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코끝 벌렁이는 달큼함 겨울 보양식 굴
뜨근한 굴 국밥 한수저에 부추 무침을 올려놓으면 군침이 절로 난다
지금이야 “굴”하면 통영을 떠올리지만 내가 어릴 적 충남 태안은 안흥이나 신두리 등에서 채집된 굴이 모이는 곳으로 굴 소비가 다른 내륙지방보다 많았다. 할머니 댁이 태안(구) 시장 안에 위치하고 있던 관계로 시장바닥부터 집 앞 골목에 이르기까지 굴이나 조개를 까서 팔던 아주머니들이 버렸거나 흘리고 간 껍질들로 노면이 빗물에 패이지 않을 정도로 단단히 다져져 있었다.
음력 12월 할아버지 기일이 다가오면 아버지와 함께 할머니 댁을 방문하곤 했는데 약주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성찬을 마다하고 간단한 안주와 술로 밥을 대신하셨다. 늦은 밤, 제사 시간이 오기전 할머니나 작은 어머니께서는 어버지의 해장으로 굴 물회를 내어 오셨다.
타안 지역에선 흔한 굴이라고 하지만 굴 물회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굴의 양은 1인분으론 좀 많다 싶을 정도 많다. 아마도 그 정도의 양이면 조그마한 투거리 김치찌개를 4개 정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매콤 달콤하면서도 식초를 곁들여 시큼하기도 했던 그리고 잘게 썬 배와 함께 씹히는 굴의 식감은 4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굴은 대략 강굴, 토굴, 바윗굴, 참굴 등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참굴, 바윗굴, 벚굴 등으로 간단히 구분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양식 굴이 참굴인데 양식굴은 남해안 지역에서 보편화되어 있고, 충남 태안 등 서해안에서는 바위에서 채취하는 자연산인 바윗굴 많이 나온다.
서해안의 굴은 미네랄 성분이 많아 맛이 진하고 담백하다. 얼마나 맛이 좋으면 “남양 원님 굴 마시듯 한다”라는 속담이 다 생겼다. 속담에 등장하는 남양이라는 곳은 경기 화성지역 일대로 서해안에 위치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이 지역 굴이 지역 특산물이라고 나와 있다. 이처럼 과거엔 서해안의 굴이 맛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12월이면 굴이 제철이다. 이때부터 2월까지는 생굴의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굴은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보다 강굴 형태로 먹어야 굴의 참 맛을 알 수 있다. 서양인들에게 날로 먹는 생선류가 많지 않은데 그나마 생식하는 것이 굴이다. 이들도 굴을 날것 그대로 섭취하거나 레몬즙을 뿌려, 가능하면 채취한 굴 맛 그대로를 느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강굴이란 채취한 그대로 물이나 기타 어떠한 것도 섞지 않은 굴을 말한다.
굴은 날이 더워지면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될 우려가 있어 날로 먹는 것을 삼가야 해야 한다. 서양인들도 알파벳 "R"자가 들어가는 달에만 날 것으로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굴 물회를 살펴보면 일정량의 물에 곱게 다진 쪽파와 채 썬 배, 설탕, 식초, 들깨, 고춧가루, 굴을 넣고 간장 등으로 간을 맞춰 먹었다. 겨울에 마시면 시원하고 달콤 새콤한 맛이 절로 간을 해독시키는 듯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동치미 국물에 쪽파와 깨소금만으로도 맛있는 굴 물회를 만들어 드셨다. 겨울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생각하니 입안에 군침이 돈다.
요즘이야 무와 비슷한 콜라비를 넣기도 하고 깻잎 등 다양한 채소류를 채 썰어 넣기도 하지만 굴 맛을 느끼기에는 들어가는 재료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싶다.
굴의 요리법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굴로 김칫국과 김치찌개도 많이 해 먹었다. 요즘 먹어보면 예전과 같은 간절한 맛은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굴은 커서 씹는 맛은 좋아진 것 같은데 바다향이 가득한 강굴 맛은 잘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굴이 흔했기 때문에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에도 배추김치를 담그거나 할 때면 빼놓지 않고 넣는 것이 굴이었다.
굴은 서양에서는 남성이 동양에서는 여성에게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동의보감에서는 굴이 몸을 건강하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해 준다고 설명한다.
굴 철이 빨리 돌아와 입맛을 돋우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