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고생하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습니다. 현직에서 잘 나가던 사람들이 흔히 그렇게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다고 하네요. 제가 보기엔 우리네 삶에서 퇴직 전과 퇴직 후는 전혀 다른 세상임을 스스로 알아야 하겠더군요. 그래서 제가 지인들과 대화할 때 퇴직하면 가급적 직장 동료나 후배들과는 가급적 인간 관계에 미련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물론 아주 오랜 세월 형제처럼 끈끈하게 인연을 맺은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퇴직하면 그런 인연의 끈이 떨어져 나간다고 생각하라고 일러주지요. 괜히 옛날 생각에 후배들을 불러내 술이라도 한 잔 사고 밥이라도 한 번 낸다고 생색을 내지만 그것도 겨우 한두 번이지요. 현재 직장생활하고 있는 후배들에겐 별로 탐탁지 않은 일이거든요.
한 직장에서 32년을 지내면서 오랜 시간 인연을 맺은 후배들이 지금도 현직에서 열심히 생활하지만 저는 웬만하면 직장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후배들이 가끔 방문하라고 말을 하지만, 저는 말만으로도 고맙다고 답하면서도 일부러 그 곳을 피합니다. 그리고 긴 세월 함게 한 후배들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만날 약속 자체를 하지도 않고, 그들이 만나자고 연락을 해도 제가 먼저 이런 저런 핑계로 회피합니다. 괜히 후배들을 찾아가거나 저녁 약속이라도 잡아 식사라도 대접할까 하는 마음도 먹지 않지요. 퇴직하고 우리를 잊어버렸냐고 후배들이 말을 하지만 그런 차원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지요.
어떻게 어떻게 시간을 맞춰 밥이라도 한 끼 나누고 오랜만에 술에 취하며 흥청대지만 다음 날 아침이며 허무감을 느낍니다. 후배들을 불러내 오랜만에 기분을 내려다가 오히려 기분 상하는 일이 많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젠 옛날 추억에 젖어 후배들을 불러내 대접하는 것은 썩 권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퇴직 후의 삶은 두 가지로 나뉘어질 뿐입니다. '일이 있는 사람'과 '일이 없는 사람'으로 말이지요. 퇴직 이후에 일이란 것은 천차만별입니다. 너무 임금의 고저를 따지는 것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을 많이 주면 그만큼 일을 많이 시킨다는 것을 말하니 퇴직 후에 괜히 돈 욕심 내어 그런 일에 뛰어들다간 건강을 상실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게 되거든요. 또 임금을 많이 주는 그런 일자리는 퇴직 노년 세대에게 해당하지 않습니다.
내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적절한 임금을 생각하고 일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건강만 하다면야 노후에 그리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은 '약은' 마음으로 살아도 됩니다. 가끔은 '이기적'인 마음 가짐도 필요하답니다. 나이가 들면 자신이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현직에 있을 때 잘 나가던 사람일수록 노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도 따지고 보면 스스로를 과대 평가하게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젠 지난날의 잘 나가는 인생도 아니기에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봐 주지도 않고, 또 주위 사람이 나 자신에게 관심조차 없다는 현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 현직에 있을 때도 별로 잘 나가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퇴직해도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노년 세대에 욕심을 덜 부리고 현실을 담담하게 수용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남들처럼 돈이 많다거나 부동산이 있다거나 아니면 특별한 명예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냥 평범한 존재로 여기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별로 뛰어난 재주가 있지는 않지만 주위에 제 능력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달려 가서 자원봉사하는 것도 괜찮더군요. 누군가의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노후 세대의 인생에 매우 보람있는 일이거든요.
가끔은 공원 벤치에 앉아 멍 때리고 앉아 시간을 즐기는 것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랍니다. '슈퍼노인 증후군'이라 해서 매일 바쁜 일정을 살아야 하는 강박관념에 젖어 사는 노년 세대의 삶 또한 결코 행복하지 않지요. 흘러가는 시간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건강을 유지하면서 인생을 여유롭게 누리는 그런 편안한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나이가 들면 욕심은 자칫 탐욕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든 지금 내가 그렇게 아웅다웅하면서 살아간들 무슨 행복을 누릴 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 현직 당시의 '내가 낸데'하는 생각은 정말 어리석은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