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월미수산 아쿠아리움-#21
교어남 매니저가 문을 열고 들어간 방은 월미호텔의 지하 100층에 있는 넓은 VIP 룸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하얀 소파방향에서 문 밖에서도 들렸던 기괴한 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서 소리 지르듯이 생생하게 들리고 있었다. 소리를 들은 교어남 매니저의 팔에 닭살이 우두두 돋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한번 침을 꿀꺽 삼켰다.
옆에서 같이 걸어오던 지하 100층을 전담하는 직원인 심해아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교어남 매니저를 향해서 더 이상 들어가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도리도리 지었다. 교어남은 그를 바라보더니 얇은 한숨을 내쉬고는 밖으로 나가라고 손짓했다. 심해아귀직원은 교어남 매니저의 손짓을 보자마자 뒤로 돌아서서 말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스위트룸 밖으로 줄행랑을 쳤다.
다시 저 멀리서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교어남은 다시 한번 침을 크게 꿀꺽 삼킨 후,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말했다.
“서비스는 만족스러우신지요? 불편하신 점이 있다면...”
저 멀리 보이는 하얀 소파에 앉아 있는 VIP의 방향에서 방문 밖에서부터 들렸던 괴성이 들리고 있었다. VIP의 뒷모습을 본 교어남 매니저는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침을 크게 삼켰다.
꿀꺽
***
"어, 왔어? 나 지금 한참 게임하느라 자네가 들어온지도 몰랐네. 이쪽으로 와서 앉아."
소파에 앉아서 뒤를 바라본 VIP는 인자하게 생긴 백발의 할머니였다. 그녀가 일어서자 손에 들려있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 무선 컨트롤러가 보였다. 그녀는 컨트롤러 하나를 더 집어들더니 교어남 매니저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혼자 게임하려니 진행이 안돼서 말이야. 특히 여기서는 두 명이 협심해서 같이 하지 않으면 독광정육 마왕을 깰 수가 없어요. 자자 앉아. 한 판 하자고."
크어어어어어억
VIP 산갈치 고객의 뒤로 커다란 화면이 보였고, 화면 안의 게임에서는 독광정육 게임의 마왕으로 보이는 거대하고 붉은 괴물이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시판하는 게임용 모니터 중에서 가장 큰 모니터 세 대와 그 양 옆으로는 최상의 사운드를 보증하는 현존하는 가장 크고 좋은 스피커인 Kharma에서 제작한 Grand Enigma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Grand Enigma 스피커에서는 게임 속 마왕이 계속해서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
약 10분 후. 1층 리셉션에서는 직원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남자 직원이 다른 직원을 보면서 말했다.
"와.. 하마터면 우리가 끌려가서 하루종일 산갈치 고객님하고 게임할 뻔했네. 아무리 “독광정육-지옥의 12 천왕” 게임이 재미있어도 나는 고객과는 못하겠다. 그게 제대로 쉬는 거도 아니고 일하는 거도 아니고. 눈치만 보고 말이야."
"맞아. 교어남 매니저님이 착해서 우리에게 가라는 말 안 하는 거지, 아유 나 같으면 못 간다. 하루종일 호텔에서 일한 몸으로 밤새서 VIP와 같이 게임하는 게 보통일인감. 아무리 스위트룸이지만 난 VIP 랑 같이 밥 먹고 자고, 또 게임하고 밥 먹고 자는 건 못한다."
"그러게 말이야. 그러니 교어남 매니저님께 감사해야지. 그 험한 일을 우리 대신해서 해 주시니 말이야."
"맞아 맞아. 매니저님 안 계실 때 우리는 더 열심히 일하자고. 그게 고생하시는 매니저님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
12시간 후,
지하 100층 VIP 룸에서 커다란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어어... 거기 거기서 공격 들어가야지. 아이 참."
"네네 공격 들어갑니다. 고객님."
"아니, 고객님이 뭐니, 누나라고 해."
"네네, 누님, 지금 공격 들어갑니다."
"어 그래그래, 그렇게! 좋아. 남은 마력을 모조리 쏟아부어."
"저 그러면 뒤도 안 보고 남은 마력 모조리 누님 믿고 쏟아붓습니다, 누님,"
"좋았어.!!! 어어어어.. 마왕 잡을 거 같다."
VIP 산갈치고객과 교어남 매니저 두 명의 계속된 공격으로 드디어 마왕이 쓰러지면서 게임의 엔딩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깨... 깼다. 깼어깼어!!!!"
"와.. 축하드립니다. 산갈치 누님."
"다 우리 동생 덕분이지. 우리 마왕 잡는데 12시간이 걸린 거네?"
"정확하게는 11시간 반 걸렸지 말입니다. 이 정도면 세계 신기록급입니다."
"아이고, 우리 동생 아첨 잘하네. 기분이다 내가.......... 어?"
산갈치 할머니는 방방 뛰다가 말고, 옆에 보이는 방을 바라봤다. 교어남 매니저가 바라보니 방 안에 침대가 하나 보였다.
"네? 누님? 무슨 일이라도?"
"어?"
산갈치 할머니는 뭐에 홀린 듯 방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교어남 매니저도 할머니를 따라서 방으로 걸어갔다. 산갈치 할머니는 방으로 후다닥 뛰어가더니 방의 불을 켜면서 소리쳤다.
"없어!!!!!"
"네? 뭐가 없는지요?"
"우리 애가 없어졌어."
"네? 아이요? 누님 혼자 오신 거 아니었나요?"
"아들과 며느리 몰래 손자랑 같이 왔는데, 아까 여기서 자고 있었는데...."
당황한 산갈치 할머니는 온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교어남 매니저도 같이 호텔방과 지하 100층을 모두 뒤졌으나 아무도 없었다, 당황한 교어남 매니저는 방 안의 전화를 이용해서 프런트 데스크로 전화를 하면서 할머니에게 물었다.
"혹시 손자분이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은색 잠옷."
"어, 난데. 혹시 은색 잠옷을 입은 남자아이가 지나가지 않았는지 지금 바로 전 호텔 CCTV 뒤져봐. 어, 찾으면 바로 전화 줘."
산갈치 할머니는 거의 혼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잠시 후, 방 안으로 전화가 왔다. 교어남 매니저는 전화를 받으면서 말했다.
"찾았어?"
"매니저님, 말씀하신 은색 잠옷을 입은 남자아이가 약 30분 전에 호텔 주방의 후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뭐? 아니, 너희들은!!!!!!!!!!!"
교어남 매니저는 크게 화를 내려다가 잠시 전화기를 들고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산갈치 할머니를 보면서 말했다.
"누님, 제가 지금 올라가서 책임지고 꼭 찾아오겠습니다."
"아니야. 아무래도 나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봐야겠어."
"안됩니다. 누님, 인고의 세월을 거치셔서 이제 하루만 있으면 드디어 백룡이 되시는데, 감압은 위험합니다. 지난 1000년 동안 이곳 심해를 벗어나지 않으셔셔 지금 몸으로 무리한 감압은 안됩니다."
"지금 내가 용이 되는 게 문제야? 우리 애가 없어졌는데? 우리 며느리에게 뭐라고 말하지."
"누님, 제가 우리 직원들 총 동원해서 꼭 찾아오겠습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교어남 매니저는 다시 프런트 데스크로 전화를 해서 말했다.
"나 지금 올라갈 테니. 빨리 월미 아쿠아리움 문 선생 호출해서 방으로 보내. VIP 님 지금 안정이 필요하시다. 뭐? 문 선생이 장기 해외출장이라고? 그러면 거기는 누가? 지은샘이라고 새로 수의사가 왔다고? 지은샘은 그러면 지금 어디 있어? 뭐? 퇴근이고 뭐고 빨리 호출해, 나 지금 올라간다."
교어남 매니저는 수화기를 놓으면서 소파에 털썩 주저 않은 산갈치 할머니의 옆으로 가서 말했다.
"지금 월미 아쿠아리움에서 의사가 올 겁니다. 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제가 반드시 손자분을 안전하게 책임지고 찾아오겠습니다."
산갈치 할머니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방의 문이 열리고 월미호텔 지하 100층을 전담하는 심해 아귀가 들어오자 교어남 매니저는 방을 뛰쳐나가더니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는 1층을 눌렀다.
B100에서 시작한 엘리베이터 층수는 B51을 거쳐 B50으로 바뀌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여성 안내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하 49층부터는 심연구역을 벗어납니다. 대륙붕 기압에 익숙하지 않은 심해 고객님들은 즉시 엘리베이터를 멈추고 아래로 내려가시기를 권고합니다.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대륙붕 기압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님들은 즉시 엘리베이터를 멈추고 아래로 내려가시기 바랍니다.’
교어남 매니저가 위를 올려다보자 은빛 용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어느덧 1층 로비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교어남 매니저는 총알처럼 로비 사이를 뛰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