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55화-원곡동 지도와 시장 상인들
내가 새롭게 터전을 마련한 이곳 원곡동은 [원곡시장]을 중심으로 한 매우 단순한 구조의 동네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새로운 일터인 "원곡동 쌩닭집" 사거리 건너편이 부모님과 같이 살던 작은 나의 집이다. 쌩닭집 앞에는 달이 누나가 운영하는 무인 편의점이 있고, 우리 집에서 대각선 방향 건너편에는 [통번역 공증]이 있다.
대체 누가 이곳 원곡동에서 번역과 공증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주인장 두씨 할아버지는 항상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고 코를 킁킁대면서 커다란 고목나무 원목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계셨는데, 대충 봐도 백 살은 넘어 보였다.
쌩닭집과 편의점 사이 10미터가 채 안되는 작은 도로를 이곳 사람들은 '원곡시장 골목'으로 불렀다.
머리를 깎기도 하고 길러주기도 하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고려인 아저씨가 운영하는 이발소와, 그 뒤로는 철물점을 같이 겸하고 있는 원곡 노인정이 우리 쌩닭집 바로 옆에 위치해있다.
그 옆으로는 세상에서 닭볶음탕을 가장 맛있게 하는 기사식당 (간판은 이전 가계였던 백반집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청이네 떡집에서 매일 받아오는 세상 쫄깃하고 두툼한 가래떡과 맛있게 매운 맛이 특징인 토선생 떡볶이가게, 얼마 전 철이 누님의 두 딸들이 신장 개업한 요괴 치킨집, 푸짐한 생크림과 땅콩가루가 특징인 고려 맘모스 빵집, 베지테리안(Vegetarian) 돈사장님이 원곡시장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운영해 왔다는 복덕방, 잘록한 허리의 거미요괴 김 씨 할머니가 운영하는 양장점, 수많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24시간 운동을 하느라 북적이는 튼튼 체육관이 나란히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꽤 큰 규모의 청이네 떡집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백반집] 이라고 커다랗게 써 있는 기사식당은 전국적인 맛집이라서 1년 365일 내내, 그 앞에 차를 주차 하고 식사를 하시는 요괴와 귀신은 물론 인간과 도깨비 택시 드라이버 분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곳은 닭볶음탕으로 워낙 유명한 맛집인지라 일반 손님들도 굉장히 많이 방문하고 있다. 사장님의 철칙은 '간판 바꿀 돈으로 손님들에게 더 맛있는 닭볶음탕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기 때문에, 가게 곳곳 인테리어 변경 없이 조선시대부터 운영해 왔다는 원곡동 주막의 원형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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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편에는 곧 개업 예정이라서 한창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중인 헬레네 코스메틱, 커피와 쌍화탕을 시키면 맛있는 빠다(이 곳 주인장은 버터를 반드시 빠다라고 불러야 알아듣는다.)를 발라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를 공짜로 주는 서천 커피샵, 멋쟁이 미스타스가 운영하는 향기로운 퍼퓸샵, 두 명의 사이좋은 자매가 운영하는 홍련이네 장화신발가게, 키가 거의 2m 에 달하는 주인장이 눈에 띄는 거제 수산 생선가게, 그리고 내가 주말마다 방문하는 목욕탕이 있다.
일부 공실이 있지만, 원곡동 주민센터장을 겸하고 있는 복덕방 돈 씨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이곳 원곡동 시장에서 장사를 해보고자 하는 분들의 문의가 최근 증가했다고 하니, 곧 공실이 모두 없어지고 이곳은 다시 다양한 가게들로 찰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끝에는 엄마가 입원해 계셨던 원곡 요양병원이 있다. 요양병원은 원곡 한의원에서 운영하는, 규모가 꽤 되는 병원이다.
그 뒤로 오래전 이 마을이 들어서기 훨씬 전부터 있었다는 거대한 원곡 교도소와 그 안에는 마치 학교 같은 노란 벽돌 건물이 교도소 왼쪽에 위치해 있다.
동네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면, 집 앞 사거리를 건너 쌩닭집에서 닭과 계란을 조달하는 양계장이 있으며 (사실 이 양계장도 엄마 소유였다), 여기서 서쪽으로는 산을 끼고 있는 거대한 원곡목장이 이어진다. 이곳 목장은 말과 소, 당나귀, 양, 염소와 같은 다양한 가축들이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연사를 할 때까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고즈넉한 원곡사가 나타난다.
원곡사 주지스님이신 석이형(석가모니)의 설법강의를 듣기 위해서 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많은 분들이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리고 길 건너에는 원곡 멀티플렉스와 영화관이 있으며, 이곳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는 주택, 다세대 빌라, 아파트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원곡사에서 한참을 더 가면 삼신할매가 도깨비들과 같이 살고 있다는 도깨비 마을이 있는데, 아직 가보지는 못했다.
아래로는 원곡 공항과 화려한 카지노가 있어서 24시간 내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그 옆으로는 은퇴한 신들의 원로당인 둥글고 큰 판테온이 있고, 어릴 적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자주 방문했던 "전래동화 어린이 월드"가 나란히 있다.
마지막으로 12지신 아이들을 비롯해서 막 깨어난 요괴와 귀신 아이들이 살고 있는 보육원,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가 전래동화 월드 옆의 아름다운 공원안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우리 [원곡동 쌩닭집]과 원곡 시장 가게들의 단골 고객분들이 있다. 이쯤 되면 눈치채셨겠지만 우리 원곡동 쌩닭집의 주요 고객은 인간과 요괴, 귀신, 그리고 신들이다. 비율로 따지자면 요괴손님 50%, 귀신손님 20%, 인간과 도깨비, 신들의 비율이 각각 10% 정도가 될 것 같다. (아무래도 닭고기를 특히 좋아해서 한번에 두 세 마리는 거뜬하게 드시는 요괴분들의 취향이 반영된 듯싶다.)
우리 집은 병아리 때부터 정성스럽게 키워서 잘 자란 수탉, 신선한 방사 유정란을 기반으로 돼지고기와 소고기는 물론, 수많은 요괴와 귀신 고객분들이 가죽과 뼈 맛이 천하 별미라고 극찬한 당나귀와 제주산 조랑말도 같이 취급한다.
아 참, 구미호들이 좋아하는 소와 돼지의 생간도 취급한다. 아니, 요청만 하면 그 어떤 고기의 생간이라도 구해준다. (인간 고기 제외) ”다양한 고객분들의 다양한 수요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원곡동 쌩닭집]이 오랫동안 이곳에서 사랑받고 있는 운영 철칙이다.
가시광선을 100% 흡수하는 검은 왼손을 가지고 태어난 내가, 어떻게 하다가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의 검은손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앞서 상세하게 설명한 바 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wongok
https://brunch.co.kr/brunchbook/wongok2
다음에는 원곡시장 가게주인 분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있을 예정이다. 이곳의 가게 주인들은 대부분 요괴와 귀신들이고 일부 신들이 부업으로 가게를 운영 중이다. (신들은 주로 아르바이트생을 쓰고 있고 월 마감을 할 때나 모습을 드러낸다.)
아 참, 가장 중요한 거를 빼먹었다. 이곳 원곡동의 인간고객들은 이 동네가 TV 속 전설의 고향에서나 보던 요괴와 귀신, 그리고 도깨비는 물론, 자신들이 매일 기도하고 구원을 갈구하던 전지전능한 신들이 같이 살고 있는 동네라는 것을 아직 모른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Ps) 앞으로도 몰라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