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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민 Aug 15. 2023

육아요가

돌이 된 아기에게

 수련에서 수행으로 나아가는 지점엔 인생의 변화가 있었다. 업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구나 싶은 즈음 아기가 나에게 왔고 지금 내 곁엔 귀여운 아기가 브람스의 자장가를 들으며 자고 있다. 지금, 여기, 내 앞에 오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요가수련을 리드했는데 살아있는 아기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우선 24시간 밀착케어였다. 에너지를 충전하고 정화하고 튜닝할 시간과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냥 해야 했다. 에너지가 소진되어 제로 상태여도 아기는 내 사정을 봐줄 리 없었고 마치 좀비처럼 영혼 없이 움직이는 새벽의 나를 볼 때 이것이야 말로 수행이구나 싶었다.

마치 같은 임무를 수행중인 요원들의 유니폼같은...우연의 찰나

  저마다 주어진 타고난 성질이 있겠지만 나는 변덕스럽고 소심해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균형을 잡아가는 류의 사람이지만 엄마라는 역할은 아이가 의지할 수 있을 만큼의 심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잠든 아기를 보며 나와 신랑과 아기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 날들이 늘어갔다. 질문을 품고 있으면 불현듯 내 안의 답이 드러난다는 오래된 나의 방법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온 나와 아기에게 전하고 싶은 지금의 에센셜을 남기려고 한다. 물론 아이가 함께 자라며 생각지도 못한 자생적인 가정의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가족

 오랫동안 요가를 하면서 건강은 무엇일까 참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WHO에 따르면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고 허약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 안녕이 완전한 상태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음양오행섭생법을 공부하면서 건강을 위한 3요소를 배운 적이 있다.

관계와 음식 그리고 운동

명쾌했다! 단순했지만 핵심이었다. 먹는 것이 신체를 만들고 운동으로 순환하며 유지한다. 그리고 관계를 통해 우리는 삶의 정신적 측면들을 발전시키고 운용하며 살아간다. 그중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관계가 가족이다. 요가를 하다 보면 정신적인 면들을 다루게 되고 명상으로 나아가면 결국 나를 둘러싼 관계를 통해 형성된 다양한 상들을 바라보고 재작업하며 스스로가 만든 경계를 알아차리게 되는데, 이토록 중요한 관계의 핵심은 역시나 가족이라는 것. 은찬이의 세상은 지금 엄마와 아빠가 다일 것인데 이 아이가 건강한 가족을 경험하고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기반으로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본다. 물론 파도는 치겠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함께 파도를 타며 세상을 살아보라는 게 이번생의 미션이 아닐는지 생각하며... 하..ㅎㅎㅎ

자연

 내 경우엔 오랫동안 헤매고 실수를 거듭하며 비싼 수업료를 내고서야 깨달은 것인데, 사람은 자연스러울 때 가장 아름답고 솔직하고 편안하고 강인하다는 것이다. 영혼은 맑은 영과 마음의 뭉침으로 만들어진 에고 즉 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의 경우 혼의 탐진치가 깊이 배어있어 매일 빨래를 해야만 겨우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다. 그리고 탐진치는 사람을 자연스럽지 않게 한다. 욕심으로 번들거리는 눈, 성내는 몸의 공격성, 어리석은 언행으로 나와 내 주변을 어지럽게 하는 모든 것들을 관찰하다 보니 그럴 때마다 부자연스러운 나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과 멀어진 내가 있었다. 계절이 전하는 에너지를 느끼며 나를 변용하고 자연과 함께 살아갈 때야 비로소 신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건강해졌다. 은찬이는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서울은 문화적인 면에선 압도적인 에너지 질량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나 자연이라는 에너지를 흡수하기 하기에는 부족하기에 의도적으로 자연을 생활양식에 포함시켜야겠다 생각한다. 다행히 친정아버지가 마련해 둔 시골이 있고 나에겐 역마살이 있으니 자연으로 종종 떠나서 균형을 잡아야지 싶다. HSP인 나 또한 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맑아지는데 이러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우리의 미래에 기운이 난다. 그리고 은찬이의 몸이 애쓰지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가길 바라본다. 나의 오랜 오류를 반복하지 않도록

경험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끔 가르쳤다. 갈등하고 있을 때  "네가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렴."이라고 하셨고 어린 마음에도 그 말은 깊게 와닿아 삶의 선택에서 지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쓸모없고 이해받기 어려운 경험들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물론 그 경험들은 당장에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기도 하고 수치화되지는 않았지만 다음단계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기도 했고 훗날의 큰 선택을 하는 데 있어 데이터베이스가 되어 나를 도와주기도 했다. 때론 사서 고생도 하고 나이에 맞지 않는 고민도 하고 벅찬 짐들에 깔려 죽겠다 싶기도 했지만 신은 내가 결국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짐들을 주었고 짐들은 경험이 되어 조금 잘난 척하자면, 비슷한 일들이 내게 다시 올 땐 사뿐히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신의 숙제는 원망에서 감사로 바뀌었다.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다양한 경험에서 멈추지않고 조금 더 나아가 의미 있는 경험들의 시간을 살아가길 기대해본다.

숨쉬기

 아기는 나와 사는 동안 요가와 함께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써본다. 요가는 호흡을 전신으로 보내는 좌법들을 수련한다. 그리고 호흡은 몸의 바로미터다. 숨은 몸에서 전하는 신호들을 전달하는데 그 신호들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들숨과 날숨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감정 또한 호흡에 실려 드러나기에 거친 호흡과 미세한 호흡을 알아차린다면 나의 감정을 비교적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요가수련을 하다 보면 호흡이 점점 길어지며 몸의 세부적인 공간들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이러한 수련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호흡을 통해 몸의 에너지를 운용할 수 있게 된다.  날숨을 통해 사기는 비워내고 들숨을 통해 생기를 채우며 몸은 순환한다. 숨쉬기를 통해 알아차림이 자연스러워진다면 삶의 가장 큰 무기를 손에 쥔 것이기도 하다는게 내 생각이다.


 아! 그리고 때때로 호흡해 보자 하면 들숨 먼저하려고 하는데 날숨먼저 해야 리듬이 엇나가지도 않고 편할 수 있다. 비워내야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오늘 기분이 어때?

 아주 바쁘고 무심한 날들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당시 수련을 하던 곳의 원장님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했다.

오늘 기분이 어때?

그러고 보니 나는 내 기분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며 계획이나 상황에 끼워 맞추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입은 웃지만 눈은 웃지 않는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나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마음을 헤아려주려고 애쓰던 내가 정작 내 기분은 모른 체해왔다는 사실에 마음의 힘이 풀어져 버렸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았구나 싶었다. 나는 꽤나 부지런하고 성취지향적 인간이라 웬만하면 죽을힘을 다해 해내려고 했는데 성과에 집중한 나머지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것이다. 과정 속에서 오는 내적만족과 쾌감, 누구에게 드러내지 않아도 내가 느끼는 기쁨이라는 스스로가 그토록 추구하고 원하던 가치를 한 문장으로 끄집어 내준 계기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보고 묻기도 하고 새로운 경험이나 결정을 할 때도 입 밖으로 꺼내어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일이 생활의 리츄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지금 소리 내어 스스로에게 물어보셨으면 한다. 어쩐지 자신에게 다정해지지 않는가? ㅎㅎㅎ

 

 나의 아기에게 남기고 싶은 글들을 정리해 보았다. 구구절절 적었지만 실은 다 까먹어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이다. 이번주 토요일 아기의 돌잔치를 앞두고 있는 나는 출산과 육아를 하며 생애 가장 아프고 무력한 신체로 살고 있는데 정말 내가 이럴 줄은 몰랐지만 현실은 그렇다. 누구나 하는 출산과 육아라 생각했지만 역시 생각한 것과 경험하는 것은 달랐다. 다행히 요가를 통해 배운 회복탄력성과 인간의 자생력을 바탕으로 아주 천천히 회복하며 아이라는 존재와 함께하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아파보니 역시 건강이다.


은찬아
몸도 마음도 영혼도 건강하게 살아
첫 번째 생일 축하한다!

수민이도 고생했다
그리고 알고 있겠지만
이제... 시작이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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