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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Oct 20. 2021

섬망

지상에서 마지막 축제!

 광철은 옷장에서 휴대폰을 꺼내 112를 눌렀다. 거동이 힘들었지만, 병원 놈들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병원인데요, 병원 직원에게 폭행당했습니다. 예? 어디 병원이냐고요? 요양병원입니다. 빨리 와주세요”     


 전화를 받은 경찰은 믿기지 않는 투였지만 광철의 말투는 확고했다. 버릇없는 놈들 모조리 혼내주고 빨리 조업을 나가리라 마음먹었다.     


 광철이 배를 타기 시작한 건 열일곱 살 때부터였다. 또래 중에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놈들도 꽤 있었지만, 술병으로 누워 조업을 빼먹기 일쑤인 아버지만 믿고 어머니와 동생들을 건사하긴 어려웠다. 사실 아버지 배를 도박 빚에 넘기기 전엔 아버지 따라 여러 번 배를 타봤다. 웬만큼 뱃일은 어른 몫을 하던 터였다. 동네 어르신이기도 한 선장은 우선 일을 시작해보고 삯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몸은 이미 클 만큼 컸기 때문에 남들 하는 만큼 일은 했고 갑판장이나 조리장도 광철을 좋아했다. 그때부터 뱃일을 했으니까 올해 예순넷인 광철이 뱃일로 보낸 세월이 47년이나 됐다. 

    

 인근해 조업은 새벽 3시쯤 출항한다. 물론 광철은 그보다 이른 시간에 미리 나가 준비를 한다. 사위가 깜깜할 때 출항한 배에서 그물을 올리다 보면 어느새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곤 했다. 조업을 끝내고 귀항하면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항구는 한낮이나 다름없었다. 어구를 정리하고 동네 아저씨들인 선원들과 아침 식사 겸 독한 소주를 사발로 반주하기 시작했는데 돌이켜 보면 거의 50년을 그렇게 술을 마셨다. 찬 바닷바람 때문인지 소주는 웬만큼 마셔선 취하지도 않았고 그건 나이가 들수록 더 그랬다. 

    

 광철이 동네 아저씨들만큼 나이가 들었을 때는 젊은 선원들은 없었다. 다만 방글라데시나 인도네시아에서 온 학생들이 그 자리를 채웠는데, 말은 서툴러도 눈빛만으로 서로 소통하며 뱃일을 해냈다.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광철보다 피부는 검어도 눈동자는 소 눈알처럼 크고 흰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광철은 열일곱의 자신이 생각났다. 그때  광철만큼 순진한 그 애들은 한사코 소주는 사양했다. 이젠 광철이 갑판장이기 때문에 모든 식구를 광철이 챙겨야 했다. 돼지고기도 절대 먹지 않는 그 녀석들 때문에 가끔은 소고기도 사 먹여야만 했다. 

    

 신고한 지가 꽤 됐는데 아직 경찰은 오지 않았다. 파출소가 지척인데 왜 오지 않나 싶어 광철은 한 번 더 전화할까 하다가 그만뒀다. 생각해보니 신고한 걸 까맣게 잊고 한참 딴짓을 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새 병원 밥으로 아침을 먹었고 간호사가 챙겨준 약까지 먹고 오늘은 좀 어떠냐는 안부 인사까지 주고받았던 것이 그때 생각났다. 이제 나이를 먹어서인지 정신이 깜빡깜빡한다. 큰일이다. 가을철 대방어 시즌이 다가오는데, 어자원 고갈로 인근해 조업은 어려워 이런 때 대방어로 한몫 올려야 어머니 생활비도 드리고 동생들 용돈도 줄 수 있다. 그리고 방글라데시에서 온 막내도 좀 챙겨줘야 할 텐데 말이다. 

     

 이상하게 어린 동생들과 외국에서 온 어린 선원들이 자꾸 겹쳤다. 어린 동생들이 아직 집에 있다면 아주 먼 옛날이고 외국 선원들과 함께 뱃일을 하고 있다면 광철이 이미 갑판장을 하고 있을 때인데 말이다. 이젠 제정신이 아닌 거 같아 광철은 우선 그냥 침대에 누워 한숨 자기로 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푹 자기로 했다. 조업 중간에 잠깐 쪽잠을 자던 것 말고 아주 죽은 사람처럼 꼼짝하지 않고 자는 잠 말이다. 언제부턴가 광철은 집에서도 배에서처럼 쪽잠을 자 버릇해 꼼짝하지 않고 깊게 잠 한번 자는 것이 소원이었다.    



 

 광철이 진통제를 맞고 자는 동안 요양병원 1층 로비에서 경찰과 간호사가 대화 중이었다. 병원은 면역력 저하 중증 환자들이 입원해 있고 코로나 때문에 외부인은 병실에 올라갈 수 없었다.     


“말기 췌장암 환자인데 며칠 전부터 섬망 증상을 보여요. 자꾸 뱃일을 나가셔야 한다고 헛소리를 하셔요.”

“그런가요? 보호자는 있겠죠? 최소한 보호자를 통해 확인만 하겠습니다”

“예, 환자분 막냇동생이 보호자예요.”     


 보호자의 연락처를 받아 돌아가던 경찰이 무언가 생각난 듯 뒤돌아보며 물었다.     


“아! 근데... 말기 췌장암이면 곧 돌아가시겠네요?”

“예... 거의 그렇다고 봐야죠. 섬망 증상이 임종 전 증상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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