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에서 물러나 삶을 보다 편안하고 여유롭게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현직에 있을 때는 배우지 못한 것들을 다시 배우고 싶었습니다. 욕심이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어디 특강에 참여해 보면 강사들이 자신의 일정을 자랑삼아 알려주는데 일년 내내 스케줄이 꽉 잡혀 있음에 다들 놀라면서 박수를 칩니다. 저도 그 강사가 부럽더군요. 연간 수입이 최소 1억 많으면 2억 가까이 된다는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난 지금까지 뭐 하고 살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정말 부러웠습니다. 강사님의 자랑을 실컷 들었습니다. 처음엔 놀람과 감동 그리고 부러움까지 교차되면서 자괴감과 실망감이 뭉게뭉게 흰구름처럼 솟아올랐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그분의 말씀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꼭 그렇게 부러운 것만은 아니더군요. 그러면 자신의 삶에서 여유는 언제 누리나 싶었습니다. 물론 '그렇게라도 바쁘게 살면 얼마나 좋겠나' 하시는 분도 있겠지요. 바쁘게 살면서 돈도 벌고 건강도 유지하며 사람들과 떠들썩하니 웃으면서 지내는 삶이 좋긴 하지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그렇게 일 년 내내 바쁘게 산다는 것이 자랑만은 아니더군요. 그 강사분이 그렇게 man power를 키우기 위해 지금까지 쏟아부은 노력, 시간, 돈 등은 엄청나겠지만, 또 그렇게 해서 지금 이 순간 그 자리에 우뚝 섰겠지만, 현직에서 물러나 본격적인 노후 세데가 된 저 입장에선 그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지요.
돈 잘버는 강사의 자랑에 부러움과 질투를 느낀 탓일까요. ㅎㅎ
며칠 전에 어느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참석자 한 명이 누군가를 열심히 비난합니다. 그 쪽 테이블이 시끌벅적합니다. 내용은 뭔지 잘 안 들리는데 세상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그 내용이 궁금해야 고개를 쭉 내밀고 그 쪽으로 바라보았지만 전체적으로 시끌벅적하여 제대로 알 수 없어서 그냥 옆 사람과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러자 옆에 있는 나이 지긋한 선배님 한 분께서 제 팔을 슬쩍 잡아당깁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불만이 있으이 너무 관심 두지 마소. 저렇게 하는 것도 다 한 때 아인교. 우리도 젊을 때 잘 나갈 때 세상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많았능교. 안 그런교. 그 때는 주위 사람이 들어주기만 해도 속이 풀리고 그랬지 뭐. 난 그렇던데 안 그렇던교?"
제 생각이 궁금한지 자꾸만 대답을 강요합니다. ㅋㅋ. 그리고는 당신의 지금 현재 삶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처음 얼굴을 본 분이라 낯설고, 나이 지긋한 이미지라 말씀이 별로 없으실 줄 알았는데, 웬걸요. 이분의 말씀이 길어집니다. 좀전에 그 사람의 불만에 대해 제3자적 입장처럼 '젊은 시절의 한때 불만'으로 치부하더니 지금부터는 당신의 현재 삶에 대해 장황하게 이어나갑니다. 먼저 당신의 부인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옵니다. 관심이 없는 내용인지라 저도 슬슬 지겨워집니다. 제 표정도 제대로 안 보는지 말이 상당히 길어집니다. 옆에 있는 여자 선배님들도 '남자가 뭐 그리 말이 많노. 대중 하지. 이 분이 괜히 이 자리에 끼어 앉아 생고생하게 생겼네. 그런 거는 집에 가서 부인한테 직접 말하고."라면서 타박을 주십니다. 그래도 제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을 잘 아는지 이야기를 계속 하네요. 어떻게 하지요.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하는데, 적당한 핑계도 대기 어렵고. 그래서 화장실 잠깐 다녀오겠노라고 하면서 테이블을 벗어납니다.
제가 테이블을 벗어나니 다른 분들이 말 많은 그 분을 제지하면서 눈치를 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분은 다른 이들의 심정을 헤아릴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 분보다 나이가 더 많은 70대 후반 선배님께서 말이 많았던 그분께 한 마디 하시네요.
"오늘따라 술이 한 잔 들어가니 할 말이 많은 갑네요. 하하. 나이 더 들어 보소. 누굴 미워할 시간이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