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지역 문화도시센터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정말 좋아하는 '설빙' 가게에 들렀습니다. 워크숍 장소에서 나와 곧장 택시를 타서 집으로 오려 하다가 '설빙' 생각이 떠올랐지요. 10분 정도 걸어서 가게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진짜 많이 앉아 있었습니다. 가족 단위로 많이 보이더군요.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이 정말 아름답고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설빙을 주문하는데 뭘 할까 하고 고민합니다. 최근에 설빙을 사가지고 집에 온 적이 별로 없어서 아내가 어떤 종류를 좋아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주문하면서
"손님들이 와서 가장 많이 선호하는 것이 뭘까요?"
"예, 요기 제일 앞에 있는 '인절미'를 가장 많이 사가지고 가십니다. 팥이 들어간 것 할까요?"
아하, 그제서야 생각났습니다. 아내도 인절미가 들어 있는 설빙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팥은 절대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재작년에 어느 지인께서 몸에 좋다는 팥을 많이 보내주었는데, 아내는 위장이 좋지 않아 팥이 들어간 빵을 먹기만 하면 영 불편해 했지요. 그래서 어떤 음식이든 '팥'은 금기 음식입니다. 저야 물론 어떤 음식이든 잘 먹지만 말입니다.
"팥은 절대 안 되니 팥이 들어가지 않은 인절미로 할까요?"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손님 집에 가져가실 거예요?"
"예, 집에 가져가야 하니 포장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두 개 주문합니다."
"포장 두 개를 준비할까요? 두 분이 드실 것으로 따로 준비할까요?"
"예, 실제로는 집사람 혼자 먹을 것이지만, 두 개로 주세요."
"하나만 드셔도 양이 충분한데, 두 개로 하신단 말씀이시죠? 잘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잠시 대기하면서 갖고 다니던 책을 슬쩍 폅니다. 다른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 책을 펼치려니 조금은 어색하지만, 뭐 무슨 잘못을 하는 것도 아니고 눈치 볼 일이 있나 하면서 피에르 데브나즈 저, 김동규 역<현상학이란 무엇인가> 첫 부분을 봅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읽었지만 난해한 내용이라 진도가 잘 나가지 않습니다. 이런 책을 읽을 때 저는 굳이 통독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주 적은 분량을 읽고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내용을 다시 떠올립니다. 그리고 다시 조금 읽어 나갑니다. 서양철학에 관한 독서 경험이 워낙 일천하여 이 나이에 서양철학사를 비롯한 서양 철학 관련 도서는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 그래도 동양고전을 공부하고 강독하려면 서양 철학 관련 도서도 사고의 균형에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 억지로나마 읽기로 하였지요.
그런데 갑자기 설빙 가게 밖에서 비가 쏟아집니다. 우산을 들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옵니다. 마음씨 좋은 가게 직원이 코팅 종이로 비를 피하라고 설빙도 주문하지 않고 가게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전해줍니다. 참 보기 좋은 장면이었습니다. 저도 난감해집니다. 우산도 없고 집 근처도 아니고 버스정류장까지 가든 택시를 타든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어떡하나 하면서 가게 창가에 섰습니다. 밖은 아예 폭우로 변합니다. 조금 있으면 비가 그치려나 하고 기대하지만 비는 더욱 거세집니다.
저녁에 집을 나오면서 아내에게 잠깐 외출하고 돌아오겠노라고 말했더니, 아내가 갑자기 불안해 합니다. 몇 번이나 몇 시에 나갈 거냐고 물어봅니다. 워크숍 참석을 취소할까 고민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빠져서 될 자리가 아니었지요. 지역 예술가와 주민들 매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제가 불참하면 저와 연결된 예술가들이나 센터 담당자들이 정말 곤란하게 됩니다. 그것도 프로그램 운영 첫날 예술가들을 만나는 날인데 말입니다. 아내가 왔다 갔다 하면서 몇 시에 나가느냐고 물어오는데, 제가 집을 비우면 그 순간부터 불안해 합니다. 그래서 주말 숙박 아르바이트를 하는 큰아들에게 카톡으로 긴급 문자를 보냈습니다. 큰아들도 집에 바로 오겠다고 했지요. 저는 6시에 나가야 하고, 큰아들은 어떤 경우든 6시 이전에 집에 도착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문자가 왔습니다. 미안하고 고마운 큰아들입니다.
큰아들이 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를 하고 저는 그렇게 릴레이 바톤터치 하듯 6시 10분 전에 집을 나섭니다. 밤9시까지 반드시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내는 저를 그냥 덤덤하게 보냅니다. 큰아들이야 없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것이 백 배 났지만, 아내는 아이들보다 저에게 많이 의존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왔는데, 워크숍 담당자가 제 마음을 알았는지 9시 종료 예정보다 20분 정도 빨리 마쳤습니다. 겉으로 표시는 못하지만 그냥 고맙더군요. 그래서 얼른 인사를 나누고 홀로 재빠르게 걸어서 설빙 가게에 들렀지요.
주문 진동벨에 빨간 불이 들어옵니다. 제 물건이 맞는지 종업원이 꼼꼼하게 확인하더니 저에게 주네요. 그걸 받아들고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라고 인사를 한 뒤 다시 한 번 가게 창문 너머 도로를 바라봅니다. 참 신기하게도 비가 그쳤습니다. 그렇게 거세게 때리던 폭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네요. 그야말로 한두 방울 내리는 듯합니다. 가게 문을 나섰습니다. 마침 버스가 옵니다. 가게에서 대기한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분명 9시까진 집에 복귀하겠노라 약속했고, 택시로 곧장 갔으면 되었을 텐데. 설빙 사느라 조금 늦었다고 하면 변명이 되려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큰아들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야~야, 시내서 아르바이트한다고 고생하고 있는데, 내 볼일 때문에 갑자기 오라 해서 미안하다. 고생했제, 엄마는 별일 없고."
"예 어머니 괜찮습니다. 저를 별로 부르시지 않았지만 몇 번이나 안방에 가서 어머니 상태를 살폈습니다. 어머니가 영국 프로축구 관련 동영상을 많이 보시더니, 요새엔 프랑스 파리셍제르망에 들어간 이강인 관련 동영상에 신나 하시데요. 웬만한 남성 축구팬보다 프리미어 리그에 대해 많이 아시더군요. 아버지도 비가 와서 괜찮았습니까? 전화를 주셨으면 제가 우산을 들고 마중 나갔을 텐데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렇게 큰아들과 잠깐 대화를 나누고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의자에 앉아 TV에 연결된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 역시 이강인 선수 관련 동영상이네요. 뭔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최근에 있었던가 봅니다. 그것을 보다가 제가 들어가니까 갑자기 환한 얼굴로 맞아줍니다. 그리고 제가 가져온 설빙을 보더니 더 크게 더 환하게 맞아줍니다. 제가 설빙을 사올 줄은 전혀 예상을 못했기에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얼른 설빙 포장을 풀어서 탁자 위에 올려 놓습니다. 아내가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맛있게 설빙을 먹기 시작합니다. 9시에 복귀하겠노라고 약속하는 것은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을 고려하여 그랬지요. 그런데 도착 시간이 9시 26분입니다. 설빙을 보더니 제 복귀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열심히 먹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참 먹더니 아내가,
"하나만 해도 양이 이렇게 많은데, 두 개나 사왔어?"
제가 말했지요.
"한 개는 지금 먹고 또 하나는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당신이 또 먹으면 되지. 이건 아이들에게 절대로 먹지 못하게 할 거야."
아내가,
"아~들이 먹고 싶다 하면 그냥 먹게 하지. 사람이 먹는 거 때문에 얼마나 서운해 하는지 몰라. 내일 아~들 하고 함께 먹지 뭐."
저도 아이들 먹는 것을 싫어하진 않지요. 아내가 저리 좋아하니 내일이라도 또 먹으라고 했을 뿐이고, 아이들에게 먹지 말라고 할 거야는 농담이지요. ㅎㅎㅎ.
P.S 가끔 제 글을 보고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들 표기가 이상하다면서 말입니다. 그냥 아들하면 되지 않냐는데, 경북에서 성장하신 분들 아시지요? 아들은 그냥 아들이고, 아~들은 아이들로 복수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엔 아들뿐만 아니라 딸도 포함된다는 사실입니다. 발음 억양도 조금 다르지요. 그건 보여드리기 어럽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