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월미수산 아쿠아리움-#19
꿀꺽
전화기를 들고 있는 월미호텔 교어남 매니저는 침을 삼켰다.
"네 알겠습니다."
꿀꺽
교어남 매니저는 다시 침을 크게 삼켰다. 그의 얼굴에서 주르륵 땀이 흘러내렸다.
"지금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고객님."
월미도 관광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있던 교어남 매니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수화기를 들고 응답한 후, 다시 한번 침을 크게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제자리에 놓고는 자신의 서랍에서 작은 금빛 열쇠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열쇠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교어남 매니저 옆에 앉아있는 호텔 직원들은 아무 말 없이 긴장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들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교어남 매니저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열쇠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월미호텔 가장 안쪽에 위치한 VIP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문이 열리고 그는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엘리베이터 상단에 조각된 은빛 용이 보였다.
***
참고로 동양의 용을 분류하면 크게 흑룡, 백룡, 청룡, 적룡, 금룡의 다섯 종류로 분류되는데, 이쪽 월미도 출입국통제사무소를 겸하고 있는 소월미도 등대지기 전소장은 날개가 있고 불을 내뿜는 서양의 Dragon은 용이 아니라 도마뱀류의 동물로 구분하고 있다.
먼저 우리가 아는 지상의 뱀이 1,000년 이상 살면 이무기가 되고, 그 이무기가 다시 5,000년 이상 살아서 입 안에 여의주가 생기면 '흑룡'이 된다.
두 번째는 바닷속의 산갈치가 5,000년 이상 살아서 입 안에 여의주가 생기면 '백룡'이 되며, 마지막은 동물이 아닌 아득한 먼 옛날부터 살아온 신들의 일족인 '청룡', ‘적룡', '금룡'들이 바로 그들이다.
우리가 아는 신격인 용들은 바로 이들 청룡과 적룡, 금룡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득히 먼 옛날에 살았었다는 녹색의 '녹룡'도 있지만 이곳 월미도의 그 누구도 녹룡을 본 적이 없다.
간혹 가다가 지상의 지렁이들이 수천 년 이상 살아서 용이 된 걸 보았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Dragon의 용이 아니라, 흙의 신인 ‘토룡’이 된 것이다.
용들과 토룡은 완연히 다른 존재들인데, 하늘을 나는 용들은 우리가 아는 여의주가 있어서 천재지변을 다스릴 수 있지만, 하늘을 날 수 없는 흙의 신인 토룡은 천재지변을 다스리는 능력 대신에 순식간에 땅에 구멍을 내서 동굴을 만들 수 있다. 이들 토룡신들은 다량의 흙 속에서 미생물을 섭취해서 살아가고, 흙 속의 금이나 은, 코발트, 다이아몬드 같은 광물들을 자신들의 피부로 보내서 단단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토룡의 피부는 그동안 섭취한 수많은 광물들이 만들어낸 오색 찬란한 빛이 난다. 이때문에 토룡을 보고 간혹 용신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지렁이가 토룡으로 되는 기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그 숫자도 워낙에 적을뿐더러 다른 생물이나 신들과도 교류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늘 월미호텔 교어남 매니저가 만나러 가는 고객은 월미 호텔의 VIP 중의 한 명인 산갈치 고객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길이가 50미터가 넘는 그는 4,999년 하고도 364일을 살아서 하루 뒤 백룡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며칠 전 월미호텔에 와서 수심 1,000 미터가 훨씬 넘는 월미호텔 지하 100층 심연 스위트룸에서 휴가를 보내는 중이다.
영겁의 세월을 거쳐서 곧 신의 반열에 올라갈 산갈치 고객의 기분 상태가 지금 매우 불편한데, 이 때문에 교어남 매니저가 잔뜩 긴장을 한 상태라고 보면 된다.
교어남 매니저가 엘리베이터 버튼 아래에 보이는 작은 열쇠구멍에 넣고 돌리자 엘리베이터 층수를 누르는 모든 버튼들이 환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가 1층과 0층버튼을 이용해서 100을 입력하자. 엘리베이터 천장에 있던 은빛 용 조각이 입을 벌리고는 낮은 저음의 목소리로 짧고도 간결한 말을 했다.
'승인합니다.'
쉬이이이이이잉
교어남 매니저가 탄 엘리베이터는 지상이 아닌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
1에서 시작한 엘리베이터 층수는 B1을 거쳐 B50으로 바뀌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여성 안내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하 50층부터는 심연구역입니다. 이곳은 특별히 허가된 분들만 출입이 가능하며, 심해 기압에 익숙하지 않은 월미수산과 월미호텔 직원분들은 즉시 엘리베이터를 멈추고 위로 올라가시기를 권고합니다.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심해 기압에 익숙하지 않은 월미수산과 월미호텔 직원분들은 즉시 엘리베이터를 멈추고 위로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교어남 매니저가 위를 올려다보자 은빛 용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조각과 같은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어느덧 지하 100층의 심연 구역에 도착했다.
띠링
어느덧 지하 100층의 심해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자욱하고 짙은 회색의 해무와 같은 안개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천천히 밀려 들어왔다. 교어남 매니저가 내리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더니 다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자 지하 100층 어두운 심연층에 있는 VIP 전용 방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지금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 멀리서 머리에 호롱불을 단 호텔직원인 심해아귀가 그를 보면서 말했다. 교어남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인 후, 직원을 따라 월미호텔 지하 100층의 심연층에 있는 가장 큰 VIP 실인 B1001 호실로 향했다.
띠링
직원이 호텔방의 벨을 누르자 그 순간 방 안에서는 커다란 괴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교어남 매니저와 호텔직원은 서로를 바라본 후, 침을 꿀꺽 삼키고는 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곧 백룡이 되어 신의 반열에 오를 VIP 산갈치 고객이 묵고 있는 호텔 방문이 닫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