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어쩌라고?
양발로 봉을 잡고 양손을 교차한 채 두꺼운 허벅지를 누르며 균형을 잡고 있는 것같다. 그 와중에 두 가슴은 양팔에 짓눌려 화면 앞으로 비집고 튀어나온다. 전혀 섹시해 보이지 않는다. 고대기로 시간을 들여 말아가며 곱슬거려야 할 머리카락 한올 없는 얼굴은 그 상태로 그렇게 나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울룩불룩한 살들이 예뻐 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추해보이진 않는다. 아니 거대한 몸과 저 표정은 첫눈에 무척 대담해보였다. 하지만 계속 보다보니 볼수록 어쩐지 아직은 무언가 위태로워보이고, 무언가를 애써 참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 자체로 서서히 드러내보기로 결정한 것 처럼 보였다.
Jenny Saville (1970~)
제니샤빌, 영국의 젊은 예술가 그룹인 YBA-Young British Artists 출신이다. 이 작품은 1992년 작가가 22세 때 대학 졸업작품용으로 발표했던 작품이다. 지주봉대에 앉은 자신을 그린 이 그림은 2018년 10월 5일 런던 소더비에서 930만 파운드(약 143억 원)에 낙찰되었다.
전통적인 여성 누드는 주로 남성화가에 의해 남성들의 눈요기를 위해 그려졌다. 샤빌은 스스로 그림 속 모델이 되어 당당하게 전통적인 누드화의 인식에 도전한다. 전통적인 유화의 기술을 사용하지만 모든 시선을 뒤집어놓는다.
"당신은 여전히 작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여성성을 원하고 있겠죠. 나는 역겹고 거대한 살덩어리 여성을 그리기 위해 나 자신의 몸을 모델로 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에요. 왜냐고 요? 나의 누드는 그동안 서양 예술과 세상의 남자들이 오랫동안 탐미하고 지배해 온 여성의 아름다움으로 가냘프고, 도와주고 싶고, 머리에 든 것 없는 그런 여성을 찾고 있었다고 생각하죠, 실존적인 여성성보다 눈 요깃거리의 그런 여성 말이죠, 그 개념에 대항하고 싶었어 요, 그 저항의 도전 방식이거든요. 진지한 나의 몸으로 날 것 같은 생명성과 정체성으로 신체에 대한 의문을 찾아, 아니 존재를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이거든요."-제니샤빌
노트1. 셜록홈스의 여동생 에놀라 홈즈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여성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세상과 싸우고 있었고 그녀를 훈련시켰다. 에놀라는 어린 시절부터 매일 일과 중 신체훈련시간을 가졌고 그것은 그녀가 혼자되어 어딜 가든 누구와 만나든 스스로를 지켜내고 타인까지도 지키고 구해줄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노트2. 화장품 광고를 보고 있었다. 주름이 지기 시작하고 탄력이 떨어지는 피부가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게다가 살이 쪄 무겁고 붓고 둔해지며 행동력까지 떨어지는 몸이 걱정스러워 이번엔 언제부터 어떻게 다이어트에 돌입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기도 했다.
노트3.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건강하고 밝고 기분이 좋았던 날들은 운동을 하던 때였다. 그때 나는 셀카를 많이 찍었고 어디서 사진이 찍히던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게 남성들을 위한 당당함은 아니었다. 글쎄. 내 생각에 아름다움의 기준은 기본적으로는 신체의 건강성에 기반한다. 이에 대해서는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사회적으로 이것은 힘과 시선에 관한 문제가 되어 왜곡 되기도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르트르와 존버거의 의견이 떠올라 참고해보고 싶다.
노트4. 문득 이어 생각해보니 동물들은 다 몸집과 몸매가 제각각이다. 코끼리, 판다, 곰, 호랑이, 재규어, 사자, 여우, 늑대 등등 건강함에 대한 그들만의 기준과 몸매가 가진 그들만의 매력이 있는데 왜 여자인간은 한결같이 여우(?)같아야만 하는 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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