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57화-베지테리안, 복덕방 돈사장님 아저(兒猪)씨
돈사장님은 내가 원곡동 쌩닭집에서 근무하기로 결심하고 가장 먼저 만난 분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사장님이 이곳 원곡동 동사무소 소장을 겸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요즘은 '동사무소'가 아닌, '주민센터'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이곳 원곡동은 아직 동사무소라고 불리고 있다. (지나가는 분들에게 주민센터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시장 끝자락에 위치한 '튼튼 체육관'을 알려준다.)
쌩닭집에서 일을 시작한 지 약 1주일 후, 편의점 달이 누나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더니 말했다.
"이제 우리 준이도 원곡동 시장상인이 되었으니, 전입신고를 해야지? 동사무소 아저에게 가서 지금 신고하고 오자."
***
가게를 나와 왼쪽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달이 누나에게 물었다.
"아저요? 아저씨가 아니라?"
"응, 아저."
"왜 아저씨가 아니라 아저에요?"
"예전 제주도에서는 태어나지도 못한 돼지 새끼를 먹는 것이 슬프다고 하면서 ‘슬플 애(哀)’ 자를 써서 애저라고 불렀거든. 임신한 엄마돼지가 죽으면 그 안의 새끼돼지들도 죽을 수밖에 없었지. 당시 큰 재산인 엄마 돼지가 죽어서 그 주인은 얼마나 슬펐겠어. 배는 고프고 그렇다고 죽은 돼지를 버릴 수는 없고... 그걸 먹기 시작한 게 애저의 시초지. 어린 새끼 돼지라 해서 한자로는 아저(兒猪)를 쓰기도 하지. 돈사장이 아저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을 좋아해. 애저는 과거가 생각나서 싫고, 아저씨는 아저씨 같아서 싫다나 뭐라나."
"아저나 아저씨나, 얼마나 어리시길래."
"돈사장은 원곡동 상인 중에서 어린 축에 속해."
"몇 살인데요?"
"300 살 조금 넘었을 걸?"
"300 살이면 누나보다 한 참 어리네요."
"아닌가? 한참도 아니네, 몇 천 살 어리네."
어느덧 우리는 이발소와 떡볶이 가게. 맘모스 빵집을 지나 돈사장님의 동사무소 겸 복덕방 앞에 도착했다. 창문 안으로 바지런히 움직이는 작은 체구의 복덕방 돈사장님이 보였다. 우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 달이 누님 오셨네?"
"여기는 우리 사장님의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 준이야. 전입신고 하러 왔어."
"오, 누님이랑 형님 닮아서 진짜 잘 생겼구나. 어서 와."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키가 약 1m 정도 되는 돈사장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줬다. 둘러보니 동사무소 겸 복덕방은 온갖 서류들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돈사장님은 종이를 뒤지더니 다시 우리 앞으로 왔다.
"신고서류가 모두 세 장인데 나머지 하나가 어디 있는지 못 찾겠네. 일단 알았어. 자네 인적사항은 1998년 생이고 생일은 2월 9일, 전에 살던 곳은 서울시 독광구 독광1동 정육골목 123-11 유성연립 101호 반지하 맞지? 내가 전입신고 잘해 놓을게."
"엇, 제 나이와 생일은 그렇다 쳐도 전에 살던 주소는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우리 원곡동에서 태어난 모든 생명체의 생년월일과 이름, 주소변경은 모두 파악하고 있거든."
"와. 대단하시네요."
"기억력이 좋은 건 내가 채식만 해서 그런 거야. 자네도 채식해. 고기 같은 거 먹지 말고."
"아, 네 알겠습니다."
"암튼 이곳으로 온 거 축하해. 나중에 정리되면 나랑 같이 제주도 고사리해장국이나 같이 먹자고."
"제주도 고사리해장국이요?"
"나는 고기 안 먹어. 영어로는 베지테리안. 고기와 생선, 심지어는 달걀과 우유도 먹지 않는 100% 채식주의자지. 고사리는 채소니까."
"아.. 베지테리안. 저 그런데 제주도 고사리 해장국에 고기랑 고기육수 들어가지 않나요?"
돈 씨 아저씨는 갑자기 헛기침을 하셨다.
"흠흠...."
달이 누나가 내 옆을 툭툭 쳤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초대해 주시면 고사리해장국 먹으러 오겠습니다. 저희 이만 가보겠습니다."
"흠흠... 그나저나 자네 어머님 땅이 있는데 알고 있지?"
"네, 여기 인근에 조금 있다고 들었습니다."
"조금이 아닌데?"
"네?"
"여기 시장 인근은 물론 저~~ 기에 있는 전래동화월드 땅이 어머님 명의야. 해태 그 신노무 시키가 어머님을 어찌나 잘 구슬렸는지, 오랜 기간 거의 공짜 같은 월세를 내고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제 곧 계약 만기가 다가오거든."
"전래동화월드가 어머님 명의라고요?"
"건물과 놀이기구는 해태 그 신노무 시키 꺼고, 땅은 어머님 명의였으니, 이제 자네 거지. 곧 계약 만기 다가오면 내가 알려줄게. 이번에 제대로 월세 받아. 아니면 여차하면 계약 해지해 버리던가. 계약만기 해지 시에는 원상복구 옵션이 있어서 낡은 건물과 놀이기구는 신경 쓸 거 없어. 해태 그 신노무 시키가 다 알아서 지 돈으로 원상복구 해야 하거든."
달이 누나가 나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내가 어머님에게 그렇게 싸게 해 줄 필요 없다고 여러 번 말을 했는데, 어린이 월드라는 좋은 취지로 땅을 사용하겠다는데 어떻게 월세를 비싸게 받냐고 하셨지."
돈사장님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에잉... 쯧... 그 땅이 얼마 짜린데.."
"사장님, 그러면 지금 전래동화월드 월세가 얼마인데요?"
"응? 보증금 1.000만 원에 월 50만 원."
"네에? 제가 전에 살던 독광동 정육골목에 있는 반지하 원룸이 보증금 1,000만 원에 월 50이었는데.... 거기 전래동화월드가 몇 평인데요?"
"128,246 m2 야. 평수로는 38,794.42 평으로 4만 평이 약간 안 돼."
"네에?"
"너 거기 잠실 롯데월드 가봤지?"
"네. 가봤습니다."
"거기랑 똑같은 사이즈의 땅이야. 에잉... 그걸 월세 50만 원에 빌려주다니. 그 땅에 빌딩 올리면 받을 수 있는 보증금과 임대료가 얼만데... 에잉.. 쯧. 거기 지금 그 앞으로 '두라인' 뚫리는 바람에 폭등할 일만 남았구만....“
달이 누나도 아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니까, 50만 원은 좀 심했지. 우리 언니가 요괴와 귀신, 도깨비 아이들을 어찌나 좋아했는지... 아이들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하셨거든. 준아, 곧 계약 만기 되면 제대로 계약 변경하는 게 좋겠다."
"해야지 해야지. 변경해야지. 해태 그 신노무 시키가 그렇게 싸게 땅을 사용하면 입장료라도 싸게 받아야 하는데. 거기 부부가 욕심은 많아가지고.... 암튼 이번에 만기 되면 계약 변경하든 취소하든 하는 걸로 하자고. 계약 취소하면 빌딩 높게 올릴 수 있게 공사할 수 있는 애들 미리 이야기해 놓을게. 그 땅 용적률과 건폐율이 아주 좋아. 잘만 하면 100층도 올릴 수 있어, 원곡 공항이랑 원곡 카지노가 멀지 않아서 거기에 호텔 들어오면 장사 아주 잘될 거야."
돈사장은 달이 누나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놀란 눈으로 달이 누나와 복덕방 돈사장님을 번갈아 바라봤다.
잠시 후,
돈 사장님은 별이 누나에게 다가가더니 귓속말로 무언가 조용히 이야기 헸고,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OK , 알았어 돈사장. 잘 배달해 줄게. 다음에 봐."
"네, 들어가세요. 달이 누님."
"감사합니다. 사장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나는 달이누나와 함께 복덕방을 나오면서 인사했다. 쌩닭집으로 걸어오면서 누나를 보면서 물었다.
"아까 돈사장님이 누나에게 귓속말로 이야기하던데요?"
"아. 주문한 거 확인한 거야."
"뭘 주문하셨길래?"
"말린 닭껍질."
"네? 말린 닭껍질이요? 그건 왜요?"
"베지테리안 돈사장은 잘 말린 닭껍질을 기름에 튀겨서 과자처럼 먹는 걸 좋아하거든."
"베지테리안... 아, 저 기억났어요. 예전에 유튜브에서 제주도 애저회에 대해서 본 적이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태어나지 않은 새끼돼지를 그대로 갈아서 먹는 건 좀 잔인하던데..."
"글쎄. 어느 나라던 그 나라와 지역만의 고유 음식 습성이 있는 거지. 그 문화를 무조건 색안경을 쓰고 보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건 아닌 거 같아. 애저회의 경우에도 어미돼지를 일부러 죽인 건 아니니까. 어미돼지는 이미 죽었고, 그 안의 새끼들은 살기 힘들어 보이고, 그 상황에서 평소 신선한 고기와 단백질을 구하기 힘들었던 제주도 사람들이 선택한 방법이지. 지금은 거의 안 먹기도 하고. 난 오히려 오르톨랑(Ortolan)이 더 잔인한데?"
"오르톨랑이 뭐예요?"
"궁금하면 인터넷 뒤져봐, 푸아그라 만드는 방법보다 그 오르톨랑 요리를 만드는 방법이 더 잔인해서 내 입으로는 말 못 하겠다. 현재 그 새를 잡거나 요리하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금지되었지만 몰래 암암리에 먹고 있지. 오죽하면 오르톨랑을 탐닉하며 식욕에 빠진 부끄러운 모습을 신에게 들키지 않고자 흰 천을 뒤집어 쓰고 먹겠어?"
'그렇구나....그런데, 누나, 아까 돈사장님이 이야기 한 '두라인'이 뭐에요? 두리안 처럼 먹는 건가?"
"아, 원곡동에 사는 두더지 요괴들이 이번에 지하철 뜷었어. 곧 전래동화월드 앞에 [전래동화 월드] 지하철 역 개통 예정이야. 그거 때문에 거기 땅값 이미 많이 올랐는데, 요새 또 들썩들썩 하는 거 같더라고. 우리 준이 부자 되어서 좋겠네?"
■ 이름 : 돈사장
■ 타입: 애저 요괴 (돼지가 새끼를 아직 출산하지 않은 경우, 뱃속의 돼지를 애저라고 함)
■ 직업: 원곡동 동사무소 소장 겸 복덕방 사장
■ 나이: 약 300 살 (이곳 원곡동 상인 중에서 가장 어린 축에 속함)
■ 특징: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 뱃속에서 죽어 요괴가 되어서 그런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초동안과 하얀 피부, 탁월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고기와 생선, 심지어는 달걀과 우유도 먹지 않는 100% 채식주의자 (라고 하지만, 즐겨 먹는 고사리 해장국에는 고기가 들어가고, 닭껍질 튀김을 감자튀김이라 우기면서 먹는다.)
■ 좋아하는 음식: 제주도 고사리 해장국
■ 좋아하는 향: 트러플 향 (국산 트러플이 비싸서, 수입산 트러플을 주로 먹고 있음.)
■ 취미: 원곡동 사람들의 주민등록 주소와 부동산 등기부등본 변경사항 달달달 암기하기
[돈사장님 연대표]
① 1710년 제주관아 돈사에서 잉태 (엄밀하게 말하면 돼지 엄마가 임신한 상태였음)
② 1710년 돼지 엄마가 임신을 한 상태로 죽는 바람에 당시 아직 뱃속에 있던 돈사장도 형제들과 같이 사망함. 제주관아 사람들이 엄마 돼지의 배를 갈라 꿈틀대는 돈사장의 동생을 그대로 칼로 썰어 죽처럼 만든 후, 애저회로 먹음. 돈사장은 동생이 죽는 것을 보고 도망쳐서 극적으로 요괴가 되었음.
③ 1893년(고종 30년) 어린아이의 형태로 변한 돈사장은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한양으로 와서 복덕방을 시작함. 뛰어난 암기력으로 조선시대 어려운 시험 중 하나인 거간(居間) 시험에 한 번에 합격함. 시험 합격 후, 원곡동에 자리를 잡고 살아옴. 돈사장은 당시 받은 자격증 사본을 자랑스럽게 가게 내부에 걸어놓고 손님들에게 자랑하는 버릇이 있음.
(참고1) 거간(居間), 또는 가쾌(家儈)는 조선시대 거간은 타인들 간의 각종 상품이나 토지·가옥의 매매·임대·전당(典當), 또는 사금융의 알선이나 흥정을 붙이는 오늘날의 중개업자였음.
(참고2) 1893년(고종 30)부터 가옥 거래 시 공증을 공식화하면서,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가쾌(家儈)’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조선 시대의 '가쾌'제도는 한양과 인근에만 존재했고, 지방에는 없었다.
(참고3) 오르톨랑 요리 만들고 먹는 법 - 오르톨랑 이라는 작은 멧새를 잡은 후 빛이 들어오지 않는 상자에 가둬 3~4주 동안 맛있는 먹이만 먹여 살을 찌운다. 살이 알맞게 오르면 브랜디의 일종인 아르마냑에 산 채로 익사시킨 후 깃털을 모조리 뽑고 6~8분 가량 오븐에서 구워낸다. 먹을 땐 머리를 손으로 잡고 다리부터 머리만 남긴 채 통째로 입에 넣는다. 큰 뼈는 뱉어 가며 천천히 잔뼈와 근육, 내장을 씹어 먹는데, (술고문으로 채워진) 완두콩만한 폐와 위를 씹었을 때 터져 나오는 아르마냑의 달콤함에서 절정에 이른다고 한다. (출처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