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 Feb 02. 2021

할아버지, 나의 하부  

한참을 잔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 반. 두 시가 넘어 잠이 들었으니 고작 한 시간 정도 선잠이 든 것뿐이다. 꿈속에서 나는 집에 없는 할아버지가 걱정돼 급하게 전화를 했다. 할아버지 어딘데 집에 안 오냐고 물었고, 할아버지는 바닷가에 혼자 놀러 왔는데 (그 뒤에 했던 이야기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돈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 빨리 돈을 보내야겠구나 생각하다가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나는 이상하리만치 자주 할아버지 꿈을 꾼다. 꿈을 꾸고 나면 할아버지가 어디 불편하신 건 아닌지, 내 행실이나 안위에 문제가 있는지, 그런 것들을 곱씹다가 이내 슬퍼진다. 



할아버지는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6년 동안 교복 셔츠를 다려주었다. 안에 입으면 구겨진 거 뵈지도 않는다 말해도 소용없었다. 한사코 오래된 주황색 담요를 깔고 내 셔츠에 분무기를 뿌려댔다. 덕분에 추운 겨울에도 잠옷을 벗고 셔츠를 입을 때면 온탕에 들어가는 아저씨처럼 으아~~ 아~ 소리를 냈다. 매일 나한테 일찍 안 잔다고 성질내고, 노인네 귀찮게 한다고 짜증내고, TV 채널 바꿔서 요상한 가수나 본다고 잔소리하면서도 다음날 아침이면 할아버지는 늘 내 방 문고리에 뜨끈한 셔츠를 걸어놓았다. 나는 부은 눈으로 그 셔츠를 집으면서 가족이란 대체 뭘까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부모에 대한 상처와 조부모에 대한 애증으로 자랐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당신들의 방식으로 나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다. 그 허기 때문에 나는 추운 방에 틀어박혀 시를 쓰고 음악을 들었다. 불만이 많았지만 정확히 어디에 표출해야 할지 몰랐고, 엄한 데서 폭발하기도 했다. 10대라는 게 그렇다. 사춘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별 게 다 별것이 되는데, 실제로 내 유년시절엔 별의 별일이 다 있었다. 내 가족이 내 가족이 아녔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도 많았다. 서로 죽일 듯 싸우고 물건을 부수는 상황 속에서 어린 내가 가질 수 있는 염원이라곤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고, 나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어른이 되면서  상황은 나아졌지만 가끔 한자리에 모여 있을 때마다 얼른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곤욕스럽고 즐겁지가 않았다. 

가족이라는 게 꼭 같이 살아야 가족인가? 난 가끔 만나야 좋던데, 나만 쓰레긴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해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영 마뜩잖았다.



그런 나를 눈치챈 아빠는 노인네들 살면 얼마나 사신다고 그러냐, 잘해드려야지, 하고 타일렀다.

그 와중에도 ‘왜 아빠는 본인에게 해야 할 말을 나에게 하고 있을까?’라는 비딱한 생각이 들었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단 상상만으로 너무 슬프고 무섭긴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딱히... 별 생각이 없었다. 

워낙 고집스럽고 성미가 불같아서 대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그러다 몇 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너무 급작스러운 죽음이었다. 



폐렴이라고 했다. 사경을 헤매는 할아버지를 보는 게 영화라도 보는 듯이 낯설었다. 내 이름을 부르고, 내가 우리 손녀딸도 못 알아봤다고 울먹이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쏟아졌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얼굴에 손을 대자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어디선가 심장이 멈춰도 청력은 몇 분간 유지된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귓가에 대고 키워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죽음 앞에서 내 원망이나 분노 따위는 정말 하찮고 가벼운 것이었다. 

나는 가족 앞에 붙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자연스럽게 굴복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거실에서 화투 패를 맞추는 할아버지 등이 보이는 것 같다. 할아버지 등 뒤에서 어깨를 붙잡고 하부~ 하부~ 질척거리면 귀찮다고 밀어내던 몸짓도 생생하다. 아직도 현관에 비스듬히 놓여있는 빨간색 지팡이는, 내가 강릉 여행길에 하부에게 선물로 사준 것이었다.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지팡이를 짚고 돌아오는 하부를 발견하고, 멀리서 할아버지를 부르며 달려가던 내 모습과, 그런 나를 멈춰 서서 바라보던 눈빛 같은 것들이 마음속에 필름처럼 남아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이 환경을 죽어라 원망하면서도 사랑했나 보다. 그래서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고, 꿈을 꾸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꿈에는 한 번도 안 나타나면서, 손녀딸 꿈에는 자주도 등장해주신다. 이다음 꿈속에서는 하부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던 효도라디오를 준비해야겠다. 박자보다 살짝 느리게 따라붙던 하부의 구성진 목소리가 그립다. 수년 전 그랬듯 나는 꿈속에서도 깔깔깔 웃으며 추임새를 넣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무엇' 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