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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Sep 02. 2024

양장점 김씨할매의 태평천국 Espresso

[소설] 원곡동 쌩닭집-58-양장점 김씨할매의 Espresso 한잔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곳 원곡동에서 양장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씨 할매는 거미요괴다. 즉 머나먼 옛날에 거미로 태어났다가 요괴가 되었다는 건데.....예전에 이과장이 수선을 맡긴 도깨비감투를 찾기 위해 원곡동에 왔을때 같이 양장점에 방문했는데 그분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할매라기 보다는 관리를 굉장히 잘하신 예술인 같은 느낌이었다.


그날, 이 과장과 나는 조심스럽게 boutique 라고 써 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양장점 안은 어두컴컴했다. 이 과장은 몸을 낮추고 보이지 않는 어둠을 향해서 인사했다.


"도깨비감투 찾으러 왔습니다. 으어엇!!!"


사방에서 투명하고 얇은 거미줄이 무수히 바람에 날려오더니 우리 둘을 감싸기 시작했다. 당황한 우리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거미줄은 계속 날아왔고 급기야 우리는 누에고치와 같이 하얀 실로 둘둘 말린 형태가 되었다.


나는 나란히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과장을 향해 소리쳤다.


"이과장님, 어케 좀 해봐요."

"어케 뭘 해요.“

“이제 우리는 여기서 거미 요괴에게 체액을 빨려서 말라죽는 건가요?"

"저 거미들에게 체액을 쪽쪽 빨려도 며칠은 괜찮을 겁니다. 잡은 먹이는 한달 정도 살려두면서 살아있는 상태로만 쪽쪽 빨아먹는 애들이거든요. 저는 도깨비니까 이렇게 대롱대롱 매달려서 아무것도 안 먹어도 한달은 너끈히 버틸 거구요. 그쪽은 잘 모르겠지만... 암튼, 한달 안에 달이 누님이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을까요?“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좀 조심하지 않고, 얘들아, 그 줄 좀 치워라.“


어디선가 새끼 거미 수백 마리가 나타나더니 우리를 묶은 거미줄을 치워주고 다시 사라졌다.


***


거미줄로부터 풀려난 우리 앞에는 길고 풍성한 머리에 란제리와 같은 검고 투명한 치마를 입은 날씬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록한 허리로 인해 치마 안의 몸매가 더욱더 두드러지게 보이는 그분은 바로 거미요괴 양장점 할매였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초 동안의 거미요괴 할매를 향해 이과장이 말했다.  


"아이고 할매 감사합니다. 삼신할매가 맡긴 도깨비감투 찾으러 왔습니다요."


이 과장이 거미요괴 양장 할매를 향해서 공손하게 인사했다. 나도 얼떨결에 옆에서 같이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다.


“어서와요.”


할매는 구석에 대롱대롱 매달린 주먹만 한 거미를 향해 이야기했다.


"어이. 거기 불 좀 켜줘, 너무 어둡다."


거미는 벽에 붙어서 쪼르르 움직이더니 스위치로 이동해서 불을 켰다. 집은 어느 양장점과 같이 수많은 옷들로 꽉 차 있었고, 커다란 윈도 쪽에는 인간, 요괴, 귀신, 도깨비 마네킨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우리가 보던 날씬한 체형이 아닌, 평범한 사람과 같은 펑퍼짐한 마네킨이었다. 거미요괴 할매는 검은 색상의 마네킨에게 옷을 입히고 있었다.   



나는 이과장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저, 이과장님"

"네?"

"저 마네킨들이 지금 조금씩 움직이는 거 같지 않아요?"

"당연히 움직이죠. 어디보자, 인간과 도깨비 마네킨은 진짜 인형이고, 할매 앞의 요괴와 귀신 마네킨은 여기 직원들에요."

"......"


"어이, 그동안 잘 지냈지?"


이과장이 손을 흔들어 인사하자, 할매 앞의 목과 팔, 그리고 발이 없는 검은 마네킨이 고개와 허리를 까닥하면서 인사했다,


"애, 움직이지 마라. 옷 아직 다 안 입었잖아. 가만히 좀 있어."


움직이는 검은 마네킨에게 옷을 모두 입힌 거미요괴 할매는 천천히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특이하게도 한쪽 벽은 Espresso bar 처럼 꾸며져 있었다.  



거미요괴 할매가 커피머신 방향으로 걸어가는 동안, 방금 옷을 입힌 검은 마네킨은 바퀴를 이용해서 스으윽~~ 움직이더니 양장점 구석에 있는 마네킨 얼굴과 팔다리를 찾아서 스스로 끼우기 시작했다 (아니, 머리와 팔다리가 움직여서 몸에 붙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잠시 후, 검은 피부의 여성으로 변한 마네킨은 그 옆의 다른 진짜 마네킨의 옷을 다듬으면서 이과장을 향해 말했다.



"오빠 오래간만 이에요. 이따가 시간 되죠? 우리 그동안 못한 수다 좀 떨어요."

"콜!"

"거기 수다 좀 그만 떨고, 창고에 가서 도깨비 감투 가지고 와라. 수선 다 끝났지?"

"그럼요, 사장님,"


풍성한 파마머리에 검은 피부의 마네킨은 웃으면서 창고 방향으로 걸어갔다.




양장 할매는 커다란 은빛 에스프레소 머신 뒤에서 우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리 애가 감투 가지러 갔으니 조금만 기다려. 거기 둘, 기다리는 동안 진하게 에스프레소 한잔 할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 과장은 가지고 온 가방에서 낡은 보온병을 꺼내더니 말했다.


"할매, 저는 카페인 마시면 잠을 못 자서요. 제가 가지고 온 차를 마시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러면 거기 준이만 내가 진하게 에스프레소 한 잔 뽑아 줄게."


드르륵 드르륵


양장할매는 그라인더를 이용해서 갈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용신이 도깨비감투 수선을 위해서 꼬리털을 내주다니, 그거 잘 안주는 양반인데."

"그러게요. 새로 오신 삼신할매가 용신님을 만나서 미팅을 좀 오래 하시더니, 이야기가 잘 되었나봐요.“


양장할매는 이과장과 이런 저런 근황 대화를 하면서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서 검은 원두를 갈고, 갈린 원두를 에스프레소 기계에 넣은 후 커피를 추출했다. 고소하고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 향기가 양장점 안에 가득 찼다. 눈을 감고 코를 벌렁거리자 양장점 할매는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막 뽑은 거라서 진할 거야. 이 과장은 진짜 안 마시려고?"

"네, 저는 둥굴레 차가 더 좋습니다."


이 과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가지고 온 보온병에 든 둥굴레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가지고 온 둥글레 차를 마시면서 이 과장은 나를 보고는 방긋 웃었다. 나도 할머니가 준 에스프레소 잔을 홀짝 마시면서 이 과장을 보고 방긋 웃었다. 에스프레소의 맛과 향기는 놀라웠다. 은은한 자스민 꽃 향이 나는 에스프레소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을세라 빈 잔을 들어 마시자, 양장할매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드셨는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직접 블랜딩 한 거야. 어때. 향 좋지? 한잔 더 줄까?"

"네, 향기가 정말 좋네요. 감사합니다."

"맛있게 마셔주면 내가 더 고맙지."


할머니는 에스프레소 기계 앞으로 가더니 한잔을 더 뽑아서 오셨다. 잔을 받은 내가 홀짝거리면서 마시자 이 과장이 나에게 몸을 기울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입맛에 맞으시나 봐요? 두 잔씩이나 드시고."

"네, 제가 커피를 좋아해서 공부도 좀 했거든요. 이 에스프레소의 맛과 향을 보니 원두가 콜롬비아 블루마운틴 같아요."

"원두가 콜롬비아요? 블루마운틴이요?"

"맛과 향이 틀림없이 콜롬비아 블루마운틴이에요."

"흐흐흐흐흐. 콜롬비아 블루마운틴이요. 으흐흐"


이 과장은 갑자기 나를 보면서 실실 웃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웃으세요?"

"저도 커피 좋아하거든요. 전 ‘예멘모카’ 원두를 좋아해요. 살짝 시큼한 게 산미가 아주 뛰어나죠.“

"네? 그런데 왜 이거 안 드시고?"

"커피면 당연히 제가 먹었죠.“

"네? 그럼... 이건?"


그 순간 양장할매가 탕탕탕 소리를 내면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더 뽑으며 말했다.



"그거는 3년 이상 푹 삭힌 당나귀 고기와 가죽, 뼈를 같이 잘 말린 후, 로스팅해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해 뽑은 당나귀 진액이야. 우리 거미들이 거미줄을 만들기 위해서는 찐득한 아교성분이 풍부한 당나귀 진액이 필수지. 자네가 그 향과 맛을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내가 블랜딩한 태평천국 에스프레소 한잔 더 먹고 가.“


아무 말 못하고 있는 나에게 이과장이 오더니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거미 아닌 존재가 당나귀 진골 에스프레소 저거 한잔만 먹으면 한동안 변비에 시달립니다. 거미들의 엉덩이에서 나오는 그 줄이 괜히 쫀쫀한 게 아니죠. 거미요괴 할매도 평생 변비때문에 고생했으니까요. 지금 1년 동안 화장실을 못가서 좀 예민하신 상태에요."

"1년 동안 화장실을 못 갔다고요?"

"네, 하루 3잔씩 꼬박 태평천국인가 뭔가 하는 당나귀 진골 에스프레소를 챙겨드시니 화장실을 못 가실만 하죠. 그나저나 이준님 지금 세 잔째죠? 이따가 약국가서 변비약 꼭 챙겨드세요."  


잠시 후, 양장할매는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을 더 뽑아서 내 앞으로 가져다주면서 말했다.


"이건 내가 특별히 블랜딩한 '태평천국' 당나귀 진골 에스프레소야. 먹으면 속이 편해진다고 해서 '태평천국' 이라는 이름을 붙었지. 내 아들이 세웠던 나라 이름을 딴 거는 아니야. 아 참, 블루마운틴은 콜롬비아가 아닌, 자메이카의 브랜드야. 너 커피 공부한 거 맞니?"





■ 이름 : 김씨할매

■ 타입: 거미 요괴

■ 직업: 원곡동 양장점 주인 (인간, 요괴, 귀신, 심지어 도깨비 옷까지 모든 종류의 옷 수선이 가능)

■ 나이: ? (딱 봐도 나이 많아 보이지만, 절대 안 알려줌)

■ 특징: 허리 20인치의 글래머 몸매로 거미줄은 자신이 직접 만들지 않고, 집 안에 같이 살고 있는 수백 마리에 달하는 거미들이 생산하는 거미줄로 원단을 만들고 옷을 수선한다.

■ 좋아하는 음식: 3년 이상 푹 삭힌 당나귀 고기와 가죽, 뼈를 같이 로스팅한 후, 갈아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해서 진액을 뽑아먹는 걸 특히 좋아함 (그 향기와 맛은 거의 커피 에스프레소와 비슷함)

■ 좋아하는 향: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커피 향 ("커피의 귀부인" 이라는 칭호로 과실향이 풍부하고, 레몬이나 감귤류의 시트러스 한 산미를 가지고 있으며, 은은한 자스민과 같은 꽃 향을 가지고 있다.) 퍼품샵의 미스터스가 향수로 만들어준다.

■ 취미: 곤충 박제 (곤충 먹는 걸 좋아하지 않음.)





[양장점 김씨할매 연대표]     


①출생시기 절대 안 알려줌. 거미요괴로 변한 후, 함경북도 성진 광적사(廣積寺)에서 살았음.


②1814년 아들 홍수전(洪秀全)을 낳음 (광적사 주지가 절에 들어온 커다란 거미를 길렀더니 처녀로 변신하고 산중의 못에 사는 붉은 용과 교접하여 향후 청나라의 천자를 낳았다는 전설이 있음.) 임신 하자마자 청나라 광동성으로 이사. 그곳에서 포르투갈 선교사들을 만나 세례를 받고, 독실한 카톨릭 신자가 되었음.


③1851년 아들 홍수전(洪秀全)이 광시성 구이핑현(桂平縣)에서 태평천국을 건국하여, 태평천국의 난 발발함. (태평천국의 난은 1850년에서 1864년까지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대규모 내전이었다.)


④1853년 태평천국 수도를 천경으로 천도.


⑤1856년 천경사변 (天京事變) 발발 - 태평천국의 수도 천경(남경)에서 발생한 태평천국 지도부의 내분


⑥1864년 아들 홍수전(洪秀全)의 사망으로 태평천국 멸망, 아들의 죽음 후 거미요괴 할매는 대만을 거쳐 자신의 고향인 조선으로 와서 살아옴. 틈틈이 커피와 관련한 여행을 다녔으며, 전 세계 커피 산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게 되었다.


⑦2000년 거미요괴 할매 원곡시장에 양장점 OPEN     

   

(참고) 거미할매 요괴의 아들이자, 태평천국을 세운 홍수전은 천왕을 칭하며 천자로 군림했다. 그는 전통적인 중원 왕조의 천자들과 달리 야훼의 아들이자 예수의 동생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기존 천자국인 청나라는 물론 기독교 교리를 따르는 서구 열강들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태평천국은 청나라와 서구 열강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홍수전(洪秀全) 사후,  급속하게 멸망했다.


역사적으로 홍수전(洪秀全)이 일으킨 '태평천국의 난'은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전쟁 중 하나였으며, 많은 사람이 죽은 내전 중 하나다. 태평천국의 난으로 인해 죽은 사람은 2천만 ~ 7천만 명 정도로 추산되며, 난민 신세가 된 사람도 수백만 명에 달했다. 거미요괴 할매는 주말마다 원곡사를 찾아가서 아들이 일으킨 난으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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