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야만의 시대

세상을 보는 눈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by 이상훈


늦가을이었다.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했다. 리사무소 마당 앞 수로 바닥에는 온갖 술병과 빈 담뱃갑과 꽁초가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고 그 위로 수로를 건널 수 있게 나무판자 다리가 놓여있다. 나무판자를 건너면 논이다. 수확을 끝낸 논에는 그루터기들만 을씨년스럽게 빗물에 젖어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리사무소 인근의 전방 문 앞 베란다 위에는 몇몇의 젊은 남녀가 팔짱을 끼고 근심 어린 낯빛으로 서 있는데, 동네 아저씨 한분이 부리나케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한다. 동네 예비군 대장을 하고 있는 양반인데 항상 개구리 무늬 같은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다녔고 모자엔 향토예비군 마크가 팔뚝엔 노란색 완장이 채워져 있다.

“아 글쎄 어떤 이상한 아저씨 두 분이 확성기 탑이 높이 서있는 이곳을 피해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요. 간첩이 아니라면 굳이 이곳을 피해서 다닐 필요가 없는데, 옷차림도 이상하고 해서 신고했어요?” 동네 친구 누님이 거의 간첩이다라고 확신에 찬 말투로 이야기를 한다.

“그 양반들 어느 쪽으로 갔어요.”
“아마 저쪽으로 간 듯해요.”

이윽고 작업복 복장의 덥수룩한 아저씨 한 분이 예비군 대장의 손에 허리띠를 잡혀 동네 향토예비군 지소로 끌려들어 왔다.
향토예비군 대장은 잡혀 들어온 남자를 의자에 결박해 놓고 어디서 구해왔는지 휘발유 넣는 호스로 매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악”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심문도 단순해서 예비군 대장의 “너 간첩이지 한 놈 어디 갔어”라는 말만 반복해서 들린다.

밖에 서 있던 누님뻘 형님뻘 되는 이들은 간첩신고에 따른 포상금 이야기로 정신이 없다. 좀 전에 들어간 예비군 대장에게 간첩이 맞으면 저에게 얼마를 줘야 한다는 등 싱숭생숭한 표정을 짓는다.
매질을 끝내고 한참을 심문해도 붙잡혀 온 아저씨가 간첩이 아니라고 강변하자. 예비군 대장은 아저씨를 풀어놓는다.

“다시 잡히면 죽을 줄 알아”
“어서 가봐”

풀려난 아저씨는 어둑해진 논길을 따라 리사무소 맞은편 갯 뚝 마을로 부리나케 도망치듯 달려 나갔다.
그 아저씨가 정말 간첩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시엔 간첩 검거 뉴스가 굉장히 많았다. 서해안의 경우 많은 초소들이 해안선을 따라 설치되어 있었고 소위 방위라 불렸던 군인들이 밤마다 보초를 서던 때였다.
실제로 충남 청양에선 침투한 간첩이 보초를 서던 예비군을 살해하고 도망했던 뉴스도 있다.
당시 정부는 만들어진 간첩뿐만 아니라 남파된 간첩이 많았던 시절이기에 특히 김신조 사건 이후 간첩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을 정도로 간첩 잡는데 몰두했다. 이러다 보니 동백림 사건을 비롯해 많은 간첩사건이 조작되기도 했다.

어느 면에서 보면 간첩이 나 간첩이요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닐 텐데 잡는 방식은 참 엉성하기도 했다. 초등학생들을 중심으로 반공 웅변대회 등 각종 반공교육이 시도 때도 없이 벌어졌다. 간첩 식별 매뉴얼도 다양하게 제작되어 일선 교육기관에 배포됐다.

간첩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매뉴얼은 한국전쟁 당시 행불 되었던 이웃이 갑자기 나타났다거나 특별한 이유 없이 이웃집의 생활 형편이 크게 나아졌다 하는 점을 간첩이거나 간첩과의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할 근거로 보았다. 증거는 특별하게 찾을 수 없고 간첩 잡는데 증거를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듯했다. 포스터를 보아도 심야에 단파방송을 듣고, 눈 주변에 조로 같이 검은 띠를 한 사람을 간첩으로 그려놓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당연히 증거가 있을 리 없다. 혹독한 고문에 자백을 하면 간첩이 되는 것이었다.

당시 잡혔던 그 덥수룩한 남자가 간첩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 같으면 명백한 인권 유린이다. 소지품에도 명백히 간첩이라 할 만 물증을 찾지 못했으니 말이다.

간첩이 몇 대 맞았다고 간첩이라고 자백하는 것도 코미디 같은 장면이 될 수 있다.
확실한 증거에 기반하지 않은 간첩 양산은 우리 사회를 경찰국가로 만드는데 크게 일조했다.
통치자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권력을 유지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 되었고, 붉은 색칠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으니 말이다.


간첩으로 몰려 13년 옥살이한 나종인 씨 '13억 위자료'도 받는다는 기사를 보면서 당시 세상을 대면했던 나의 철없던 의식에 답답함을 표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