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에도 일정한 수고스러움이 따른다. 재료를 준비하거나 맛집을 찾아 나서는 것도 보기에 따라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수고스러움이 누구에게는 재미있는 일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간혹 우린 평소에는 무관심하다가 누군가가 아프거나 큰 일을 당하면 맛있는 음식으로 위안을 주려고 하기도 한다. 혹자는 먹는 것이 슬프다고 했다. 공감을 하기는 어렵지만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혹은 사람의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글이라는 게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생겨난 일을 기록하는 것이기도 해 그 말이 영 맞지 않다 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먹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먹는 것을 누구와 함께 하느냐 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보통의 사람들은 살아가는데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대부분이 지금까지 먹은 식품을 에너지원으로 삼았다.
먹는다는 것이 슬프다는 것은 아마도 살이 쪄 고민임에도 먹는 것을 포기할 줄 모른다거나 슬픈 상황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음에도 위장에서는 먹을 것을 달라고 “꼬르륵”거리는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저 단순히 살기 위해서 먹는 다고만 한다면 참 슬픈 일 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배가 고파 허겁지겁 찐 고구마를 먹다가 목이 메고 사래까지 들어 “컥컥” 거리며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문득 떠 오른다. 한 창 사춘기였던 때라서 대단치도 않은 고구마 한 덩어리를 먹어 보겠다고 이 짓인가 하는 생각이 언뜻 머리를 스치며 자신의 한심한 모습에 자괴감을 갖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람이나 동물이나 혹은 먹는 것 자체가 객관적으로 불변이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하냐에 따라 멀쩡해 보이기도 하고 천박해 보이기도 한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음식이나 과일 등 우리가 먹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그것이 능동형을 띨 수 있느냐에 대하여 어린 시절 갑론을박을 한 적이 있다. 때가 고등학생 때이니 더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를 영화 제목이다. "벌레 먹은 장미"라는 제목의 영화였는데 청소년 관람 불가였다. 제목이 눈에 들어와서 친구들과 함께 장미가 벌레를 먹었다는 소리냐 정상적으로 쓴다면 "벌레에게 먹힌 장미"라고 해야 하지 않나 어쩌고 떠들었던 기억이 있다. 각설하고 신체가 정신을 지배하는 것 까지는 아닐지라도 신체가 정신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정신이 신체보다 우월하다하여 특별날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배고픔과 같이 신체에 조종당하는 정신을 보고 자신이 동물과 다를 것 없다고 폄하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자신을 돌아보자. 과연 자신이 우월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기는 한 사람이었는가. 단지 좀 정신력이 나약하거나 부족한 사람들과 비교하여 우쭐대었던 것은 아닐까.
정신과 신체를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고 본다. 맑은 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은 양질의 식품을 몸속으로 공급해줘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둘 사이 명확한 구분을 두고 서로가 별개인 것처럼 대하는 태도는 올바르지 않다. 가령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올바른 판단과 정신력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일 수 있다. 종교적으로나 특수한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을 너무 보통 사람들에게 일반화시켜 대입한 것이니 말이다. 간혹 기분이 언짢아 굶는 일도 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나 혹은 잘 알고 있는 이웃의 누군가가 죽었어도 먹는 일을 중단하지 않을 만큼 먹는 것은 인간에게 중요하다.
높은 정신을 소유한 사람도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도 먹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일부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행태에서 벗어나는 일들도 있기는 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배우인 이병헌과 전도연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보면 김태우가 먹는 것 대신 목욕할 수 있는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영화적 측면에서 민초와 귀족 간의 신분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려는 의도된 연출일 수도 있겠다. 세상 어디에나 기쁜 일과 슬픈 일이 있다. 먹는 것에도 예외 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음식에 구분을 둘 필요는 없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음식을 나누는 것은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먹어서 없애는 일에 과잉적으로 흥분하는 이도 있겠으나 삶의 많은 부분은 먹는 데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보통의 사람들이 매번 고급스러운 정찬을 즐기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은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는 것보다 백번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