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세일러문 책가방

by 달구비

엄마는 나를 할머니·할아버지 손에 맡기고, 큰 이모네 식당으로 돈을 벌러 떠났다. 내가 정확히 두 살 되던 해였다.


이모네 식당은 엄마가 입은 앞치마 주머니가 돈으로 무거워져, 목이 아플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고 한다. 나를 데리고 일해 보려고 했지만 식당 구석에서 계속 식재료를 뒤집어엎는 바람에 외갓집에 맡겼다고 한다. 역시 어릴 때부터 식탐이 강했던 모양이다.


할머니·할아버지는 어린 나를 어루만지며 바라봐 주셨다. 그 눈빛에 엄마가 떠난 빈자리는 금방 채워졌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따뜻한 온정이 전해지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나는, 주름진 검버섯 손 끝에서 금화정리를 만났다.


눈을 떠도 감은 것처럼 깜깜한 새벽. 고요한 적막을 깨우는 암탉으로 다소 이른 하루가 시작됐다.

우리 집 암탉이 울면 옆집 암탉도 같이 울었다. 뒷집 암탉도 동참했다. 앞집도 상황은 똑같았다. 도대체 무슨 중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건지 온 동네 닭장에 찾아가 묻고 싶었다.


고막을 뚫고 날카롭게 꽂히는 닭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나면, 나는 고동색 짙은 밥상 앞에 눈을 비비며 앉았다. 구수한 밥 짓는 냄새에 잠이 덜 깼어도 배가 고팠다. 밥에는 항상 콩이나 감자가 들어가 있었고 반찬은 주로 콩나물, 고사리나물, 무나물, 가지나물이었다. 닭이 고마운 건 계란프라이밖에 없었다. 나물들 사이의 계란프라이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침을 다 먹고 나면 할아버지는 경운기에 시동을 걸었고, 할머니는 허벅지까지 오는 초록색 장화를 신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학교 가는 길에 만나는 모든 어른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모르는 어른들과 마주쳐도 무조건 허리부터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누구니?" "전 씨 집 손녀딸이에요." 자기소개를 곁들인 짤막한 인사도 함께였다. 인자한 할아버지가 딱 하나 단호하게 강조한 게 있다면 인사였기 때문에, 농사일을 나서는 마을 어른들은 내 인사에 화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번쩍이는 세일러문 책가방을 메고 논두렁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작은 이층짜리 건물이 하나 나온다. 폐교 이야기가 늘 따라붙는 우리 학교다. 아침마다 운동장 위로 국민체조 음악이 울려 퍼지면, 작은 손가락들을 열심히 하늘 위로 뻗었다.


전교생이 30명 남짓이다 보니 각 학년마다 반은 달랑 하나였다. 1학년은 개나리반, 2학년은 진달래반 같은 왠지 모르게 촌스러운 이름이었다. 3학년까지는 1층에, 4학년부터는 2층에 교실이 있다. 교실에 가려면 계단을 탈 수 있었기에 빨리 4학년이 되고 싶었다. 계단을 타고 교실에 가는 언니, 오빠들을 넋을 놓고 쳐다봤다.

운동장 구석에는 항상 낡은 경운기 한대가 세워져 있어, 쉬는 시간엔 늘 경운기에 올라타 놀았다. 여기저기 녹이 슬어 스산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늘 나와 친구들로 바글바글 했다. 운이 좋으면 운전석에 앉아 선장역할도 할 수 있었다. "선장말을 들어라! 내 배에 타라! 우리는 바다로 갈 거다!"


시소도, 그네도, 미끄럼틀도 없지만, 늘 시끌벅적했던 우리만의 놀이터.

놀이거리가 없어서 놀이터라는 단어보다는, 농기계 집합소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릴 것만 같던 장소.


그곳에서 이뤄질 운동회를 시작으로, 나의 시골살이는 비로소 진정한 막을 올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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