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홍어는 언제부터 미식가의 입을 들락 거렸을까?

by 이상훈

얼마 전 영등포 신길동에 위치한 홍어 골목을 다녀왔다. 비가 부스스 내리던 날이었고 아직 해가 지려면 한두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을 듯싶은데 가게 안은 홍어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몇 해 전까지 만 해도 나름 삭힌 홍어를 즐겨 왔었는데, 이사를 한 후에는 주변에 홍어를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그동안 나도 모르게 잊고 지내왔었다.
내가 언제부터 먹게 됐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90년대 초반에 처음 마주하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홍어는 산란기인 겨울에서 이른 봄까지가 제철이다. 그 해에 생산된 적당한 볏짚과 발효 온도 등도 갖춰줘야 제맛을 낼 수 있기에 말이다.


예전 내가 근무하던 회사가 위치한 용산역의 국제빌딩 인근엔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빌딩 주변으로부터 1백 미터 길이의 국제시장이 있었다. 시장 주변에는 옛날식 소꼬리찜이나 도가니 수육을 만들어 파는 집과 홍어라는 간판만 붙여 놓아도 GPS도 활성화되지 않은 때임에도 어떻게 알고 찾아오던지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용산역 앞에 있던 역전식당은 바싹불고기 메뉴로 유명했다. 석쇠에 구워 납작한 놋그릇에 내어오던 바싹불고기는 육우 등심과 치맛살 등을 사용했기에 값도 그리 비싸지 않아 가끔 점심용으로 이용도 했었다.


홍어에 대해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도 많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정치인이 김대중 정부 시절에 흑산도에 가서 홍어를 맛있게 드시고 나서 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가게 주인에게 청와대에 선물하겠다고 홍어를 포장해 달라 했단다. 깜짝 놀란 주인이 실은 진짜 흑산도 홍어가 아니고 수입 가짜 홍어라고 고백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국산 홍어의 메카인 흑산도에서도 국산 홍어 먹기가 꽤나 힘들다.


지금이야 법률로 국산과 수입산을 명기해야 해서 그런 일은 많이 줄었지만 국산과 수입산의 가격차이가 신길 홍어 골목에서도 3배 이상이었다.
어쨌든 홍어는 혼자 먹기는 좀 부담스럽다. 그래서 그랬는지 홍어로 유명한 집은 잘 알지는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곳이래야 고작 예전 동작구 대방동에 살 적 해군본부 사거리에서 대방동 성요셉 성당으로 올라가는 초입의 그럴싸한 간판 하나 없이 1층 단독주택에 조그맣게 운영되던 홍어집이 기억에 남는다. 단지 홍어라는 붉은 글씨의 조그마한 간판을 달고 있던 집이다.

회사가 가산디지털 단지로 이사를 오고서는 몇 번 경기도 광명시 광명시장 내에서 간간히 홍어회 한 점에 막걸리나 소주를 걸치곤 했던 짱구 식당이 있다. 그리곤 홍어 전문점은 아니지만 사는 곳을 구로 항동으로 옮기고 나서는 부천 역곡역 앞에 위치한 홈플러스라는 대형마트 인근에 있는 어죽 집에서 맛을 본 적이 있다. 홈플러스 정문 건너편에 위치한 어죽 집은 고향이 충남 공주인 주인아주머니가 삭힌 홍어를 직접 만들어 상에 내어 놓았다. 약간 아쉬운 것은 볏짚을 사용했다고는 하는데 홍어 맛을 도회지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표준화하다 보니 특유의 홍어 맛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다행히 이곳의 좋은 점은 가끔 맛이 괜찮은 홍어의 코부분 음미해 볼 수가 있다는 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알고 있는 홍어집이 한 군데 더 생각이 난다. 부천 괴안동 사거리를 지나 범안행정복합센터 건너편에 위치한 홍어삼합 집도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그렇다 해도 가본 집 전부를 세어봐야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 내 음식 역사에 나온 홍어의 전부가 아닌가 싶다.


돌아가신 장인 어르신이 살아계실 적에 사위 집에 놀러라도 오시면 광명시장 내 짱구 식당에서 홍어애탕을 몇 인분 사 가지고 와 집에서 대접해 드리기도 했는데 그럴 수 없는 처지가 되다 보니 안타까움이 크다.


홍어탕은 먹을 때의 호흡이 참 중요하다. 입안에 국물을 딱 떠 넣을 때 일단 호흡을 멈춰야 한다. 호흡을 하게 되면 메케한 홍어 향이 폐를 찌르며 사래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먹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홍어애탕을 먹고 사레들었을 때의 그 난감함과 고통스러움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다시 찾게 되는 것은 아마도 발효 음식의 특성 때문이리라....
많은 이들이 막걸리와 홍어삼합을 먹는데 내 경우에는 막걸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소주와 함께 먹는 편이다.


회사 인근의 가산디지털단지역과 연결되어 있는 우림 라이온스밸리 A동 김명자 굴국밥집에도 홍어삼합 메뉴가 있긴 한데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직장인들이 맘 놓고 먹기에는 양이 좀 부족하다.

신길동 홍어 골목에 위치한 홍어 명가는 홍어요리가 산지에 따라 국내산 흑산도산 수입산 등 3종류로 나뉘어 제공되고 있다. 주인 내외분이 연신 흥에 차 있으신데 상냥한 분들이 함께한 우리에게는 홍어애와 코를 사람 수에 맞게 서비스해 주시기도 했다.


삭힌 홍어보다 홍어앳국을 찾는 사람도 많다. 이른 봄 보리 새순과 함께 홍어 내장을 넣어 끓이면 코끝을 톡 쏘는 맛과 시원한 국물 맛을 즐길 수 있다. 또 튀김이나 찜으로 먹으면 톡 쏘는 향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굳이 다른 무엇에 찍어 먹지 않고 순수하게 홍어회의 향과 질감을 느낀다. 홍어회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은 삼합이 괜찮은 편이다. 묵은지에 수육과 홍어회를 싸서 먹으면 홍어 질감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고 묵은지 향으로 홍어 특유의 향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홍어를 막걸리 등으로 씻어내고 미나리 식초 고춧가루 등으로 양념하여 무쳐 먹어도 맛이 일품이다.


홍어는 큰 몸과 생식기 탓으로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낸 물고기다. 그 가운데에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것이 "만만한 게 홍어 좆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유래를 보면 암컷이 수컷보다 맛이 있는 관계로 수컷 홍어를 잡게 되면 뱃사람들이 꼬리 양쪽에 있는 그것을 떼어 버렸다는 데서 나왔다는 설도 있고, 술안주로도 그것이 넉넉하기도 하고 떼어내도 표도 잘 나지 않기에 술꾼들이 공짜 안주로 먹었다는데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홍어를 아니 발효된 홍어를 먹기 시작했을까?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보면 홍어 대하여 "회로 먹거나 국을 끓이거나 포를 뜨기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나주 가까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썩힌 홍어를 즐겨 먹는데 지방에 따라 기호가 다르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식용의 역사는 조선 중기 이전부터 있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홍어는 동물과 같이 교미를 해서 알을 낳는 물고기이기 때문에 몸집의 특성상 교미를 위하여 날개에 나 있는 가시 등으로 암수가 몸을 고정하는데 교미 중에 암수가 함께 낚싯줄에 끌려오는 경우도 있어 옛날 사람들에게 홍어는 음란함을 상징하기도 했다.
「본초강목」에는 '태양어(邰陽魚)'라 하고, 모양이 연잎을 닮았다 하여 '하어(荷魚)'라고도 기록하고 있다.


홍어를 먹는 나라는 많지 않은 것 같다.

페루나 아르헨티나 앞바다에서 잡아 올려 공수해 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실제 전라도 사람들의 잔칫상에 올라오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는 아닌 것 같다. 일단 생김새가 기괴할 뿐만 아니라 음란함의 상징으로 기록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예전에 홍어를 잡으면 흉물스러움과 살집의 연약함으로 인해 쳐다보지도 않고 버려졌던 아귀나 물텀벙이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값을 생각하면 상전벽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잿간이나 두엄더미 위에 버려진 홍어는 발효가 시작되면 몸에서 끈적거리는 진액이 나오고 보통 화장실에서 와 같은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대부분의 물고기류는 부패 단계로 진입을 해야 하는데 홍어의 경우에는 살집의 단단함이 그대로이고 색상도 선홍색을 띠는 등 전혀 부패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먹기 시작했을까? 아마 이 부분은 보릿고개 같은 기아 시기를 거치게 되면서 자연스레 풀렸을 고민 같다.


손에 닿는 감촉의 섬뜩함과 특유의 향을 무릅쓰고 바닷 굴을 최초로 식용한 인간을 숭고하게 대접할 수 있듯이 내 생각에는 발효된 홍어를 처음 식용해본 사람에 대해 경의를 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지금은 미식가들의 입을 사로잡기도 하고 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으니 처음 먹어 본 사람이나 그의 가족 혹은 지역 사람들은 설마 이런 기대는 하였을까. 물론 배고픔이라는 원인이 큰 역할을 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