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학소년 Aug 31. 2024

두씨 할아버지 통번역 공증센터

[소설] 원곡동 쌩닭집-56화-두씨 할아버지 통번역 공증센터

우리 원곡동 쌩닭집에서 가장 가까운 무인 편의점의 달이 누나에 대해서는 전에 수차례 이야기 한 바가 있으니 넘어가고, 오늘은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통번역 공증]을 운영하시는 두씨 할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겠다.


https://brunch.co.kr/@ksbuem/490


두씨 할아버지의 [통번역 공증] 가게는 우리 집에서 대각선 방향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그날, 주문하신 닭고기를 가지고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두씨 할아버지는 백발의 머리에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고 책상보다 큰 커다란 고목나무 원목의자에 앉아 계셨었다. 할아버지는 의자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오면서 크윽크윽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어서 와. 크윽크윽"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주문하신 닭고기입니다.“

"땡큐. 그나저나 자네 엄마랑 나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지."

"아, 그렇군요."

"자네 엄마는 모든 요괴와 귀신들의 언어에 능통했는데 단 하나, 취어를 잘 못하셨거든, 그럴 때마다 나를 찾아서 통번역을 의뢰했지, 전문직이라는 타이틀을 괜히 간판에 적어 놓겠어? 크윽크윽."

"취어요? 그게 뭔가요?"

"잉? 자네도 엄마 닮아서 취어를 잘 못하나 보군, 이렇게 臭 '냄새 취'라는 한자를 사용하고 '냄새'로 소통하는 언어를 뜻하지."


두 씨 할아버지는 펜으로 앞에 놓인 종이에 한자로 臭 '냄새 취' 자를 써서 나에게 보여줬다.


"일부 요괴와 귀신들은 입이 없어서 말을 못하거든. 그래서 냄새로 의사소통을 하지. 그들이 사용하는 냄새 언어가 바로 '취어(臭)'고 내가 이곳 원곡동에서 가장 잘하지. 아, 마침 저기 오네. 크윽크윽."


두 씨 할아버지가 가리키는 문을 바라보니 전에 전래동화 월드에서 말없이 스윽 지나갔던 입과 코가 보이지 않는 파란 외눈박이 요괴가 스물스물 문을 통해서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몸을 기울이더니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저 푸르딩딩한 놈이 주로 취어를 사용하지. 눈을 감고 자네의 온 신경을 코에 집중해서 저놈의 냄새를 맡아보게."   



***


나는 눈을 감고 온 신경을 코에 쏟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외눈박이 요괴는 아무 말 없이 할아버지 앞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대뜸 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안돼!!!"


그 순간 내가 좋아하는 박하향기가 났다. 달콤한 아카시아 향기와 박하향기가 겹쳐지더니, 청량한 솔잎 향으로 바뀌었다. 콧구멍을 한껏 벌리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할아버지는 다시 소리를 쳤다.


"안된다니까!! 몇 번을 말하게 하는 거야!! 내가 땅 파먹고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 나가!!!"


순간 솔잎향기가 사라지더니 썩은 취두부 냄새가 났다. 평소 취두부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욱! 하는 소리를 내면서 눈을 떴다.


문을 보니 외눈박이 요괴가 가게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흥분된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미묘한 냄새의 변화가 느껴졌어요. 처음에는 옅은 박하향에서 달콤한 아카시아 향기와 박하향기가 겹쳐지더니, 마음속까지 청량해지는 솔잎 향으로 바뀌었다가 마지막에는 썩은 취두부 냄새가 났어요. 이게 바로 요괴들이 냄새로 말을 하는 취어군요. 이제 좀 알 거 같아요."


두 씨 할아버지는 손을 들어 안경을 치켜들더니 말했다.


"크윽크윽. 자네는 엄마와 달리 후각이 좋군. 공부를 조금만 하면 취어를 잘할 수 있겠구먼."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분은 뭐라고 한 거예요?"

"얼마 전에 돈 좀 빌려줬는데 변제 기일을 늦춰달라고 하길래 내가 안된다고 버럭 소리를 지른 거지. 저놈들 이곳 원곡동에서 땀을 팔아서 가장 쉽게 돈을 버는 놈들인데 왜 열심히 일을 안하는지 몰라. 나 같으면 매일 운동해서 땀 흘려 돈 벌겠다. 에잉..쯧."  


요괴가 원곡동에 땀을 판다는 말을듣고 깜짝 놀란 나는 할아버지에게 다시 물었다.


"땀을 판다구요?"


"저놈들이 일하거나 운동 할 때 흘리는 땀은 아주 청량한 향기가 나지. 저기 퍼품샵 미스터스가 가장 좋아하는 향이고 비싼 값에 100% 매입해주거든. 특히 저놈들이 매운 음식을 먹을 때 흘리는 땀은 미스터스가 아주 환장하지. 매운 후추향이 살짝 나는 올드스파이스 같은 향기를 만들 수 있다나 뭐라나, 반면, 빈둥빈둥 놀면서 흘리는 땀은 쓰레기 냄새가 나지."

"그렇구나. 취어라는 게 어렵네요. 그런데 아까 저분에게서 줄곳 박하향과 아카시아, 솔잎과 같은 좋은 향기가 나다가 마지막에 썩은 취두부 냄새로 확 바뀌던데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화를 내면 박하향이 취두부 냄새로 바뀌는 건가요?"


두 씨 할아버지는 나를 스윽 쳐다보더니 크윽크윽 거리면서 답변했다.


"내가 오늘 점심에 취두부를 곁들인 우렁이 찜을 먹었거든. 크윽크윽."


순간, 할아버지의 입에서 방금 맡은 취두부 냄새가 물신 풍겨나왔다.


"아..."

"그놈들은 보기와는 달리 항상 좋은 냄새로 대화하는 놈들이지. 가끔 돈 빌리고 안 갚곤 하지만 나쁘지 않아. 정 안 갚으면 쫒아가서 저놈들이 도망가면서 바닥에 흘리는 구슬땀을 주워 팔면 되니까. 오히려 그게 더 남는 장사지. 크윽크윽."

"구슬땀을 주워서 판다구요?"


내가 놀란 눈으로 두 씨 할아버지를 바라보자, 할아버지는 책상 위에 놓인 유리컵을 손으로 가리켰다. 유리컵 안에는 알록달록 다양한 색상의 구슬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게 바로 저놈들이 흘리는 구슬땀이지. 저놈들은 감정에 따라 각기 다른 색상의 구슬땀을 흘리거든,"

"와. 신기하네요."



내가 손을 내밀어 구슬 중에서 진한 황토색의 구슬을 집어드니,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면서 내 손을 잡았다.


"어어. 그거 터지면 큰일 나. 그건 그놈들이 화장실에서 큰 일 볼 때 변비 때문에 고생하면서 흘리는 구슬땀이야. 그놈들 똥 냄새는 아주 지독해."

"앗..네. 큰일날 뻔 했네요.“


나는 집었던 붉은 구슬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


"아 참, 먹다 남은 우렁이 취두부 찜이 있는데 좀 먹을 텐가?"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 그런데 구슬땀의 색상이 다양한 것을 보니, 취어는 아까 그 파란 요괴분처럼 좋은 냄새만 항상 있는 건 아니군요."

"당연하지, 찌렁내가 진동하는 취어(臭)를 사용하는 놈도 있거든, 그놈들 통번역 단가는 오늘 본 파란놈보다는 좀 쎄지."

"아, 냄새에 따라서 통번역 비용이 달라지는구나.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잘 가고 다음에 통번역이나 공증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오라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들어가."


나는 인사를 하고 나가다가 궁금한 게 생겨 뒤돌아 보면서 물었다.


“저...그런데 아까 그 분, 코도 없으신데 냄새는 어떻게 맡으시는 거에요?“

“아까 그 놈 머리 위 안테나 같은 거 봤지?”

“네, 저희처럼 귀 두개가 있던데요?”

“하나는 코고 하나는 귀야. 그걸로 냄새 맡고 소리도 듣는 거지.“

“아, 그러시구나. 그럼 입은요? 입이 없는데 어떻게 드시는 거에요?”

"개네들은 눈이 입이고, 입이 눈이야. 가운데 달린 커다란 눈으로 보기도 하고 먹기도 하지. 단 그 눈같은 입으로는 말은 못해.”

"와....신기하네요."


나는 다시 인사를 한 후 문을 열고 나갔다. [원곡동 쌩닭집]으로 걸어가다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할아버지는 커다란 두꺼비 얼굴로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두 씨 할아버지에게 다시 넙죽 인사를하고 가게로 향했다.

 



■ 이름 : 두 씨 할아버지

■ 타입: 두꺼비 요괴

■ 직업: 통번역 공증 (취어(臭) 전문)

■ 나이: 약 1,000 살 (추정)

■ 특징: 요괴와 귀신, 신과 인간의 언어를 모두 자유자재로 이야기하고 쓸 수 있음

■ 좋아하는 음식: 취두부, 지네, 장수말벌, 지렁이, 우렁이, 땅강아지, 집게벌레, 개미, 지네, 땅벌 (이 중에서 톡 쏘는 맛이 강한 지네를 가장 좋아함), 가끔 주문하는 닭고기는 지네를 잡기 위한 미끼로 사용하고 먹지는 않는다.

■ 좋아하는 향: 취두부 향

■ 취미: 다양한 색상의 외눈박이 요괴 구슬땀 모으기


 




[두씨 할아버지 연대표]         

 

① 1020년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의 지네장터촌 인근 우물에서 출생. 지네장터촌은 마을 뒤쪽 성황당의 지네신에게 해마다 18살 먹은 처녀를 제물(먹이)로 바쳐야 하는 풍습이 있음.

    

② 1325년 '간난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살고 있는 초가집 부뚜막으로 이사함. 그동안 톡 쏘는 맛이 있는 왕지네와 장수말벌 위주로 먹어서 독에 대한 내성이 매우 강해졌으며, 이미 300 살이 넘는 영물로 입에서 파란 불이 나오게 되었음.


③ 1325년 ~ 1330년 ‘간난이’로부터 매일 밥을 얻어먹고 탄수화물의 영향으로 재떨이보다 더 크게 자람.


④ 1330년 ‘간난이’가 지네신에게 가는 제물로 뽑히게 됨. 두씨 할아버지(당시 총각)는 몰래 ‘간난이’의 치마폭에 숨어 들어가서 같이 따라감. 지네신이 나타나 간난이를 먹으려는데, 두씨 할아버지가 밤새도록 파란 불을 뿜어서 빨간 불을 뿜는 지네와 사투를 벌임. 이날, 두씨 할아버지는 지네신의 독을 다량으로 섭취 후 죽어서 두꺼비 요괴가 됨.     


⑤ 1331년 지네장터 사람들은 두꺼비의 넋을 위로했으며 마을에는 더 이상 지네의 피해는 없어졌고 이후에 이 사실이 임금님의 귀에도 전해지며 사람을 재물로 바치는 악습도 국법으로 완전히 없어짐.     


⑥ 1332년 요괴로 변한 두씨 할아버지와 ‘간난이’가 혼례를 올림     


⑦ 1400년 백년해로 뒤, ‘간난이’ 사망.


그 후, 두씨 할아버지 홀로 현재까지 독수공방 중. 긴 세월동안 요괴와 귀신. 신은 물론 모든 인간들의 언어를 공부해서 원곡동 유일의 취어(臭語) 전문가가 되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