀신과 요괴의 집] 앞에 검은 웜홀이 나타나더니 마왕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의 안으로 들어간 마왕은 커다란 바리케이드를 쳐 놓은 또 다른 커다란 동굴로 향하는 입구 앞으로 걸어갔다.      


동굴이 만들어진 이래로 아무도 들어간 적이 없을 정도로 견고하게 쳐져 있는 바리케이드 앞에서 그는 자신의 검은 왼손을 들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마왕은 잠시 태곳적 오래전 생각에 잠겼다.    

 


***     


열 번째 오도전륜의 출산일을 하루 남겨두고, 바리데기 공주는 첫째 진광(秦廣)부터 아홉째인 도시(都市)까지 그동안 자신이 낳은 자식들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바리데기 공주는 이제 막 1살이 지난 막내를 품에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일 출산 예정인 커다란 배를 어루만지면서 자식들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너희들의 마지막 세 명의 동생을 내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옥황상제님이 점 지어 주신 12 지신 중에서 마지막 3명의 신인 닭과 개와 돼지의 신이 우리 막내들을 보호해 줄 것이다.”      

“어머님, 방금 세 명의 동생이라 하셨습니까?”     


첫째 진광이 물었다.     

 

“그렇다. 내일 태어날 아이는 모두 세 명의 쌍둥이 여아들로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 수열대왕(獸裂大王), 귀괴대왕(鬼怪大王)이라 불려질 것이고, 할머니인 마고할망으로부터 내가 받은 능력 중에서 마지막 남은 능력인 영원한 어둠의 공간을 다스리는 능력, 동물을 다스리는 능력, 귀신과 요괴를 다스리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날 것이다. 그 후에 이 어미는....”     


말을 멈추고 바리데기 공주는 자식들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말을 다시 이었다.     


“그 후에 이 어미는 내일 태어날 막내들이 20살이 되는 해가 오면 하늘의 별이 되고자 한다.”     


***     


생각보다 하루 빠르게 바리데기 공주의 산통이 시작되었고, 시녀들은 바삐 움직였다. 잠시 후, 바리데기 공주가 산통을 겪으면서 누워있는 방에서 갓난아이 울음소리가 커다랗게 들렸다. 그런데 아이의 울음소리는 세 명이 아닌 한 명의 울음소리였다. 시녀 한 명이 오도전륜을 안고 급히 밖으로 나왔다. 그 후로도 한참 시간이 흘렀지만 나머지 두 아이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방 안에서 시녀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산파들이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많은 하혈로 정신이 혼미해진 바리데기 공주는 마지막 힘을 짜내서 자신의 하반신을 바라보았다. 건강한 두 명의 아기가 있어야 할 그곳에는, 검붉은 색의 커다란 자궁덩어리가 보였다. 자궁 안에는 두 명의 아이가 있었고 목이 꺽인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바리데기 공주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방금 전까지 자신의 몸의 일부였던 자궁과 그 안에서 꿈틀거렸던 두 명의 막내를 안고 울부짖었다.      


***     


그날, 오도전륜을 포함한 다른 두 명의 동생들은 함께 엄마 바리데기 공주의 자궁 안에서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세 쌍둥이 중에서 가장 맏이인 오도전륜의 귀에 엄마 바리데기가 하는 말이 들렸다.      


이제 너희들의 마지막 세 명의 동생을 내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옥황상제님이 점 지어 주신 12 지신 중에서 마지막 3명의 신인 닭과 개와 돼지의 신이 우리 막내들을 보호해 줄 것이다.      


자궁 안에서 엄마의 말을 들은 오도전륜 앞으로 마왕의 검은 왼손이 보이더니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동생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첫 번째 쌍둥이 동생인 수열(獸裂)의 목이 꺾이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마왕의 검은 왼손은 이번에는 막내인 귀괴(鬼怪)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잠시 자궁의 흔들림 뒤에 검은손은 두 번째 동생의 목을 잡아 툭 하고 꺾었다.  아직 살아있는 오도전륜은 위험을 느끼고 자궁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마왕의 검은 왼손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마왕의 검은 왼손은 마지막으로 오도전륜의 목을 잡더니 꺾기 직전이었다.  마왕의 검은 왼손은 얇디 얇은 오도전륜의 목을 잡고는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 바리데기 공주는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기절했다. 자궁 속의 오도전륜은 마왕의 검은 왼손을 피하고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자궁이 터지기 시작했고, 엄마 바리데기 공주는 고통으로 신음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오도전륜이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세상으로 나왔고, 잠시 후 두 명의 쌍둥이 동생은 바리데기 공주의 쏟아진 자궁 안에서 목이 꺾여 움직이지 않은 채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     


다시 현재,     

 

[귀신과 요괴의 집] 동굴의 안에서 커다란 바리케이드를 쳐 놓은 또 다른 커다란 동굴로 들어간 마왕은 벽을 더듬더니 검은손으로 밀기 시작했다. 밀린 벽 사이로 작은 틈이 보였고, 안으로 들어간 마왕의 앞에는 작은 무덤 두 개가 보였다. 무덤에 새겨진 비석의 묘비명은 각각 수열대왕(獸裂大王)과 귀괴대왕(鬼怪大王)이었다. 마왕은 검은 왼손에서 나오는 빛을 묘비에 비추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우리 사랑스러운 두 딸, 이제 세상 구경을 나가봐야지?”     


잠시 후, 동굴을 빠져나가는 남성의 달빛에 비치는 그림자는 세 개였다. 그는 그림자를 보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딸들, 그동안 좀 답답했지? 이제 이 아비랑 같이 세상 구경을 나가보자꾸나.”     


잠시 후 아무도 없는 [귀신과 요괴의 집] 입구에서 검은 웜홀을 불러낸 마왕은 세 개의 그림자와 함께 검붉은 웜홀 안으로 사라졌다. 작아지는 웜홀 안에서 마왕의 검은 왼손이 더욱더 선명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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