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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Sep 02. 2024

#60 홍련이네 장화가게 사장님의 아침 이슬

[소설] 원곡동 쌩닭집-60-홍련이네 장화가게 사장님의 아침 이슬

후두두둑


원곡동 쌩닭집에 출근 하자마자 아저씨와 같이 닭가슴살을 발라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창 밖을 보니 맘모스 아저씨가 작은 리어카를 끌고 어디론가 갓 만든 빵을 배달 중이셨고, 우비를 입은 어린아이와 강아지가 비를 맞으면서 즐겁게 뛰면서 놀고 있었다. 아이 뒤로는 친구같이 보이는 붉은 여우가 작은 우산을 쓰고 따라가고 있었고, 길 끝에는 홍수 방지용 배수로를 만들고 잠시 쉬고 있는 두더지들이 보였다.


아저씨는 닭을 손질하시다가 일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오늘 하루종일 비가 많이 올 거 같은데?"

"우리 이따가 오후에 양계장 간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점심 먹고 바로 출발할 거다. 그나저나 너 장화 있니? 비올때 양계장 가려면 장화가 필수인데."

"장화요? 없는데.."

"그러면 지금 저기 홍련이네 장화가게에 가서 하나 사와라.  양계장에서 장화 없이 일하면 신발 다 버린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갔다 오겠습니다."


나는 우산을 집어 들고 길 건너 미스타스 퍼퓸샵 옆에 위치한 홍련이네 장화가게로 향했다. 도착해서 보니 장화는  물론 운동화, 여성용 하이힐에 남성구두까지 판매하는 토털 슈즈가게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가게 안에는 가수 양희은 님의 '아침이슬'이 잔잔하게 들리고 있었다. 두리번 거리면서 장화를 찾고 있는데 어디선가 인사 소리가 났다.


"어서 오세요."


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니 두 명의 자매 주인이 환하게 웃으면서 맞이했다. 둘은 가게 구석에 있는 테이블 의자에 앉아서 투명한 와인잔에 깨끗한 생수를 가득 채워서 마시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목구비가 아주 뚜렷했고, 마치 러시아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낳은 혼혈인 같은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장화 사러 왔습니다."

"어머! 저를 산다고요? 이거 성희롱인데."

"네? 무슨 말씀이신지......"


깜짝 놀란 나는 두 자매 중에서 조금 더 연상으로 보이는 분을 바라봤다.   


"농담이에요, 제 이름이 장화거든요. 성은 배, 이름은 장화, 배장화예요."

"아..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동생분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나를 보면서 인사했다.


"저는 홍련이라고 합니다. 성은 배, 이름은 홍련, 배홍련입니다."

"네에? 장화 그리고 홍련 사장님이신데요? 그러면 전설의 고향에 나오던 장화홍련전이 진짜 있던 일?"


"그럼요, 저와 언니는 평안도 철산에서 태어나, 1656년 조선 효종 7년에 못된 계모에게 살해당했었죠. 그 후 한을 품고 귀신으로 살다가 정동우(鄭東祐)라는 분이 저희의 사연을 들어주고 사건을 다시 재조사해서 저희의 억울한 한이 풀렸습니다."


장화홍련전(필사본)국립한글박물관


"한이 풀렸는데 두분은 지금 왜 이곳에서..."

"그 후에 환생해서 인간으로도 살아봤는데, 인간보다는 귀신으로 사는 게 좋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이곳 원곡동에서 귀신으로 살면서 이렇게 신발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보다 귀신으로 사는 게 더 좋으셨다고요?"

"잘 아시겠지만 인간으로 사는 게 반드시 좋은 거는 아니니까요. 억울한 일도 많이 생기고. 귀신으로 살면 더 이상 억울한 일은 안 생기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놀란 나는 이국적인 두 자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분 모두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황한 내가 시선을 돌리자 언니인 장화 사장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상상하셨던 것과는 저희 외모가 많이 다르죠? 예전 조선시대 평안도는 북쪽으로 명나라 및 나선(羅禪) 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었거든요."

"나선국이요?"

"아, 러시어요. 조선시대에는 러시아를 나선국으로 불렀답니다. 저희 엄마는 러시아 출신의 Оксана 옥사나 장(張)씨였거든요. 당시 조선에서는 보기 드문 파란 눈의 백인이었지요."


"아.. 그래서 두 분 눈이 파랗고 외국인 같으신 거구나."

"이거 때문에 생전에 엄마는 귀신이고 저희는 귀신자매라는 말을 많이 들었죠. 심지어 엄마는 금발의 백인이었거든요. 엄마가 장터 시장이나 우물가에 가면 사람들이 다들 놀라서 오랑캐 귀신이라고 수근거리곤 했죠.“


출처> 김홍도, <우물가>, 종이에 담채, 22.7*27 cm, 국립중앙박물관


"아, 금발에 파란눈....당시에는 정말 이상한 눈으로 봤겠는데요?"

"예전에는 뭐 다 그랬으니까. 아 참, 저희 밥 먹고 있었는데, 이슬 한잔 드릴까요?"


언니 장화는 자신들이 마시던 유리잔을 가리켰다. 테이블 위의 두 유리잔에는 아침 새벽 풀 위에 맺힌 이슬처럼 맑은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이슬이요?"

"저희는 인간이 아닌, 귀신이니까요. 아침에는 이렇게 가수 양희은 님의 청아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깨끗한 이슬만 먹으면 된답니다."

"아..귀신은 이슬만 먹어도 되는 거군요. 저는 괜찮습니다."


자신들이 권하던 이슬을 내가 거절해서 그런지 동생 장화가 아쉬워하면서 말했다.


"리얼 이슬 진짜 맛있는데.....그나저나 신발 사러 오셨죠?"

"아, 네. 장화 하나 사려고요. 좋은 거 하나 추천해 주세요."

"음... 이 색상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동생 홍련은 신발을 뒤적거리더니 분홍색의 꽃무늬 무늬가 있는 장화를 꺼내 보여주면서 말했다.


"역시 남자는 꽃분홍이죠. 언제 달이 언니랑 평양냉면 먹으러 와요. 저희가 평양냉면 하고 김치말이 국수 진짜 잘 만들거든요."


"네, 달이누나랑 시간 맞춰 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계산을 마친 나는 꽃분홍 장화를 들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덧 비가 잠잠해진 상태였다. 내 뒤로 동생 홍련이 빈 박스에 눈에 익은 초록색 빈 병을 가득 싣고 따라나왔다.



"이..이게 뭐에요?"

"빈 이슬병이죠. 달이언니에게 갖다주면 한 병에 100원 돌려주거든요. 우리 다음에 같이 이슬 먹기로 약속!"


약간 취한듯한 그녀의 입에서 진한 소주 향기가 물씬 풍겨나왔다.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홍련 사장님과 새끼손가락 약속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달이 누나가 잔뜩 짜증이 난 표정으로 편의점 앞에서 우리를 보고 소리쳤다.



"야. 이 가시나들아. 고만 좀 작작 퍼 마셔라. 그러다 위에 빵꾸난다. 맥모닝도 아니고 허구헌날 이슬모닝이냐?“


"언니도 참.....이 맛있는 이슬을 어떻게 끊어요, 차라리 밥을 끊고 말지. 그리고 우리같은 귀신이 빵구가 날 위가 어디있어요. 언니도 못 끊으면서 누가 누굴보고 끊으래."


어느덧 노래는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


놀란 나는 바로 [원곡동 쌩닭집]으로 돌아왔다. 아저씨는 내 손에 들린 분홍 바탕에 흰 꽃무늬가 있는 장화를 보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내 장화랑 같은거를 골라줬구나? 역시 남자는 꽃분홍이지."



■ 이름 : 장화/홍련 (이란성쌍둥이)

■ 타입: 귀신

■ 직업: 원곡동 홍련이네 장화가게 공동대표

■ 나이: 1640년 생으로 2024년 현재 384세

■ 특징: 평안도 출산의 아빠 배무룡(裴武龍)과 러시아 출신 금발의 백인 엄마 Оксана (옥사나 장(張))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이국적인 외모를 보유하고 있다. 언니 장화는 맑고 쾌활한 성격이고, 둘째 홍련은 조용한 성격이다.  (보드카를 입에 달고 살았던 엄마를 닮아, 둘 다 유명한 술고래인 것은 비밀!)

■ 좋아하는 음식:  리얼 이슬 (대외적으로 평양냉면 하고 김치말이 국수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슬주에 삼겹살을 가장 좋아한다. 여기서 이슬주는 인간의 소주를 유리컵에 담아서 차게 먹는 것을 의미한다.)

■ 좋아하는 향: 새 장화냄새 (자연의 향을 고집하는 퍼퓸샵의 미스타스가 가장 만들기 힘들어하는 향이다.)

■ 취미: 요리 (평안도 태생인 두 자매는 그곳의 전통음식인 냉면과 국수 이외에도 어복쟁반, 온면, 만두죽, 굴 만두, 콩 비지, 전어 된장국, 돼지고기 편육, 두부회, 가지김치, 녹두전, 모둠전을 모두 잘 만든다. 한때는 신발가게가 아니라 평안도 전통 음식점을 이곳 원곡동에 차릴까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이곳 원곡동의 주 소비자층인 요괴들이 항상 맵고 짜게 먹고, 심심한 평안도 음식을 즐겨 먹지 않는 것을 알고 포기했다.)





[장화/홍련 연대표]


① 1620년 엄마 Оксана 옥사나 장 출생 (해삼위(海參崴)-현 블라디보스톡)


② 1623년 아빠 배무룡(裴武龍) 출생 (평안 철산)


③ 1635년 배무룡, 출장으로 간 해삼위(海參崴)에서 Оксана 옥사나 장을 만나 한눈에 반함


④ 1636년 배무룡, Оксана 옥사나 장 혼인


⑤ 1637년 장화 홍련 쌍둥이 출생


⑥ 1640년 Оксана 옥사나 장, 보드카 3병을 연달아 마신 후 익일 술병으로 사망


⑦ 1641년 배무룡, 허씨(許氏)와 재혼 - 3명의 아들을 연이어 출산


⑧ 1656년 장화 사망 – 계모의 계략과 아비의 방조로 간음 누명을 쓰고 연못에 빠져 사망


⑨ 1657년 홍련 사망 – 언니 장화를 그리워 하다가 연못에 투신


⑩ 1656년 ~ 1660년 평안도 철산으로 부임한 부사들이 연이어 사망


⑪ 1661년 12월 정동우(鄭東祐)라는 사람이 공석인 철산 부사로 자원해서 파견


⑫ 1662년 정동우, 귀신이 된 장화 홍련을 만나서 계모와 세 아들이 죽인 것을 알게 됨


⑬ 1662년 계모와 아들을 처단한 뒤, 연못에서 두 자매의 시체를 건져내어 무덤을 만들어 줌.


⑭ 1663년 배무룡, 18세 처녀 윤씨와 재혼 – 그 해 환생한 장화와 홍련을 낳아 키움


⑮ 1685년 정화와 홍련 모두 평양의 거부 이연호(李連浩)의 쌍둥이 아들 이윤필·윤석과 결혼, 아들 딸 낳고 잘살고 칠순잔치에서 안동소주를 사발로 들이키다가 둘이 동시에 사망


사망한 장화와 홍련은 인간으로 환생을 거부하고 인간보다 귀신이 좋다면서, 이 곳 원곡동에 머무는 중임. 장화와 홍련 자매의 최종 목표는 자신들의 이름을 건 100% 리얼 이슬주를 원곡동은 물론, 전 세계에 판매하는 것이다.  참고로 이들 자매가 각각 전통방식으로 제조한 리얼 이슬주의 상표명과 마케팅 컨셉은 다음과 같다.


[장화소주] 깊은 밤, 장화 소주와 함께 !

[홍련소주] 아침에는 홍련소주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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