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59-퍼퓸샵 사장님의 똥꼬발랄한 비밀
이곳 원곡동에서 살게 되면서 놀란 것 중의 하나가 이곳 주민들 (정확하게 말하면 요괴와 귀신들)이 향수를 참 좋아한다는 것이다. 달이누나의 무인 편의점에서는 항상 자몽이나 레몬과 같은 가벼우면서도 상큼한 향기가 났고 (나중에 알고 보니 '시트러스(Citrus)' 향이었다), 거미요괴 양장할매 집에서는 은은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커피 향이, 그리고 복덕방 돈사장님 가게에서는 그 비싼 트러플 버섯향이 났다.
물론 모든 가게들의 향이 다 좋은 건 아니다. 두씨 할아버지의 통번역 공증센터는 늘, 항상... 연한 취두부 향이 나니까. 이외에도 다른 가게들도 각각의 가게마다 고유한 향기가 난다. (고려 맘모스 빵집과 치킨집은 제외, 그곳은 당연히 갓 구운 빵과 고소한 치킨 냄새가 진동하는데 그 냄새는 당연히 향수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원곡동 시장골목 가게들의 고유한 향은 누가 만들어 주느냐? 바로 길 건너 상점 한가운데에 위치한 퍼퓸샵의 '미스타스'라는 주인장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정기적으로 시트러스 향수를 주문하는 달이 누나를 따라 그곳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누나, 이곳 원곡동 시장 주민분들은 다들 향수를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요괴와 귀신들은 냄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거든."
"트라우마요? 어떤?"
"요괴와 귀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알고 있지?"
"네, 아버지에게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동물이 죽으면 혼이 귀신이 되고, 남은 몸이 스스로 자각한 게 요괴들이거든. 죽은 지 좀 지났으니까 시체는 썩기 시작하겠지?"
"아... 그래서...."
"요괴로 자각하면 그때부터는 냄새가 사라지는데, 아무래도 다들 스스로 께림찍해서 목욕을 열심히 하고 향수도 뿌리는 거지. 모르긴 몰라도 요괴들이 아마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목욕하고 몸을 청결하게 할걸? 향수도 많이 뿌리고."
"그래서 이곳 원곡동의 목욕탕과 퍼퓸샵 장사가 잘되는 거구나."
***
도착한 퍼퓸샵 가게 입구는 올드한 느낌의 손으로 그린 자줏빛 문과 간판이었다. 우리는 퍼퓸샵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그렇게 향기가 좋은 가게는 처음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페퍼민트 향에 오렌지 자몽향이 묘하게 혼합되어서 마치 몽롱한 기분까지 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코로 공기를 마셨다.
흐으읍~~~
"자네는 페퍼민트 향을 좋아하는군. 오케이, 알았어. 이제 쌩닭집의 메인 향기는 페퍼민트로!"
눈을 떠보니 멋지게 차려입은 조향사 아저씨가 웃으면서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아저씨의 긴 검은 꽁지머리는 특이하게도 한가운데만 이마부터 머리카락의 끝까지 하얀 머리가 한 줄로 나란히 있었다. 달이 누나가 미스터스 사장을 보면서 말했다.
"시트러스 향수 주문하러 왔어요."
"그럴 줄 알고 미리 만들어놨지."
서랍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시트러스 향수병을 꺼내 포장해주는 미스터스 사장을 보면서 물었다.
"향수 만드실 때 항상 좋은 원료를 사용하시나 봐요."
"당연하지, 나 원곡동 퍼퓸샵의 미스타스는 향수 제조를 위해서 고품질의 100% 꽃가루만 먹거든."
"네? 꽃가루만 드신다니요?"
"우리 가게의 모든 향수의 베이스는 내 몸에서 분비되는 액체로 만들어지니까. 우리 고객분들을 위한 향수인데 내가 아무거나 먹으면 되겠어?"
"몸에서 분비되는 액체요?"
놀란 나는 달이 누나를 바라봤다. 달이 누나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미스타스는 스컹크 요괴야. 항문선에서 나오는 액체로 세상의 모든 향기를 제조하거든."
"항..항문선이요? 제가 아는 그 항문?”
"응, 너고 알고 나도 알고, 누구에게나 있는 그거. 스컹크의 항문선에서 나오는 노란 액체가 있어. 알고 나면 좀 거시기 하긴 하지만, 꽃가루만 먹는 우리 미스타스는 향기가 좋으니 뭐..."
놀란 나는 미스타스 사장님을 다시 바라봤다. 사장님은 손목의 시계를 보시더니 깜짝 놀라셨다.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잠시만 기다려. 후다닥 샤워하고 10분 뒤에 올게."
미스타스 아저씨는 퍼퓸샵 한쪽 구석에 있는 목욕용품 코너로 가더니 반투명의 고체 비누바와 작은 유리병 하나를 집어들고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셨다.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달이 누나가 이야기했다.
"우리 미스타스는 냄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30분 단위로 수시로 목욕하거든,"
"30분마다 목욕을 하신다고요? 비누바는 그렇다쳐도 작은 유리병은 왜 가져가시는 걸까요?"
놀란 나는 달이 누나를 바라봤다.
"미스타스는 목욕하면서 엉덩이에 있는 자신의 항문선에서 나오는 노란 액체를 가지고간 병에 담..."
"아이 참.....그런 거는 그렇게 자세하게 이야기 안 하셔도 됩니다. 누나, 그런데 저기 미스터스 사장님이 방금 들어간 화장실에서 연한 참기름 향이 나지 않아요?"
"스컹크 냄새를 아주 옅게 맡으면 오래된 참기름 향이 나지."
"아... 그래서 외국인들이 참기름을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누나, 그런데 도깨비들도 이 곳 퍼품샵 자주 이용해요?"
"아니, 도깨비들은 절대 향수 안 써."
"아, 도깨비들은 향수 안 쓰는구나.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글쎄...전임 삼신할매가 도깨비들의 위치를 냄새로 파악하기 때문에, 향수 못 쓰게 했다는 말이 있던데, 정확한 거는 이과장에게 직접 물어봐. 새로오신 삼신할매도 그 방법을 쓰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대가 시대니 만큼, 새로오신 삼산할매는 GPS 기기를 이용해서 도깨비들의 위치를 파악하지 않을까요?"
■ 이름 : 미스타스
■ 타입: 스컹크 요괴 (서양에서 온 요괴임)
■ 직업: 원곡동 퍼품샵(Perfume Shop) 주인
■ 나이: 500 살 (추정)
■ 특징: 자신의 몸 (항문선)에서 나오는 액체로 세상의 모든 향기를 제조할 수 있음
■ 좋아하는 음식: 원래 스컹크는 잡식성으로 곤충, 개구리, 새알, 쥐, 과일, 꽃가루, 썩은 고기 등을 먹지만, 원곡동 퍼퓸샵의 미스타스는 향수 제조를 위해서 다양한 꽃가루만 먹는다(고 자신의 퍼품샵을 광고한다. 그러나, 가끔 참을 수 없을 땐 백반집 청국장이나 홍어, 두 씨 할아버지와 취두부 우렁찜를 몰래 먹는데 그날은 향수를 제조하지 않는다.)
■ 좋아하는 향: 외눈박이 요괴의 박하향 구슬땀과 참기름 향 (스컹크 냄새를 아주 옅게 맡으면 오래된 참기름 향이랑 비슷하다.) 특히, 외눈박이 요괴가 매운 음식을 먹을 때 흘리는 구슬땀만 보면, 만사 제쳐놓고 줍느라 바쁘다.
■ 취미: 목욕 (냄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으며, 이 때문에 수시로 목욕하면서 자신의 항문선에서 나오는 노오란 기름을 병에 체취하여 향수를 제조하고 있음.)
[퍼품샵 미스타스 사장님 연대표]
①1520년 캐나다 인근의 모호크족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사는 지역에서 출생
②1550년 미국 아리조나 대 평원에서 나바호 인디언들에게 쫒기다가 죽은 후, 스컹크 요괴로 변신
③1680년 미국 텍사스 오스틴으로 이주 후, 인디언들을 상대로 퍼품샵을 차렸다가 망함.
④1770년 미국 뉴욕주 인근으로 이주
⑤1931년 높은 곳에서도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 그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건설현장에서 1년간 일을 하였음. 이 때 우연히 루이스 하인이라는 사진작가에 의해 사진을 찍혔음. 계속된 노가다로 피부가 상한 상태임.
⑥1970년 미국 아칸소주의 리틀락으로 이주 후, Gas Station 을 운영하여 큰 돈을 벌었음
⑦1988년 관광객으로 위장하여 서울 올림픽을 보러왔다가, 스컹크 체취와 비슷한 한국의 오묘한 참기름 향기에 반해 원곡동에 터를 잡음
⑧1992년 '미스타스 퍼품샵' O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